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햇살이 부지런히 넓은 하늘을 파랗게 채우는 날이나 빗살이 부산스럽게 지붕을 내리치는 날이건 아랑곳 없이 언제나 일요일 아침이란 태양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움직이기가 매우 어려운 하루입니다. 핸드폰 시계의 알람 소리 대신에 왠지 32화음 핸드폰 벨소리를 배경으로 삼은 듯한 도천 천곡의 노래 소리가 저의 스펙타클한 꿈의 앞 길을 방해하는 첫 번째 보스이지만 대부분의 꿈이 객사하는 라스트 보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이창명의 목소리입니다. 기실 이창명의 목소리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스태미너가 떨어진 뱃속의 허기짐 탓이 가장 클 것입니다.

 

뭉개 구름처럼 붕 뜬 머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엄 주엄 식탁 위에 반찬을 주어 먹은 뒤 거실을 바라보니 저와는 달리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TV를 보는 어머니께서 앉아 있습니다. 곰처럼 소파에 엎어 있지 않고 덕을 공양하는 소승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니 이날은 간만에 어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인가 봅니다.

 

“어머님 아드님이 TV에 나왔나 보군요”

 

그러면서 TV를 보니 역시나!!


방금 먹은 아침을 소화하기 어렵게 만드는 샤이니 민호의 이글이글한 눈빛이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저에 대해서 가장 속상했던 기억 중 하나는 운동회에서 그 흔한 공책 하나 받아 오기는커녕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라는 뻔한 추리소설의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저의 둔한 신경이었습니다. 어머니 보다 곗돈을 먼저 탄 훈이네 어머니께서 한 다스의 연필과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힌 공책을 자랑하는 동안 승부욕이 강한 어머니의 눈빛은 화르르 재만 남은 아픔으로 억누를 따름이었습니다.


언제나 운동 잘하고 빠릿빠릿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을 가진 승부욕의 화신이 자신의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긴 어머니께서 드림팀에서 민호를 처음 보고 홀딱 반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드림팀에서 가장 운동신경이 좋았던 것은 상추이고 가장 장애물을 잘 탄 것은 리키김이었지만 어머니는 민호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참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드림팀은 승부욕의 화신들의 집합체였으므로 어머니께서 민호를 좋아하는 것은 얼굴이 잘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미녀를 좋아하는 저의 성향은 미남자를 좋아하는 어머니에게서 유전 받은 것을 알았기에 어머니의 민호 사랑을 내심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청률 한자리 수의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뿌리깊은 나무 같은 버팀목으로 본방 사수하면서 이 드라마가 “아름다운 그대에게” 인 것은 민호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끊임 없이 설파하거나 어머니 생신 선물로 “ 민호의 1대 1사이즈의 브로마이드를 선물할까요?” 라는 자식의 농담을 철썩 믿어 버려 “에이 어떻게 생일 선물로 그런 걸 받냐” 하면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얼굴을 붉히시는 것을 보면 조금은 중증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어머니에게 있어 민호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방송은 드림팀의 왕중왕전이고 드라마틱한 민호의 우승은 훗날 어머니에게 있어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것과 같은 기쁨과 동일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 날 방송은 얼굴만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얼굴만 빼곰 내밀어 탁구공으로 축구를 하는 드림팀의 쉬어가는 샤이니의 특집 방송이었고 평소의 민호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없는 방송 내용이었건만 어머니의 메마르지 않는 민호에 대한 칭찬은 여전할 따름입니다.

 

“역시 민호는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눈빛이 참 멋있지 않니? 아들아 너는 매사에 뭐든 흐리멍텅한 것이 민호처럼 나의 열정을 닮지 못한 거니? 민호를 보고 좀 배우거라”

 

저는 작은 야구루트 병을 열정적으로 힘껏 빨아 마시며 대답을 합니다.

 

“그래도 저도 먹을 것 앞에서는 민호의 눈빛처럼 열정적이지 않나요?”

 

반사적으로 어머니의 책망이 이어집니다.

 

“어떻게 돼지의 눈빛과 호랑이의 눈빛이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어머니는 무심결 말을 뱉어 놓고 스스로도 말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말끝을 흐리며 화제를 돌립니다.

 

“아들아~ 입이 심심하지 않니? 과일 가져오너라. 깍아 주마. “

 

전 씩씩하게 “넵!” 이라고 대답하고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냅니다.

 

민호는 어머니의 사랑 받는 자식이지만 그래도 못난 아들만큼 어머니의 실속을 챙기지는 못하죠.

 

 

누군가가 그래도 섭섭하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연아가 내 여동생이어야 한다고 소망하기에 십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대답합니다.

 

 

 

2.

 

 간만에 주말 새벽에 알아서 일어나서 혼자 부지런을 떨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언제나 가장 먼저 일어나시는 아버지께서 생경하다는 듯 저에게 어디를 가는데 외출하냐고 묻습니다.

 

“아들아~ 오늘은 출근하는 날이냐?”

 

“아뇨 강원도 여행이 하고 싶어서 고속 터미널로 버스를 타러 가요. “

 

아버지의 눈빛이 반짝 거리며 되묻습니다.

 

“그~으려? 누구하고 다녀오느냐?”

 

뭔가 희망에 찬 아버지의 목소리는 재작년에 경주의 꽃길을 혼자 거닐 때 저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었던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새벽부터 보이지 않아 전화했는데 어디냐고 묻기에 커플이 가득한 꽃 길을 걷고 있다고 하니 껄껄 너털웃음을 지으며 오늘은 집에 들어오지 말거라 당부하셨는데 한 밤에 올라온 저의 모습을 두고 실망한 것이 떠올라 솔직히 대답합니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어서 당일치기로 혼자 다녀 와요. 저녁에 돌아올께요. “

 

“이런~이런 넌 누구의 자식이길래 이렇게 인기가 없는 거냐?”

 

“아버지의 자식이기 때문이죠.”

 

반사적으로 머리 속 대답이 나왔지만 다행히 목소리로 형상화 되지 않고 짐짓 못 들은 척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외출하려는 저의 뒷모습에 대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아들아~ 그래도 얼마 전에 누군가 너를 참 궁금해 하며 찾더구나. 언제가 인연을 만날 수 있겠지.”

 

라고 말을 합니다.

 

‘나를 궁금해 하는 사람?’

 

저 역시 머리 속에서 작은 궁금함이 떠오릅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평소에는 사는 지도 몰랐던 2층의 처자와 마주치니 괜시리 부끄러움이 앞서 더욱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 갑니다. 이 동네에서 근 20년을 살았건만 사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길에서 혹 저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까 잠시 주의를 두리번 거리기도 하면서 지하철 역으로 걸어갑니다. 하지만 궁금함도 잠시. 빠듯하게 혼자 다니는 당일치기 여행은 매우 기껍고 나를 둘러싼 고민과 외로움은 일주일 정도는 가벼워 질 수 있을 정도로 덜어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밤 늦게 집에 돌아온 저를 보고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십니다.

 

“아들아~ 담주도 외출하느냐? 가능하면 담 주 주말은 쉬도록 해라. 오늘도 너를 궁금해 하는 사람을 보았구나”

 

“네? 누군데요?” 라고 물어보지만

 

이번에는 아버지가 짐짓 못들은 척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뭐지? 뭐지? 아버지의 의뭉스러운 침묵은 저의 수수깨끼로 남게 됩니다.

 

하루 하루 바쁜 시간이 지나가건만 언제나 주말을 고대하는 저의 바람은 그렇게 하나의 궁금함을 더한 채 째각째각 흘러갑니다. 아무런 계획 없는 주말 오전은 여행으로 지난 주말의 미룬 게으름마저 몰려와서 궁금함이고 뭐고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가 힘겨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다른 식구가 틀어놓은 TV 소리나 식탁에서 밥 먹는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이날은 다른 식구들이 아침부터 외출을 하였는지 조용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무도 없기에 크게 기지개를 켜고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소파의 품에 안겨 누우려는 찰나 초인종 소리가 “딩동~ 딩동~” 들려옵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러닝셔츠에 팬티 차림인 것도 잊고 문을 열어줍니다.

 

“질문맨님~! 질문맨님 계십니까?”

 

“ 아 제가 질문맨입니다.”

 

최근에 뜯지 않은 택배가 누적될 지경이지만 아주 예전에 구매했던 이베이의 택배가 이제서야 도착한 모양입니다.

 

“오늘은 해외에서 택배가 왔네요. 이건 뭔가요?”

 

“네 아마 3D 안경일 거예요. ”

 

저는 무심결에 대답을 하며 사인을 합니다. 그러면서 택배 기사분과 눈을 마주치게 됩니다.

 

그런데 저를 바라보는 택배 기사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마치 오랜 잠복 끝에 특종을 잡아낸 디스패치의 기자처럼.


택배기사님은 기자가 되어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눈빛으로 저에게 되묻습니다.

 

“ 당신이 질문맨이군요. 어떻게 신기한 것이 2주 동안 택배를 그렇게 매일 주문하나요? 무슨 장사라도 해요?”

 

순간 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여름이라 아침부터 더위를 먹은 것인 것 조금 얼굴이 발갛게 달아 오릅니다.

 

“ 아, 네. 요즘에 좀 필요한 것이 있어서요.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택배를 받아 들고 저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정성스레 다보탑을 쌓아 놓듯 올려져 있는 택배 박스를 보면서 이제 지름신과의 데이트는 좀 자제해야겠다는 다짐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주말도 쉬지 않고 택배를 전달해 주시는 택배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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