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라면 잡담

2024.10.17 18:40

돌도끼 조회 수:159

옛날옛적에 NHK에서 만든 '실크로드'라는 관광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중국이 아직 중공이고 거기 가려면 목숨 내놔야할 각오를 해야했던 시절에 대륙의 이런저런 풍경을 안방에 공개하는 당시로선 충격적인 구경거리였죠.

그거 만드는 데 KBS도 숟가락을 얹어서 (정확하게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동제작이라는 명분으로, 일제 컨텐츠는 무조건 금지되어있던 시절이지만 한국에 방영이 되었었죠.

근데 다까먹고 지금 기억나는 건 키타로가 만든 주제음악하고 딱 한장면 뿐이예요.

제작진이 중국 어느 동네에 가서 국수를 시켜먹으면서 '라면의 본고장에 와서 라면을 먹으니 정말로 감개가 무량하다'는 나레이션이 나왔던 거.

그장면을 기억하는 것도 그때 처음 라면이 원래 중국음식이었다는 걸 알게되었기 때문이겠죠.

몇년뒤에 신문을 보고 라면이 원래는 음식 이름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면을 만드는 이런저런 방법중에 拉麵법이라는게 있다는거예요. 랍면법은 밀가루를 계속해서 죽죽 잡아늘여서 만드는 거.  요즘 사람들에게 친숙한 말로는 수타죠.

랍면, 즉 라몐은 특정한 음식 이름이 아니라 랍면법으로 만든 국수가 들어간 음식은 다 라면에 해당하는 거였어요. 세상에... 짜장면도 라면이었어요.


일본 사는 화교들이 수타, 라몐으로 만든 국수를 먹는 걸 본 일본사람들이 '라몐'을 음식 이름으로 오해한 거였다나 봐요. 지금도 정통 일본 라멘은 수타로 만든다는 듯... 아니 수타란 말 자체가 일본말인 것 같아요. 手打ち.


중국음식 작장면이 한국화를 거쳐 짜장면이라는 한국음식으로 재탄생했듯이, 원래 어떤 음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라몐으로 만든 중국 음식이 일본화를 거쳐서 일본음식으로 재탄생한 게 라멘. 글구 일본에서 라멘의 위치는 딱 한국의 짜장면과 비슷하다나 봐요. 중국집 배달음식의 대명사. 라멘만 따로 파는 전문점도 있고 집에서 직접 해먹는 사람도 많다는 데서 짜장면과는 살짝 갈리긴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알고있는 라면은 일본에선 '인스탄토 라멘'으로 일반 라멘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나봐요.
짜장면 짬뽕 우동이라는 체계가 꽉 잡힌 한국의 중국집 메뉴에는 라멘이 들어오지 못했고 라멘이 한국에 알려진 건 삼양이 인스턴트 라면을 국내에 생산하면서부터였죠. 인스턴트 아닌 라멘은 21세기가 다 되어서야 알려지게된 것 같네요. 그래서 기존에 익숙한 인스턴트 라멘을 라면, 일본사람들이 만들어먹는 라면은 라멘. 이렇게 구분하나 봐요. 전 라멘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네요. 아직 그렇게 국내에서 인기있는 메뉴인 것 같지도 않고...


일본에서 인스탄트 라면은 원래 컵라면계열에서부터 시작했다나봐요. 우리나라는 끓여먹는 라면이 먼저 들어오고 부어먹는 라면은 한참 나중에 들어왔죠. 어렸을 때 부자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일본 컵라면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무렵 막 나오기 시작했던 한국 컵라면하고는 차원이 달랐어요. 그 시기쯤에 일본라면이 동남아쪽에서 인기라 한박스 들고가면 산더미만큼의 바나나랑 교환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때 우리나라에선 바나나는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죠.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한국라면이 일본 라면을 추월한 것 같아요. 해외에서도 한국라면이 일본라면보다 인기가 있다는것 같아요.

어째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한국이 다른 나라에서 만든 걸 개조해서 일등먹는 걸 잘하는 것 같다는... 태권도도 그렇고 걸그룹도 그렇고 라면도 그렇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888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780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8342
127525 [단독]이문열 “한강의 노벨상 수상, ‘문학 고급화’ 상징 봉우리 같은 것”/TK·보수 3명 중 1명 "한강 책, 읽은 적 없고 읽을 생각도 없다" [갤럽] new daviddain 2024.10.18 89
127524 엠에스엑스 [1] new 돌도끼 2024.10.18 29
127523 양키스 vs 레드 삭스 벤클 new daviddain 2024.10.18 32
127522 [넷플릭스] 정숙한 세일즈, 그닥.... [2] new S.S.S. 2024.10.18 103
127521 한강 소설 일는 기아 야구 선수 김도영 [5] new daviddain 2024.10.18 143
127520 한자 배우기 - 어린왕자2 [2] new catgotmy 2024.10.18 23
127519 Mitzi Gaynor 1931 - 2024 R.I.P. new 조성용 2024.10.18 42
127518 [데스노트]가 필요해요 [2] new soboo 2024.10.18 98
127517 도쿄 갓파더즈 재개봉, 재개봉이 일상이 된 극장가 [1] update 상수 2024.10.18 135
127516 [넷플릭스바낭] 인도네시안 피칠갑 액션을 좋아하십니까. '섀도우의 13' 짧은 잡담 [4] update 로이배티 2024.10.18 112
127515 필감상 다큐 '마지막 해녀들' [2] update LadyBird 2024.10.17 93
127514 z건담을 보다가 [2] update catgotmy 2024.10.17 86
127513 프레임드 #951 [2] Lunagazer 2024.10.17 48
» 그냥 라면 잡담 [7] update 돌도끼 2024.10.17 159
127511 유령 봤어요 [1] 돌도끼 2024.10.17 133
127510 플옵 3차전 LG 라인업 [80] update daviddain 2024.10.17 59
127509 “강남3구에서는 학생들을 아예 조퇴를 시켜가지고…투표 하러 보냈답니다” soboo 2024.10.17 271
127508 매뉴얼과 메뉴얼 [2] update 돌도끼 2024.10.17 74
127507 파친코 시즌2를 봤습니다(스포) [9] update 첫눈 2024.10.17 175
127506 한자 배우기 - 어린왕자 catgotmy 2024.10.17 5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