2018.02.25 13:17
대여섯번은 봤던 거 같은데 극장에서 본 적은 없거든요.
그렇게 보면서도 특별한 몰입보다는 명성을 되새기는 정도의 다소 의무적인 느낌의 감상이었고요.
대화면과 고성능 오디오 장비로 만나는 블레이드러너는 그냥 다른 영화네요.
경험의 질적인 차원이 달라지니 영화가 아예 달라지는군요.
화질과 음질이 엄청나요.
화질은 원본이라기보다는 요즘 설비에 맞게 리마스터 된거겠죠.
화질을 떠나서라도 황홀한 비주얼적 경험을 시켜주는 영화네요.
특히 조명이 인상적이었구요.
전반적인 미장센이 씨지가 아니어서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었던 거 같아요.
반젤리스의 웅장하면서도 세련되고 또 인물들의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음악이 내내 영화에 몰입해 있게 만들었구요.
조악한 스피커로 듣는 건 이 영화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이 아니었네요.
개연성보다는 매력적인 설정과 영상, 음악을 홍수처럼 퍼부으면서 두시간 동안 감각적 샤워를 시켜주는 스타일의 영화였군요.
3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레이첼의 스타일 말고는 촌스러운 구석 없이 아우라를 뿜뿜하는 영화였어요.
이걸 삼십년 전에 봤다면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험이 되었을 거 같아요.
내용적으로 보면
90년대의 마스터피스 대접을 받는 공각기동대는 블레이드러너의 아류에 불과한 것으로 봐도 할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우울하게 뻗어 올려진 빌딩들, 주인공이 어두운 아파트에서 홀로 일어날 때 탁 트인 창을 통해 쏟아져들어오는 도시의 인공조명 불빛,
만들어진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 심지어 주문처럼 읊조리는 보컬이 깔리는 배경음악까지
2049가 성공한 속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작에 비교하면 진수를 살리지 못한채 인위적이고 조악한 수준에서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아도 할말이 없겠다 싶었네요.
이 영화를 보니 재상영되는 고전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가정용 모니터와 스피커는 영화를 오롯이 보는 방법이 아니에요.
우리가 ‘사이버펑크’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 그 모두를 창조해낸 영화니 후대 영화들이 그 자장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할거같네요.
레이첼의 파워숄더 스타일은 이미 한바퀴 돌아서 온지 얼마 안되서 처음 본 관객들은 오히려 신선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