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화 All the President's Men(1976)을 봤어요. 이 영화를 찾아본 이유는 신기하게도 이 영화가 


제가 최근에 본 두 영화 Spotlight(2015)와 Zodiac(2007)의 비평들에 직접 언급된 영화이기 때문이었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Spotlight에는 별 감흥이 없었고 Zodiac에서는 뭔가 저를 사로잡는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이 두 영화가 동시에 All the President's Men이라는 영화와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제가 보기에는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영화가 한 영화의 정통 후계자로 지목되는 느낌이랄까... ^^)



일단 영화를 보고 난 후 제 선호도는 Zodiac > All the President's Men > Spotlight 예요. ^^ 


세 영화는 모두 어떤 사람들이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제가 영화를 본 후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에서 받았던 충격은 Spotlight > All the President's Men > Zodiac 순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난 진실 그 자체보다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저를 몰입하게 만드는 정도는 


Zodiac > All the President's Men > Spotlight 순이었고요. 


주인공들이 진실을 찾기 위해 풀어야 하는 문제의 어려움은 Zodiac > All the President's Men > Spotlight 순이죠.  


그래서인지 주인공들이 쏟아붓는 노력의 정도도 Zodiac > All the President's Men > Spotlight 순으로 보여요. 


물론 Spotlight의 경우 더 많은 사람들이 조사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노력의 총합은 더 커질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 노력과 헌신의 정도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난 진실과 그 진실을 찾기 위해 주인공들이 쏟아부은 노력이 서로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가를 봐도   


Zodiac > All the President's Men > Spotlight 순인 것 같고요. 


Zodiac에서는 주인공이 주위의 도움도 별로 얻지 못한 채 가정을 잃을 정도로 집착적으로 범인을 쫓고  


All the President's Men에서도 진실을 은폐하는 온갖 방해공작과 어려움들을 헤쳐나가며 안전에도 위협을 느끼는데 


Spotlight에서는 주변 사람들이나 인터뷰이들이 주인공들에게 꽤 협조적이고 정보도 제공하고 왜 빨리 기사내지 않느냐고 닦달하죠. 


Spotlight의 결말에 드러나는 진실의 규모도 주인공들이 밝혔다기보다는 기사가 실린 후 제보에 의해 드러나게 된 것 같고요.  



그리고 결말이 영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Zodiac에서는 마지막에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드러나도 그게 별로 관객에게 중요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정말 그게 진실인가 한번 더 의심하게 되죠. 진실이 이렇게 쉽게 밝혀질 수가 있는 건가 하는 느낌까지 받아요. 


이 영화에서 감독이 보여주려고 했던 게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 그러나 그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밝혀지지 않는 진실,


결국 실낱 같은 진실에 닿았지만 그 진실을 세상에 온전히 증명할 수 없는 한계 같은 것이었다면


저에게 그런 감독의 메시지는 제법 잘 전해진 것 같아요. 저라는 관객을 진실을 찾는 그 어려운 과정에 동참하게 만들었고,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그 광기에 가까운 집착에 함께 사로잡히게 했고, 그 이후 밝혀진 진실을 보면서도  


마침내 진실을 찾아냈다는 작은 기쁨과 함께 안타까움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만들었으니까요.  


All the President's Men의 결말을 보면서는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의 결말은 다 밝혀진 진실이 아니라 앞으로 


이 주인공들이 풀어나가야 할 더 많은 숙제를 안겨주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거대한 사실을 너희가 앞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주는 것이어서 그 진실에 맞닥뜨린 로버트 레드포드의 표정은 진실을 확인받은 사람의 기쁨이 아니라 다시 사방이 온통 벽으로 막힌 


암흑 속에 놓인 사람의 표정처럼 보였어요. 


반면 Spotlight의 결말은 마치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카톨릭 사제들의 범행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처럼 제시되었죠. 


이런 일이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이 일어났었구나 하는 충격을 관객에게 주지만 그 이상 숨겨진 진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주진 못해요. 


신문기자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진실을 찾으려는 물꼬가 트이고 그 동안 숨어있던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보하여 


마침내 진실이 이렇게 드러났다는 느낌.  



저는 Spotlight에 대해 왜 이상하게 받아야 할 것 이상을 받은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이 영화들과 비교해 보니 왜 제가 그렇게 느꼈는지 알 것 같아요. 일단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기자들이 노력한 것 이상으로 


거대한 진실을 얻게 되는 느낌을 줘요. 그리고 진실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갈수록 더 증명하기 힘든 암담함과 한계보다는 


밝혀진 엄청난 객관적 수치로 진실을 제시하고요. (이 영화에서 진실은 점점 늘어나는 수치로 제시되죠.)  


저는 인간의 온갖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대면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그 진실을 찾아갈수록 그 내면에는 


또 얼마나 새로운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는가, 그나마 내가 간신히 밝혀낸 진실을 세상에 증명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영화들이 더 마음에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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