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Offret (1986)

2024.08.31 15:15

DJUNA 조회 수:1298


전 코아아트홀에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을 본 십만 관객 중 한 명입니다. 그러니까 전 '지루하고 졸린 영화들만 골라서 보는 대한민국 시네필'이라는 선입견의 형성에 아주 약간의 책임이 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코아아트홀은 절대로 영화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단차가 낮아 화면 밑은 늘 앞사람 머리에 가렸고 화면비율도 안 맞았습니다. 종로코아빌딩의 그 공간이 지금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때보다는 잘 쓰이고 있을 겁니다.

하여간 그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희생]은 좀 통속적인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개별 영화 대신 졸리고 지루하고 긴 영화인데 잘난 척 하는 시네필들이 좋아하는 척하며 으스대는 영화의 상징 정도로요. 신과 믿음에 대한 영화의 심각한 테마도 그런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화 내용요? 알렉산더라는 은퇴한 문학비평가 겸 저널리스트가 주인공입니다. 이 사람은 영국인 배우인 아내 아델라이드, 십대 청소년인 딸 마르타, 얼마 전에 수술을 받아 말을 못하는 어린 아들 고센과 함께 시골 집에 살고 있습니다. 가끔 우체부인 오토와 의사인 빅토르가 찾아오고요. 그런데 어느 날 3차세계대전이 일어나요. 지구가 멸망을 앞두고 있는데 오토가 알렉산더에게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파출부인 마리아와 동침을 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요. 알렉산더는 정말 그 말을 따르고 다음 날 아침 세상은 전처럼 평화로워집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신에게 봉헌이라고 하는 것처럼 자기 집에 불을 지릅니다.

이게 도대체 뭔소리야. 가장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종교적인 믿음 체계는 정말로 아무 짝에도 세상이 도움이 안 되는 쓸모 없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와 같은 것이죠. 영화에서는 그보다 더 쓸모없는 행위들의 예를 듭니다.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 매일 물 한 컵을 변기에 버리고. 이런 행위라도 꾸준히 진심을 담아 하면... 아니, 이런 게 세상에 도움이 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뭔가 의미가 있는 일을 해야지.

하지만 예술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이 무엇인가, 인간이라는 동물의 머릿속에서는 무엇이 돌아가는가를 보여주는 통로입니다. 그렇게 신심 깊지도 않았던 남자가 종말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렇게까지 믿지도 않았던 신에게 자기 집을 봉헌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좋은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되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에게 의미가 있다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생각해 보면 [희생]은 그렇게 엄숙한 영화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이 억지로 해야 할 일이 예쁘고 젊은 파출부와 동침하는 거라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남자의 아내 아델라이드와 친구인 빅터는 불륜 중이거나 연애 중인 게 거의 분명합니다. 이후에 알레산더가 하는 모든 이상한 행동은 모두 아내와 친구에 대한 복수처럼 보입니다. 영화에서 이건 주인공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는 상식적인 가짜 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게 주인공이 미친 행동을 하는 진짜 이유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영화가 내세우는 진짜 주제처럼 보이는 게 이 통속적인 드라마의 위장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게 타르콥스키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타르콥스키의 영화가 그렇게까지 정갈하기만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영화는 종종 굉장히 직설적으로 이성애자 남성의 욕망을 표출합니다. 이런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에 빠진 남자주인공이 등장해도 그게 그렇게까지 어색하지는 않다는 거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희생]을 처음 보았을 때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델라이드를 연기한 영국배우 수잔 플릿우드의 다리가 정말로 예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캐릭터가 전쟁과 종말의 공포에 몸부림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보면서 '내가 이런 걸 이렇게 봐도 되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 그래도 보이는 걸 어떻게 해요. 다르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지루함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결말부터 이야기한다면 좀 길기는 하지만 지루한 영화가 아닙니다. 취향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희생]은 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희생]의 지루함은 객관적으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루한 롱테이크'에 대한 선입견은요. 일단 타르콥스키 경력사상 가장 긴 롱테이크라는 도입부를 보죠. 알렉산더와 고센이 죽은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우체부 오토를 만나는 장면요. 이건 그냥 찍었다면 평범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게 롱테이크로 찍히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일단 배경이 된 시골 벌판부터가 무척 재미있는 곳이에요. 대체로 평평하지만 군데군데 나무와 잡목이 있어서 별 고민 없이 카메라를 옆으로 움직여도 거의 음악과 같은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그 카메라를 움직이는 사람이 스벤 닉비스트이고 그 앞엔 아주 정교하게 짜여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도 썩 재미있지만 이런 움직임만으로도 영화엔 아주 재미있는 액션이 담기게 됩니다. 한마디로 타르콥스키의 롱테이크는 대부분 재미있기 때문에 넣은 겁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냥 게으르게 앉아 있는 적이 없습니다. 앉아있다면 그렇게 앉아서 봐야 할 뭔가 재미있는 일이 화면 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 이걸 미학적 해석 어쩌구를 떠나 그냥 수학적 데이터로 입증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드라마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재미있습니다. 개성 강하고 각자의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는데, 그 대화 안에 녹아든 정보도 관객들의 관심을 끌지만 조용히 암시되는 캐릭터간의 관계가 계속 긴장감을 만들어내죠. 그러니까 체호프 연극처럼요.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은 판타지와 호러 장르에 속합니다. 게다가 지구종말을 몰고 올 세계대전이 소재예요. 어떻게 그걸 그냥 넘기나요. 단지 지구를 구한다는 주인공의 행동이 매우 뜬구름잡는 것이라 사람들이 이걸 '아트하우스 영화의 틀'안에서 지루하게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장르적으로도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들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가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장면 같은 거요. 요샌 대부분 관객들은 이 결말을 알고 영화관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완전히 사정이 다릅니다. 신에 봉헌을 하느라 집에 불을 지른다는 행위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행위라 사전정보 없이 보면 그 행위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 정보가 없는 사람들도 알렉산더의 미친 짓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이 남자가 카메라 바깥의 성냥갑을 흔들면서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날 때인데, 전 정말 이 소리가, 그리고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남자의 광기가 무서워요.

[희생]이 타르콥스키의 최고걸작이냐. 아닌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전 이 영화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깊이 있거나 깊이있거나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걸 그렇게까지 열심히 찾을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영화가 덮고 있는 통속적인 '예술영화'의 이미지 안에 굉장히 재미있는 것들을 감추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 (24/08/31)

★★★☆

기타등등
물을 줄 정도로 죽은 나무를 소중히 여긴다면 불을 지를 집 옆에 있는 살아있는 나무도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감독: Andrei Tarkovsky, 출연: Erland Josephson, Susan Fleetwood, Allan Edwall, Guðrún S. Gísladóttir, Sven Wollter, Valérie Mairesse, Filippa Franzen, Tommy Kjellqvist, 다른 제목: The Sacrifice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9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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