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루튼 Val Lewton (1904-1951)


1.

블라디미르 레벤튼은 1904년 러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이 미국에서 이민한 것은 1909년이었고요.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한 뒤로 그는 돈을 벌려고 다양한 필명으로 온갖 잡글들을 써댔는데, 발 루튼이라는 필명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유럽에서 온 비영어권 이민자들이 그렇듯이, 보다 영어식인 발 루튼이라는 이름은 곧 블라디미르 레벤튼이란 이름을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933년, 그는 데이빗 O. 셀즈닉 아래에서 스토리 에디터로 일하면서 영화계에서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38년 작인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바스티유 장면을 공동 감독하기도 했고요.

그의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가 RKO사에 들어가 B급 호러 영화의 제작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1942년이었습니다. 첫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캣 피플 Cat People]이었지요. 이후로 그는 RKO를 위해 [일곱 번째 희생자 The Seventh Victim], [죽음의 섬 Isle of the Dead],[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I Walked with a Zombie]와 같은 수많은 저예산 히트작을 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당시 스튜디오 시스템이 원래 그랬지요. 초짜들이 B급 영화에서 경력을 쌓아서 재능을 인정받으면 A급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러나 45년에 만든 [베들램 Bedlam]의 어정쩡한 흥행성적 때문에 RKO 안에서 A급 승진은 좌절되었습니다. 그는 46년에 RKO 사를 그만 두고 다른 곳에서 계속 영화를 제작했습니다만 모두 RKO 사 시절의 영화들보다는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1951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2.

아까도 말했지만, 발 루튼이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40년대에 제작한 그의 호러 영화들이었습니다. [캣 피플]을 시작으로 한 그의 영화들은 분명 예전의 호러 영화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변종들이었습니다. 그냥 변종일 뿐만 아니라 아주 새롭기도 했지요.

루튼은 싸구려 장르물에 도가 튼 제작자이기도 했지만 좋은 교육을 받은 지적인 남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영화에는 그의 이런 두 측면이 모두 녹아있습니다. 사탄 숭배, 흡혈귀, 좀비와 같은 센세이셔널하고 다소 천박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의 영화들은 전혀 천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종종 미묘한 철학적 요소들을 영화에 끌어들였고 그런 요소들은 영화를 보다 미묘하고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의 측면이 드러나는 것은 그가 제작한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이었습니다. [캣 피플]을 그렇게 매혹적으로 만든 그 간접적 접근법은 한 예일 뿐입니다. 루튼은 어둠과 그림자가 얼마나 강한 공포를 만들어내는지 알았고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장식하는 노골적인 특수효과가 얼마나 값싼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영화 속에서 폭력과 괴물들은 종종 그림자와 소음으로만 처리됩니다. 그의 영화 속에서 가장 으시시한 것은 구체적인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그 직전의 침묵과 어둠입니다.

'으스스하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루튼의 영화를 묘사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루튼의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스크린을 향해 고함을 질러대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분위기는 아주 강렬하고 쓴 뒷 맛을 남겨서 그의 영화를 쉽게 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런 그의 접근법은 호러 영화보다는 필름 느와르에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캣 피플]과 같은 영화를 부분부분만 보여준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영화를 필름 느와르로 볼 겁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자크 투르뇌는 나중에 필름 느와르의 고전인 [Out of the Past]를 감독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그의 영화는 보다 미묘한 디테일과 영화적 테크닉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영화가 후대의 영화 평론가나 연구가들에게 그렇게 매혹적인 연구대상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튼은 현장에 나타나서 직접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영화적 어휘를 늘리는 데 직접적으로 공헌한 사람이었습니다.

3.

루튼 영화 중 가장 걸작은 무엇일까요? 많은 평론가들은 [시체 도둑 The Body Snatcher]을 뽑을 겁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흥미진진한 사변과 보리스 칼로프의 절정에 오른 무시무시한 연기, 그리고 루튼 특유의 막강한 분위기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제인 에어]의 호러판 각색물인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카리브 해의 분위기와 침울한 로맨티시즘에는 시간과는 무관한 매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가장 훌륭한 [제인 에어] 영화로 뽑는데, 저희 역시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곱 번째 희생자]는 저희가 본 루튼 영화 중 가장 무시무시한 영화입니다. [로즈마리의 아기]보다 30년이나 앞서 사탄 숭배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고요.

[캣 피플]의 창조적인 스타일은 그 뒤에 나온 모든 루튼 영화를 그대로 요약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섬]은 발표 당시에는 미적지근한 평을 받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이상한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입니다. 저희는 아직 AFKN이 금요일 자정 호러 영화를 방영하던 때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흰 이 영화에 아주 불만이었는데, 괴물은 안나오고 말만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 하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어떤 불편한 느낌은 지금도 기억나요. 얼마 전에 그 불편한 느낌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했답니다.

4.

루튼은 RKO에서 자크 투르뇌, 마크 롭슨, 로버트 와이즈와 같은 사람들과 작업을 했습니다. 모두 루튼 아래에서 데뷰했고 또 그 뒤로도 훌륭한 영화들을 뽑아낸 사람들입니다.

자크 투르뇌는 루튼의 영화 중 가장 루튼적인 [캣 피플]과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를 만들면서 감독일을 시작했습니다. 투르뇌는, 루튼과 결별 이후에도 한동안 아주 훌륭한 B급 장르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그 이후의 경력은 그렇게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년에 만든 [악마의 저주 Curse of the Demon]는 왕년의 본때를 보여주는 멋진 호러 영화입니다 (그러나 루튼이 살아서 그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면 결코 그 악마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투르뇌와는 달리, [일곱 번째 희생자]의 마크 롭슨은 헐리웃 A급 영화 감독으로 성공했습니다. [도곡리의 철교 The Bridges at Toko-Ri]나 [The Harder They Fall (이 영화는 EBS에서 한 번 방영한 적 있는데, 그 때 제목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는군요)]과 같은 영화가 대표작이지요.

[캣 피플의 저주]와 [시체 도둑]의 로버트 와이즈는 가장 성공적인 루튼의 부하였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같은 뮤지컬 뿐만 아니라 [상처 뿐인 영광]같은 리얼리즘 영화, [지구가 정지된 날] 같은 SF를 오가며 근사한 장르 영화들을 뽑아내던 그는, 나중에 [더 헌팅 The Haunting]으로 다시 한 번 호러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특수 효과의 부재 속에서 순전히 분위기로만 일관하는 이 으스스한 영화에서 루튼 시대의 향취를 맡을 수 없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요. (99/01/17)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