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정지된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1951) * * * 1/2

감독
로버트 와이즈 Robert Wise

주연
마이클 레니....클라투/카펜터
Michael Rennie....Klaatu/Carpenter
패트리샤 닐....헬렌 벤슨
Patricia Neal....Helen Benson
휴 말로우....톰 스티븐스
Hugh Marlowe....Tom Stevens
샘 재프....제이콥 반하트 교수
Sam Jaffe....Prof. Jacob Barnhardt
빌리 그레이....바비 벤슨
Billy Gray....Bobby Benson
프랜시스 바비에....발리 부인
Frances Bavier....Mrs. Barley
록 마틴....고트
Lock Martin....Gort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트와 클라투
손잡이 떨어진 냄비 뚜껑처럼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운 비행접시, 알루미늄 포일처럼 반짝이는 우주복, 수퍼 로봇, 앵앵거리는 전자 음악. 여러분은 이미 시효가 지난 50년대 SF의 모든 장치들을 [지구가 정지된 날]에서 다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50년대 초만해도 신선한 영상 충격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떠오르죠.

[지구가 정지된 날]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그 미학적 혼합입니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이 영화를 구성하는 시청각적인 요소들과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클리셰에 가까운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일급 할리우드 영화이며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진지합니다.

영화는 외계인 지구 방문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비행접시에 수퍼 로봇을 태우고 온 외계인 클라투는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복잡한 지구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그들을 모두 모으는 건 쉽지 않고 클라투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병원에서 탈출한 클라투는 카펜터라는 지구인으로 행세하며 워싱턴의 평범한 하숙집에 들어갑니다.

로버트 와이즈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별다른 특수효과 없이 일상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비행접시와 로봇이 나오는 몇몇 장면들을 빼면, 이 영화는 필름 느와르나 오인된 남자에 대한 히치콕의 스릴러처럼 보입니다. 그는 이런 식의 현실성이 주제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와이즈는 특수 효과의 사용 자체에도 능숙했습니다. 네, 미학적으로 이들은 낡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다루는 도구의 한계와 장점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비행접시가 워싱턴의 공원에 착륙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그렇게 거슬리지 않습니다. 그건 그가 새로 얻은 장난감에 열을 내는 대신 꼭 필요한 장면들에만 어울리는 특수 효과를 삽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주제입니다. 현대 관객들에게 클라투의 우호적인 이미지는 이상할 정도로 신선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조금은 전형적입니다. 외계인들이 그냥 평범하게 다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현대 UFO 신화 역시 둘로 나누어집니다. 위험한 공격자이거나 메시아이거나. 클라투는 후자를 택합니다. 영화는 종종 노골적인 기독교 상징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지구를 구원하러 온 클라투가 오히려 지구인들에 의해 공격받는 것, 클라투의 지구인 가명이 ‘카펜터 (목수)’인 것, 후반부에 그가 죽었다가 부활하는 설정같은 것들은 그렇습니다. 아마 이 영화에서 클라투의 지지자인 벤슨 부인은 막달라 마리아와 가까운 존재일 겁니다.

클라투가 이런 식으로 신격화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지구가 정지된 날]이 클라투를 통해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건 메시지라기보다는 하나의 정치적 아이디어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외계의 우주 유토피아 연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행성들에 사는 외계인들은 그렇게까지 완벽한 존재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의 세계엔 우주 전쟁 같은 게 없는데, 그건 거의 전지전능한 로봇족에게 그들의 안전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로봇은 일종의 우주 경찰 노릇을 하면서 다른 행성에 위협이 되는 세계가 있으면 그 세계를 매정하게 처벌합니다. 클라투가 경고하려고 했던 것도 지구가 우주 경찰들의 시선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이었죠.

구약의 창조주와 골렘의 결합처럼 보이는 로봇족은 환상적이지만 당시엔 진지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영화는 UN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주어 국제적인 알력을 해결하자고 주장했던 것이죠. 물론 이런 세계 경찰의 아이디어는 비현실적이고 거의 파시스트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SF이기 때문에 용납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 와서 [지구가 정지된 날]을 보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우리가 로봇 경찰의 이미지를 무능력한 UN보다 현대 미국과 다양한 국지전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일어난 이라크 전이 대표적인 예죠. 물론 여러분은 지금의 상황 속에서 [지구가 정지된 날]에 나왔던 파시스트 기계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공정함과 객관성을 찾을 수는 없을 겁니다. (02/08/02)

DJUNA


기타등등

헨리 베이츠의 원작 단편인 [Farewell to the Master]를 읽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로 가세요. 오리지널 결말을 더 좋아할 사람들도 많을 것 같군요. 와이즈의 영화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