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낼 시간 (2024)

2024.08.25 23:43

DJUNA 조회 수:982


[힘을 낼 시간]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15번째 영화입니다. 이번 주제는 아이돌의 인권이에요.

영화의 주인공 수민, 사랑, 태희는 모두 해체된 중소회사 아이돌 그룹 출신입니다. 세 사람은 어렸을 때 가지 못했던 수학여행의 기분을 느껴보겠다면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첫 날부터 일이 생겨서 갖고 온 돈 대부분을 날려버려요. 어쩔 수 없이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귤 따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물론 거기서 이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어요. 하긴 아주 유명한 아이돌이어도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일은 흔하겠지요. 유명한 연예인을 모두가 알아보는 시대는 갔으니까요.

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이 세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갑니다. 태희는 팀 해체 소식을 군대에서 들었고 지금도 3천만원 카드빚이 있으며 이 와중에 아직도 회사 계약이 2년이나 남았습니다. 수민과 사랑은 같은 팀 소속이었고 그 팀은 태희의 팀보다 조금 더 유명했고 히트곡도 있었지만 여전히 정산은 못 받았고 사람들은 그 팀을 노래보다는 어떤 끔찍한 일로 기억합니다.

이 사람들로 밝고 소란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남궁선의 전작이 [십개월의 미래]의 감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영화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닙니다. 원래 더 밝은 영화를 생각하긴 했대요. 하지만 아이돌 업계 생존자들을 취재하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각본의 분위기가 점점 더 무거워졌다고 합니다.

제가 최근 십 여년 동안 본 케이팝 아이돌 소재 컨텐츠 중 가장 좋았던 작품입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아이돌에 대한 자신의 욕망과 판타지를 투영하는 오타쿠 창작자들의 징그러움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영화는 굉장히 머글스럽습니다. 남궁선이 아이돌 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는 머글스러워요. 성실한 취재를 통해 막 얻은 지식으로 무장한 머글이 만든 영화 같죠. 진지하고 성실합니다.

엄청 암담할 수 있는 영화인데, 그래도 구질구질한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건 일단 영화가 세 주인공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무시못할 무게와 깊이를 부여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비중이 큰 수민은 당연하게도 비극 주인공의 위엄을 갖추었지만 가장 얄팍해 보일 수 있는 사랑도 결코 보기보다 얇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그 구질구질함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와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종종 너무 은밀하게 감추어져 잘 안 보이긴 합니다만.

굉장히 한국 인디 영화스러운 작품입니다. 심지어 음악도 어느 정도 그렇고. 하지만 케이팝 아이돌 주인공을 이런 분위기 안에 넣고 끌어가는 영화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없을 수도 있겠죠) 새로운 근육을 쓰는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지금까지 나온 케이팝 소재 컨텐츠들의 문제도 너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만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요. (24/08/25)

★★★☆

기타등등
[십개월의 미래]에 나왔던 유이든이 도입부에 짧게 나옵니다.


감독: 남궁선, 출연: 최성은, 현우석​, 하서윤, 강채윤, 다른 제목: Time to Be Strong

KMDb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3647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