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개척사 How the West Was Won (1962)

2024.10.01 23:44

DJUNA 조회 수:347


[서부개척사]는 제가 어렸을 때 배불뚝이 텔레비전으로 더빙판을 본 영화입니다. 당시엔 별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에겐 이 영화가 헨리 폰다도 나오고 존 웨인도 나오는데 조지 페퍼드의 비중이 더 큰 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보니 맞더라고요. 조지 페퍼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큰 배우입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포맷입니다. 카메라 3개를 쓴 트루 시네라마 영화예요. 이런 영화는 팬앤스캔 버전으로는 존재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본 건 스마일박스 버전이 아니라 레터박스 버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휘어진 스크린의 효과는 떨어지겠죠. 하지만 스마일박스에서는 와이드스크린의 넓은 느낌은 어느 정도 사라지니까요. 평면 스크린으로 시네라마 영화의 체험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와, 압도적이었겠구나, 당시 관객들은 옛날 진짜 아이맥스 영화를 볼 때 그 느낌을 이런 포맷으로 느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질주하는 들소들, 질주하는 기차, 급류에 휩쓸리는 뗏목. 사실 마지막 것은 종종 특수효과를 쓰기 때문에 조금 감흥이 떨어지긴 하는데, 전 옛날 시각효과를 보는 것도 좋아하니까요.

옴니버스 구성입니다. 1839년부터 1889년에 이르는 반세기의 기간 동안 일어나는 다섯 개의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이건 느슷한 가족사의 형식을 취합니다. 원래는 원작이 된 동명의 라이프지 기사가 있었대요. 하지만 굉장히 융통성있게 각색된 게 분명합니다. 기획단계에서는 실존인물들이 더 많이 나올 계획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뗏목을 타고 오하이호 강을 따라 서부로 가는 가족 이야기입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다시 피츠버그로 돌아간 그 집 둘째딸이 상속받은 땅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서부로 가는 이야기고요. 세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첫째딸의 큰아들이 남북전쟁에 참전합니다. 네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그 아들이 철도회사에 고용되어 회사와 선주민과의 갈등 한가운데에 섭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둘째딸이 언니의 큰아들 가족과 만나는데 보완관이 된 큰아들은 열차강도를 저지르려는 악당들과 맞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부영화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있는 영화입니다. 원주민과의 갈등, 골드러시, 열차강도, 다 나옵니다. 모피 사냥꾼에서부터 도박사에 이르기까지 이런 영화에 나올 법한 스테레오타입화된 캐릭터들이 총동원되고요. 서부극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일종의 샘플러처럼 추천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제임스 스튜어트, 존 웨인, 그레고리 펙, 헨리 폰다, 데비 레이놀즈 등등 캐스팅도 화려하니 옛 할리우드 배우들의 견본으로도 괜찮습니다. 장르가 장르이다보니 남자 비중이 지나치게 높긴 합니다만.

영화과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은 절충적이고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철도회사 에피소드에서 영화는 백인들이 선주민의 땅에 멋대로 들어온 침략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대신 도망가고 잊어버려요. 이 모든 일이 있고 나서 스펜서 트레이시의 내레이션이 '그 결과 우리는 지금의 나라를 만들었다'라고 읊조릴 때는 그게 뭐냐는 생각도 들죠. 배경으로 보여지는 것이 정말 영혼없는 자동차의 행렬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걸작은 당연히 아니고, 구성상 그렇게 되기도 어려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근사한 스펙터클인 건 사실이고 알프레드 뉴먼의 음악도 좋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음악은 우리나라에서도 여기저기에 자주 쓰이곤 했지요. 근데 역시 좋은 조건으로 봐야 원래 의도의 흔적이라도 느낄 수 있는 영화라서요. 블루레이로는 아마 온전한 맛을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24/10/01)

★★★

기타등등
남북전쟁 에피소드는 존 포드가, 철도회사 이야기는 조지 마샬이 감독했고, 나머지 에피소드는 헨리 해서웨이가 감독했습니다. 여러분은 조지 마샬을 전혀 모를 텐데, 대표작이 밥 호프의 코미디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 이 사람의 철도 에피소드가 존 포드의 남북전쟁 에피소드보다 더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존 포드 에피소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가 없어요.


감독: Henry Hathaway, John Ford, George Marshall, 출연: Carroll Baker, Lee J. Cobb, Henry Fonda, Carolyn Jones, Karl Malden, Gregory Peck, George Peppard, Robert Preston, Debbie Reynolds, James Stewart, Eli Wallach, John Wayne, Richard Widmark, Brigid Bazlen, Walter Brennan, David Brian, Andy Devine, Raymond Massey, Agnes Moorehead, Henry (Harry) Morgan, Thelma Ritter, Mickey Shaughnessy, Russ Tamblyn, Spencer Tracy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6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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