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의 멋진 세계]를 영상자료원에서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카메라를 세 개 쓴 트루 시네라마로 제작된 두 번째 극영화입니다. 첫 번째 영화는 [서부개척사]고요. 하지만 극장 개봉은 이 영화가 먼저이니 족보가 꼬인 구석이 있습니다. 전 스마일박스 버전으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시네라마의 시뮬레이션 버전이죠. 원래 버전은 훨씬 압도적인 경험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62년은 이미 와이드스크린 영화가 한참 유행이었던 때지만 그래도 시네라마는 해상도나 몰입도에 있어서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을 거예요.

전 이 영화를 옛날 텔레비전에서 먼저 봤습니다.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은 아니었어요.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 시간대에 틀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전 아무런 맥락도 모르는 채로 이 영화를 봤습니다. 시네라마, 감독, 배우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그 뒤에 이 영화에 대해서 거의 생각을 안 했어요. 그래도 내용 대부분은 기억이 납니다.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은 영화라도 어린 시절 기억은 꽤 오래 남아요,

영화의 감독은 헨리 레빈과 조지 팔입니다. 여기서 진짜로 중요한 이름은 조지 팔입니다. 헝가리 출신의 영화제작자이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전문가이고 영화감독이었던 팔은 조지 루카스가 했던 것 대부분을 몇십 년 전에 했던 사람입니다. 이 영화는 팔이 감독한 [엄지 톰] 프로젝트에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그림 형제 동화가 소재이고 러스 탬블린이 출연하지요. 단지 작업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영화는 그림 형제의 이야기와 그림 형제 동화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림 형제 파트만 헨리 레빈이 맡았죠.

그림 형제 파트는 적당히 허구화된 전기입니다. 로렌스 하비가 빌헬름 그림을, 칼하인츠 뵘이 야콥 그림을 연기합니다. 둘 다 동화 영화에 캐스팅할 법한 이미지의 배우는 아닌데, 영화 제작이 계속 뒤로 밀리면서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간 영화는 몽상가인 빌헬름과 현실주의자인 야콥이 티격태격하고 현실에 맞서면서 그림 동화를 수집하고 어린이 독자들의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진짜 그림 형제의 이야기가 이렇게 천진난만했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삶을 완전히 날조한 찰스 비더의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도 있으니까요.

팔이 영화를 위해 고른 동화는 [춤추는 공주], [구두장이와 요정], [노래하는 뼈]입니다. 유명하지만 [헨젤과 그레텔]이나 [신데렐라]처럼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닙니다. 작품들은 영화적 표현을 위해 선정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두장이의 요정]에는 구두장이를 돕는 요정들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됩니다. [노래하는 뼈]에도 스톱모션 용과 싸우는 긴 액션 장면이 있고요. [춤추는 공주]는 시네라마의 몰입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장면이 들어가는데, 주인공 나무꾼이 공주의 마차를 따라가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이 장면은 그냥 영화로 만든 롤러코스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모든 동화들은 당연히 그 시대에 맞게 각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공정'해진 것입니다. 동화 각색에서 이런 작업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심지어 그림 형제의 원작도 소스 재료의 거칠고 난폭한 재료들을 윤색한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심지어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두장이와 요정]에는 흑인 아이와 동북 아시아 아이가 한 명씩 등장합니다. 왜 이 아이들이 독일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냥 설명하지 않죠.

1962년에는 대히트작이었습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네라마 상영관에 갈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굉장한 영화적인 즐거움을 선사했던 건 맞는 거 같습니다. 깊이 있는 영화는 당연히 아니고요. 내용의 깊이보다는 표현의 즐거움이 더 드러나는 영화이고 굳이 억지로 세련됨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요. (24/09/16)

★★★

기타등등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메리 윌스는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에서도 작업을 한 적 있습니다.


감독: Henry Levin, George Pal, 출연: Laurence Harvey, Claire Bloom, Karlheinz Bohm, Barbara Eden, Walter Slezak, Oscar Homolka, Yvette Mimieux, Russ Tamblyn, Jim Backus, Beulah Bondi, Terry-Thomas, Buddy Hackett, 다른 제목: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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