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께스의 아들 로드리고 가르시아가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을 때 사람들은 참으로 의외라 생각했죠.

이에 대한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대답이 왜인지 오래 마음에 남았는데,

천재 소설가 아버지의 그저 그런 아들이란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같은 분야에 몸 담지 않으려 했다던가요.

그러나 그가 아무리 분야를 비껴가고, 마르께스라는 성을 떼어 버려도 어쩔 수 없이

이 문단의 서두는 '마르께스의 아들 로드리고 가르시아'라고 시작됐죠.

제가 로드리고의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느냐와는 별개로, 이건 거의 불가항력적인 겁니다.


슬프게도 션 레논의 경우가 딱 그랬죠, 천재 아버지의 그저 그런 아들.

어린 션의 첫 번째 앨범은 어디서 보고 들은 것들을 마구잡이로 진열해놓은, 싸이키델릭이 되기 직전에 번번이 무너지는 젠가를 보는(듣는)

듯했어요. 뭐, 지나친 혹평이 아니라면.

그의 목소리에는 틀림없이 존 레논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저는 그에 대한 기대를 손쉽게 접어버렸었습니다.

첫번째 앨범이 발표된 후, 8년의 긴 공백 후 돌아왔을 때 그의 겸허한 고백이 어쩐지 마음에 남기 전까지는요.

앨범을 내긴 했지만 스스로도 자신을 독립적인 뮤지션으로 간주하기 힘들었다던가요.

그리고 나온 두 번째 앨범.



(뒷부분 허밍이 좀 짤렸지만) 



사랑은 비행기 같은 거예요

그러니 운이 좋다면 며칠쯤은 구름 속을 활강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우리 뛰어내려요

인생이란 단지 연극일 뿐이라면

사람들에게 보여주자고요

지상 최대의 쇼를


오늘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하겠어요

어차피 추락할 거 거추장스런 낙하산은 떼어버리죠

내 사랑, 울지 말아요

당신이 날 데리고 내려가는 거예요

바닥에 머릴 박기 전까진 하늘을 나는 기분을 즐기자고요


사랑은 허리케인이에요

시시각각 엄습해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신은 마음만 굳게 먹으면 저 회오리 바람에 맞설 수 있다 생각하는군요

인생이란 한낱 꿈일 뿐이라면

우리 둘 중 꿈을 꾸고 있는 건 누구일까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건 어느 쪽이죠?


오늘밤,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당신이 길동무가 돼주었으면 해요

뛰어내리기 전에 낙하산은 끊어버리죠

내 사랑, 울지 마요

당신이 아니면 누가 날 데려가겠어요

적어도 바닥이 막아설 때까진 하늘을 나는 기분을 즐겨요





지나친 찬사를 삼가더라도 

본인이 고백했듯 미숙했던 첫 번째 앨범에 비하면 정말로 정돈된, 

어느 누구의 아들을 떠나 한 뮤지션의 음반으로 충분한 작품을 들고 나왔던 거죠.

그러나 저의 편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앨범까지 8년의 공백, 그리고 다시 찾아온 4년의 공백 이후 그는 

보고만 있어도 나까지 황홀해지는 모델 여자친구와 밴드를 결성합니다.

'검치 호랑이의 유령 the ghost of a saber tooth tiger'이라는 이 밴드의 결성 소식에 실소를 흘렸던 건 저 뿐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이제 좀 들어줄만한 음악을 한다 했더니, 샛길로 새는 구나. 싶은.

눈부신 외모의 여성 멤버 캠프 뮬은 한쪽에 황홀하게 세워놓고 대충 자기 만족이나 하겠구나, 싶은.

그렇게 나온 세 번째 (밴드로는 첫 번째) 정규 앨범.






과거란 판도라의 상자

진실이란 패러독스

마치 거짓(lie)을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같지.

그러니 잠든 개들과 연인들을 모두 뉘이라(lie).


당신은 마치 바다 거북의 피처럼

우리의 사랑도 불멸이라 했어.

그러나 그것은 친애하는 도리언 그레이의 방식이 아닌

우주를 떠도는 소행성의 고독한 방식이었지.


탁상 시계는 손을 뻗어

모래 시계의 허리춤을 감싼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홀로 쓰러진 나무와 같이

당신이 없는 나는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소크라테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상과 업적이란 모두

싸구려 맥주병 속에 담긴 채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한 장의 연애 편지에 불과해.


파블로프의 개가 고양이의 뒤를 쫓는 슈뢰딩거의 무덤가에서

우린 그의 운명을 두고 내기를 걸었지.

그의 심장은 마치 로르샤흐 테스트의 붉은 잉크 자국처럼 피를 쏟았어.


탁상 시계는 손을 뻗어

모래 시계의 허리춤을 감싼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쓰러진 나무는 과연 소리를 낼까.

당신이 곁에 없는 나는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캠프 뮬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션 레논과 기가 막힌 화음을 이루고

솔로 앨범으로 자기 증명을 끝낸 션의 송라이팅은 한결 어깨에 힘을 뺀 채 자유롭게 뮤지션으로서의 영혼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어둡고 때론 참혹하던 션의 노랫말들도 깊지 않게, 자유롭게 보고 듣고 읽고 공부한 흔적들을 내비치며 한결 편안해지죠.

개인의 고백이 주를 이뤘던 솔로 앨범에 비해 보편의 우화로 선회한 노랫말들의 경향은 

아마추어 작가이기도 하다는 캠프 뮬(팀명도 그녀의 작품 중 하나에서 따왔다고)의 영향인 듯 보이고요.

관상용으로 모델 여자 친구 세워놓고 자기 만족이나 하는 팔자 좋은 음반이겠거니 했던,

이번에도 제가 틀렸던 거죠.

그런 그들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 다시 4년의 공백을 두고 올해 나왔습니다.

제목조차 어쿠스틱 세션이었던 첫 번째 앨범에 비해 훨씬 일렉트로닉하고 싸이키델릭해진, 난해한 음반이더군요.

그러나 그 난해함은 션의 첫 솔로 앨범이 품고 있던 미완의 미숙함과는 다른 차원에 놓입니다.

더 많이 들어보고 평가할 가치가 있다 믿으며 종종 플레이해보고 있어요. 교훈을 얻은 거죠.

아무튼 그렇게 나온 네 번째(밴드로서는 두 번째) 앨범.

은 아직 타이틀곡 말고 귀에 꽂히는 곡이 없으므로 편애하는 위의 앨범에서 한 곡 더 듣기로 합시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첫 번째 날

아이들은 웃으며 빗속을 뛰놀았지

그러나 머지않아 거리는 강이 되고 연못이 되어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그 안에 깊이 잠겨 울었네

가장 높은 나무조차 해초처럼 흐드러졌어


알루미늄과 종이 클립들

냉장고 부품과 마이크로칩으로 만들어진

엉성한 로봇 소년은

망가진 장난감을 고무줄로 엮어 놓은 심장을 지니고 있었지


해 질 무렵, 녹이 슬까 두려웠던 소년은

뒤집어진 버스 위로 기어올랐어

그곳에서 병뚜껑 눈으로 바라본 세상엔

그를 제외한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지

친척 기계들의 잔해를 뒤적이며

묘지가 돼버린 침몰한 도시 속을 표류하네


알루미늄과 종이 클립들

냉장고 부품과 마이크로칩으로 만들어진

미완성 로봇 소년은

고무줄로 엮은 망가진 장난감 심장을 품고 있었어


지표면을 보지 못한 채 많은 밤이 지나도

그는 배고프지도,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았지

그의 기계 두뇌는 미칠 수 없었고

그의 강철 피부는 아플 수 없었어

쉭쉭 소리를 내며 고래들이 모여들어

그에게 말했어, 탈출구는 하나야


살아남고 싶다면,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면

너와 같은 존재를 찾아내야만 해

-고래들이 부유물들을 가르며 로봇소년을 앞으로 밀고 나아갔어

그곳엔 깡통과 레이스로 만들어진 예쁜 얼굴이 있었네


알루미늄과 풍선 입술

냉장고 부품과 두꺼운 종이 엉덩이를 가진

미완성 로봇 소녀는

고무줄로 엮은 플라스틱 진주 심장을 품고 있었대






parachute / sean lennon

shroedinger's cat & robot boy / the ghost of a saber tooth tiger

translated by lonegu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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