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3 00:31
영화 무산일기의 라스트씬 스포가 있습니다.
무산일기를 다시봤습니다.
내일 영화비평 리뷰숙제인지라 지난번 월요일 감상후 복습의미에서 다시 봤습니다.
영화를 좀 자세히 보니 재밌군요. 코믹한 장면도 몇있고.. 그래도 무엇보다 주인공 승철역의 박정범감독의 명연기가 시선을 계속 잡아맵니다. 간혹 터지는 북한말씨 레알 쩝니다. ~~
일단 이 영화를 보고 우울한 적응과 우울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승철의 적응못하는 방황과 마지막 적응 할수밖에없는 그의 모습은 앞으로의 친구를 만들기위한 우울한 커뮤니케이션의 준비된 모습을 봐서인지 씁쓸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5분이 넘는 숨막히는 롱테이크는 저는 이렇게 봅니다. 사기꾼 친구 경철의 돈을 취한 그로서는 벽을 부순(ice brack) 노래방 그녀 숙영과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의미를 나타내며,
지금까지의 친구(?)였던 멍멍이는 길바닥에서 차에 치어죽었지만 승철은 개를 거두지않습니다. 단지 빤히 그를 처다볼뿐 입니다.
카메라는 마지막 6분을 노래방에서 계속 승철을 따르면서 편의점에 갔다가 맥주 비닐봉지를 가지고 오는 와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개의 죽음. 승철은 개앞에 서있는동안 탈북자로서 차가운 남한사회, 적응못한 주위 인간과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입니다.
그 개는 닫혀진 관계에서 열린 관계로 가기위해 그 몫을 다한 개가 되고 만것이죠.
승철은 이제서야 커뮤니케이션을 이룰수있는 새로운 적응을 하게 되면서 영화는 페이드 아웃됩니다.
참~ 의외였습니다. 쇼트가 나눠질줄 알았는데 개에게 마른안주주면서 쓰다듬을때 노래방 지하실에서 계속 카메라가 승철의 뒷부분을 따라온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바뀔줄 알았는데 끝까지 따라가더군요. 5분이 넘었습니다. 참 긴시간이지죠. 위 마지막 저 장면도 오랫동안 서있습니다.
승철의 적응못한 남쪽의 긴시간을 단박에 한테이크로 정리 한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증말 좋았습니다.
좋은 영화입니다. 착한 영화이지요. 그런데 사실 마지막 장면은 조금 과잉입니다.
제 생각에는.. 개가 나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뭐랄까 그냥 조금 불편합니다. 귀여운 개에게 쉽게 동화되버리니깐요.
사실 영화서사에서 주인공에 대해서 관객이 연민을 갖게 하는 기법으로는 조금 쉬운 선택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탈북자라는 소재의 특이성이 한몫했죠.
주인공은 마지막에 개를 죽음으로써 다시한번 남한 현실을 자각 할 수 있겠죠.
결국은 이 이방인이라는 것. 가족없이 혼자라는 것. 친구는 물론 개조차도 없는 것.
위선적인 교회여자의 노래방으로 돌아가는 것은 희망하고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저지른 범죄. 결국 돈을 훔쳤다는 것. 더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갈 것이라는 것.
결국 마지막컷에서 부풀어있던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고 . (죽어있는 개를 보여줌)
또 배반합니다. (죽어있는 개를 지나가 버림)
주인공이 지나가서 끝나는 장면은 끝내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 행동이지요.
극악의 환경에서 사람을 죽인 경험이있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배고프지 않은 남한에서 결국 죄를 지었습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아주 가벼운 죄이고 합리화 할 수 있지만 승철을 그것을 끝내 충격적으로 인식합니다.
바로 개의 죽음으로 마주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북한에서 도덕적이지 못했던 주인공의 남한에서 새로운 삶, 그리고 새로운 도덕을 송두리째 부숴버립니다.
귀여운 개에 감정이입한 관객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승철에게 이것이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으로 볼수 있을까요?
오히려 새로운 남한의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이 영화는 참으로 윤리적인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