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헌팅 The Haunting (1963) * * * 1/2

감독
로버트 와이즈 Robert Wise

주연
줄리 해리스....엘레노어 랜스
Julie Harris....Eleanor Lance
클레어 블룸....디어도라
Claire Bloom....Theodora
리처드 존슨....마크웨이 박사
Richard Johnson....Dr. Markway
러스 탬블린....루크 샌더슨
Russ Tamblyn....Luke Sanderson
로이스 맥스웰....그레이스 마크웨이
Lois Maxwell....Grace Markway
로잘리 크러츨리....더들리 부인
Rosalie Crutchley....Mrs. Dudley
페이 콤프튼....샌더슨 부인
Fay Compton....Mrs. Sanderson
발렌타인 다이얼....더들리 씨
Valentine Dyall....Mr. Dudley

1.

우리는 로버트 와이즈를 [사운드 오브 뮤직]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든 뮤지컬 전문 감독 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영화들이 와이즈의 대표작인 것은 사실이죠. 훌륭한 영화들이고요.

하지만 와이즈를 뮤지컬 감독 쯤으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는 훨씬 폭이 넓은 인물입니다. 헐리웃에서 그만큼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도 그렇게 고른 성공작을 낸 감독도 드뭅니다. [시체 도둑], [캣피플의 저주]와 같은 근사한 발 루튼 호러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군가요? 50년대 고전 SF의 걸작 [지구가 정지된 날]을 만든 사람은 누군지요? [상처 뿐인 영광], [셋업]과 같은 50년대 리얼리즘 영화와 40년대 필름 느와르의 고전을 만든 사람은 누구죠? 그는 데이빗 린 식의 '대작 사극'인 [샌드 피블즈]도 성공시켰고 심지어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스타 트렉 1]과 같은 대작 SF까지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란다면, 그는 [시민 케인]과 [위대한 앰버슨가]의 편집자였고요. 이런 사람을 보고 '[사운드 오브 뮤직]을 만든 그 친구'라고 한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는 셈입니다.

2.

셜리 잭슨(이 작가의 고전적인 단편인 [제비 뽑기]는 이미 국내에도 여러 차례 번역된 적 있습니다)의 [The Haunting of Hill House]는 귀신들린 집을 다룬 가장 훌륭한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티븐 킹도 [샤이닝]을 쓰면서 이 소설의 상당 부분을 참고했다고 하죠.

잭슨의 소설은 노골적인 초자연 현상의 삽입을 자제한 은밀한 심리 드릴러입니다. 발 루튼 밑에서 초기 경력을 쌓았던 로버트 와이즈가 이 소설에 매력을 느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힐 하우스라는 귀신들린 집이 있습니다. 초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마크웨이 박사(리처드 존슨)는 세 명의 자원자(영적 능력이 있는 디어도라[클레어 블룸], 어렸을 때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킨 적 있는 엘레노어[줄리 해리스], 그리고 그 집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회의론자 루크[러스 탬블린])와 함께 그 집으로 들어갑니다. 당연히 힐 하우스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결국 그들의 연구는 예정된 죽음으로 인해 허겁지겁 종결되고 말죠.

3.

원작 소설과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요? 넬슨 기딩의 각색은 중반부까지는 꽤 충실합니다. 하지만 마크웨이 부인이 등장하는 후반부에 접어들면 이야기는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기딩이 원작의 갈등구조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 거죠. 원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주인공인 엘레노어와 디어도라의 관계입니다. 원작에서 엘레노어는 극단적인 증오와 사랑을 오가며 디어도라에게 집착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엘레노어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마크웨이 박사입니다. 원작에 드러나는 동성애 코드가 아마 영화 제작자들을 불안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디어도라는 레즈비언이니 더 건드렸다가는 위태로워질 게 분명하죠.

해결책은? 기딩은 마크웨이 박사를 더 젊게 만들고 이름도 덜 고리타분하게 바꾼 뒤 (원작에서는 몬태규 박사입니다) 엘레노어 <-> 마크웨이 박사 <-> 마크웨이 부인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를 만들어 최종 액션을 새로 구성했습니다. 마크웨이 부인의 친구인 아더는 그 결과 삭제되었습니다. 최종 액션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마크웨이 부인은 플랑셰트 추종자에서 회의론자로 바뀌었고요.

이런 각색에는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습니다. 일단 단점부터 언급하고 넘어가죠. 마크웨이 박사와의 관계가 추가된 결과 심리적 일관성이 축소되었습니다. 엘레노어를 최종적인 파국으로 몰고가는 동기로도 원작보다 못해요. 소속감에 대한 열망이라는 엘레노어의 순수한 욕구를 표현하기엔 적당하지 않거든요. 엘레노어의 관심이 디어도라와 마크웨이로 나뉘어진 결과 내용이 산만해지기도 했고요.

그러나 장점도 많습니다. 이러한 삼각 관계 속에서 마크웨이 부인의 실종이라는 액션이 발생하는데, 이런 액션은 후반 사건의 클라이맥스를 강화시키고 몇몇 멋진 장면들을 추가시킵니다. 특히 나선 계단 장면은 원작보다 낫고 마지막 장면도 훨씬 극적입니다.

4.

[The Haunting]은 현대 호러 관객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순수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에는 살인도 없으며 피도 흐르지 않는 데다가(원작에는 한 장면이 있지만 영화엔 나오지 않습니다) 특수효과도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귀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요. 영화는 신음과 저주, 흐느낌, 문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지만 귀신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어요. 분위기는 정말 죽여줍니다. 발 루튼 시대와 [The Haunting]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세월이 가로막고 있지만 와이즈는 여전히 그 옛날의 트릭을 고수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특수 효과 없이 순전히 영화적인 테크닉만으로 호러를 끌어내는 것도 분명 대단한 능력이죠.

와이즈는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화면을 슬쩍 비틀어 놓습니다. 일부는 당시 파나비전 사에서 개발 중이었던 미완성의 30mm렌즈를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지만 그냥 카메라의 수평을 깨뜨리고 가구 (특히 거울)의 각도를 살짝 바꾸어 놓는 수법도 효과적으로 쓰였습니다. 그 중 일부는 아주 은밀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유도 모르면서 묘하게 불안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5.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줄리 해리스가 연기하는 엘레노어입니다. 10여년 동안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간신히 해방된 이 노처녀는 힐 하우스에 머물면서 조금씩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이 캐릭터와 힐 하우스의 전투를 단순한 대립구조로 처리하지 않고 혐오와 매혹을 뒤섞은 미묘한 끌고 당기기로 꾸며낸 것은 셜리 잭슨의 원작에서 끌어온 미덕입니다.

힐 하우스에서 전개되는 드라마는 캐릭터들의 내부에 원인이 있고 힐 하우스의 진짜 기능은 그것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엘레노어가 마크웨이 박사한테 품고 있는 연정, 마크웨이 부인에 대한 질투, 디어도라와 엘레노어 사이의 미묘한 애증관계... 이 모든 것들은 메아리처럼 힐 하우스의 미로같은 복도 안에 울려퍼집니다.

와이즈는 엘레노어를 묘사하는 도구로 잦은 보이스 오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제작된 것이 63년이니 그 당시만 해도 낡아가는 트릭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줄리 해리스의 정말로 정말로 황량한 보이스 오버는 이 영화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게다가 줄리 해리스는 아주 훌륭한 배우입니다. 엘레노어는 아주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죠. 자칫하면 혐오스러워질 수도 있고 지나치게 동정을 호소하는 역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리스는 충분히 감정을 섞어 연기를 하면서도 어느 함정에도 빠지지 않습니다.

디어도라 역의 클레어 블룸도 좋습니다. 아름답고 메리 콴트의 의상을 입으면 쉬크해보이며 무엇보다 절제를 알아요.

여자 배우들이 인상적인 데 비해 남자 배우들은 다소 밋밋해보입니다. 리처드 존슨은 사람이 좋아보이기만 하고 러스 탬블린은 그냥 생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내용 자체가 여성 캐릭터들 위주로 짜여져 있으니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지요.

6.

[The Haunting]의 화면 비율은 2.35;1입니다. 개인적으로 호러 영화에는 이 화면 비율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극장 전면을 꽉 채우는 와이드 스크린 화면은 관객을 영화 속으로 훨씬 강하게 몰입시키기 때문이죠.

하지만 텔레비전으로 옮기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크로핑된 화면은 원래 화면의 절반 정도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레터박스 버전은 리본처럼 보이죠. 화면이 커서 그 리본같은 화면을 충분히 살리더라도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천박한 충만감이 없어요. 지나치게 예술적으로 보이는 거죠!

제가 본 것은 P&S 버전인데, 그럭 저럭 잘 편집된 것이긴 하지만 종종 화자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등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요. 와이즈의 여러 트릭들 역시 손상을 입고요. 언젠가 레터박스 버전을 구해봐야 할까봐요.

7.

[The Haunting]의 무대는 뉴 잉글랜드지만 영화 촬영 때 사용된 저택은 사실 영국에 있습니다. 이 저택에서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으니, 거기 살던 한 젊은 여자가 애인과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관해 어느 금요일 날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투신 자살을 했다나요. 그 뒤로 그 여자의 유령이 금요일 날이면 가끔 보인대요.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온 이 겁많은 영화쟁이들은 금요일에는 영화를 찍지 않았답니다! 이 저택은 최근에 리조트로 바뀌었대요.

한가지 더. 이 영화에는 엘레노어가 집을 떠나는 장면은 있지만 디어도라가 집을 떠나는 장면은 없습니다. 사실 와이즈는 이 장면을 찍었다가 나중에 잘랐대요. 그 장면엔 디어도라가 잠옷 차림의 여자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들어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디어도라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서 문제가 되었다나요. 하긴 35년 전 영화니까요. (99/03/06)

DJUNA


기타등등

1. 이 영화는 얀 드 봉이 릴리 테일러, 캐서린 제타 존스 주연으로 리메이크 중입니다. 와이즈의 영화와는 달리 특수 효과를 잔뜩 쓴 롤러 코스터와 같은 영화가 될 모양입니다.

2. [The Haunting]은 IMDb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호러 영화입니다.

3. 영화로 각색되면서 엘레노어의 성도 바뀌었어요. 원작에서는 Vance지만 영화에서는 Lance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도 몰라요. 타이피스트의 실수였을지도 모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