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시네라마]는 흑백 아카데미 비율의 화면으로 시작됩니다. 로웰 토머스라는 방송인이 석기시대 암각화에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죠. 12분간의 다소 따분한 강연이 끝나자 토머스는 "이것이 시네라마입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37:1 화면 양쪽을 덮고 있던 커튼이 옆으로 열리면서 2.59:1의 컬러 와이드스크린 화면이 펼쳐집니다.

와이드스크린 영화는 우리에게 일상이 됐습니다.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는 이 화면비율을 쓰고 있지요. 심지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이건 그렇게 신기한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마스킹을 하지 않는 극장이 점점 늘어나서 그 몰입의 효과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긴 합니다만.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된 1952년에 와이드스크린은 엄청난 스펙터클의 충격이었습니다.

지금의 영화관에서 당시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일단 시네라마를 그대로 틀 수가 없어요. 프레드 월러라는 엔지니어의 발명품인 이 포맷은 연결된 35밀리 프로젝터 세 개가 필요합니다. 세 줄의 필름이 싱크가 되어 동시에 돌아가면 그 이미지들은 둥글게 굽은 스크린에 영사됩니다. 어떻게든 이 이미지를 디지털로 복원한다고 해도 평면 스크린으로는 그 경험을 재현할 수 없지요. 그래서 그렉 킴블이라는 엔지니어가 아이디어를 하나 냈는데,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일부러 일그러뜨려 휘어진 스크린의 입체성을 흉내낸 것입니다. 제가 위에 올린 그림이 바로 그 '스마일박스'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저게 제가 영상자료원에서 본 버전이지요.

괜찮았냐고? 글쎄요. 아무래도 이 영화는 비스타 비율의 화면에 영사될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화면은 작아집니다. 우린 디지털로 영사되는 화면을 바탕으로 당시의 경험을 상상할 수밖에 없죠.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만, 이건 그냥 하나의 대안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 같습니다. 화면이 일그러지지 않은 원본도 있어야죠. 생각해 보니 잠시 휘어진 텔레비전 스크린이 유행했던 적 있었죠. 거기에서 일그러지지 않은 버전을 틀면 더 원본과 가까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 3D를 쓸 수도 있었겠죠. 시네라마와 같은 와이드스크린 영화가 당시 유행이었던 3D 영화의 안경으로부터 관객들을 해방시키니 위한 선택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좀 의미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요.

영화는 별 내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객들에겐 압도적이었을 스펙터클로 시작해요. 맨 앞자리에 설치된 시네마라 카메라를 통해 롤러코스터의 경험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죠. 그 뒤에 [아이다]를 공연하는 라 스칼라 극장에도 가고,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노래를 감상하기도 하고, 스페인에서 투우를 구경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플로리다의 사이프러스 가든즈라는 유원지에 꽤 오래 머물면서 수상스키를 구경한 뒤 미국의 다른 곳들로 날아다닙니다.

이 영상들은 이중의 의미로 재미가 없습니다. 일단 앞에서도 말했지만 와이드스크린 화면은 일상이 되어 그 자체로는 별로 신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심심하게 찍었어요.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냥 땅에 고정되어 있거나 탈것에 고정되어 있거나 둘 중 하나죠. 피사체는 대체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움직임이 없습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이 포맷의 결함입니다. 이 영화의 이미지는 세 개의 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스크린 위에서 연결한 것인데, 이게 세 조각으로 쪼개진 이미지라는 티가 자주 납니다. 경계선이 보이고 종종 진동 때문에 화면이 깨집니다. 위에 올린 사진에서도 보입니다만. 확실히 오래 끌 수 있는 무언가는 아니었어요.

결국 이 영화의 재미는 철저하게 역사적인 것입니다. 이 덜컹거리는 시도 1년 뒤에 나온 것이 첫 시네마스코프 영화 [성의]였으니 할리우드는 새로운 포맷의 가능성을 놀랄 정도로 빨리 습득한 것입니다. (24/09/07)

★★☆

기타등등
영화에 나오는 아톰 스매셔 롤러코스터와 사이프러스 가든스는 모두 없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문명을 이루는 것들의 수명이 얼마나 짧은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고요.


감독: Merian C. Cooper, Gunther von Fritsch, Ernest B. Schoedsack, 출연: Lowell Thomas, Kathy Darlyn, Toni Valk,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4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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