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제가 본 것은 20권으로 나온 '애장판'입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추억의 일본 만화들이 다 '애장판'이란 이름을 달고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찍어낸 책들이 재고가 많이 남았는지 뭐 한 달에 한 번 씩은 특가 이벤트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올 초에 셋트로 한 번에 구입하고 묵혀 두다가 최근에 뜯어서 다시 읽었어요.


 사실 전 요 '애장판'들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통 이런 놈들은 원래 만화책의 1.5배 분량 정도를 한 권으로 묶어서 내는데... 너무 두껍습니다. 그래서 펼쳐들고 읽다 보면 손이 아파요. ㅋㅋ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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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캐릭터들을 모두 다 기억하신다면 당신도 훌륭한 탑골 오타쿠!!! ㅋㅋㅋ)



 - 타카하시 루미코의 팬... 까진 아니어도 암튼 이 분 만화들 좀 읽은 사람들에게 '너는 무슨 작품을 가장 좋아하니?'라고 물었을 때 요 '란마1/2'이 첫 번째로 꼽히는 경우는 경험상 아주 드뭅니다. 일단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이누야샤'를 꼽는 사람들이 많구요. 탑골 노인들과 이야기를 하면 초기작들, 그러니까 '메종일각'이나 '시끌별 녀석들'을 꼽는 사람들이 많죠. 진지 심각한 취향의 사람들은 '인어 시리즈'를 꼽기도 하지만 어쨌든 란마는 대체로 뒷쪽 라인에 세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네요. 뭐 실제로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나눠본 것도 아주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근데 대충 납득은 갑니다. 왜냐면 저도 그렇거든요. ㅋㅋㅋ 가장 치명적인 문제라면 '시끌별 녀석들'의 존재가 되겠죠. 어떻게 봐도 란마는 그 작품의 틀에다가 중국풍, 변신, 격투물 컨셉을 얹어서 다시 우려낸 작품에 가깝잖아요. 캐릭터들도 중복 재활용의 느낌이 강하구요. 새로 추가된 토핑들이 모두 썩 잘 활용되어 새로운 맛을 내긴 하지만 어쨌든 원조의 아우라라는 건 언제나 강력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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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의 일본 전통 & 일상 소재 살려내는 그림체에 중국풍을 혼합했는데 어쨌든 다 어울리고 보기 좋게 잘 그려냅니다.)



 - 하지만 또 우리네 정서상 추억 버프라는 것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ㅋㅋㅋ


 그 전에 다른 작품이 비슷한 경로로 들어왔던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들 중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히트를 한 작품은 분명히 '란마1/2'일 겁니다. 90년 경에 '드래곤볼'로 인해 촉발된 일본 인기 만화 해적판 러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작품이니까요. 그래서 제 또래 오타쿠들(...) 중 대부분은 란마를 통해 타카하시 루미코란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메종일각'이나 '시끌별 녀석들'이 출간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었죠. 그렇게 이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란마1/2'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첫 체험의 임팩트가 거의 이 작품으로 쏠렸고. 그래서 더 좋게 보게 되는 면이 있어요.


 암튼 그 시절의 제게 이 만화는 충격이었습니다. 

 자식놈이 맨날 자기 애비를 쥐어 패고, 애비는 맨날 자기 배 채우자고 자식 팔아 먹고. 그 외에도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매우 1차원적인 욕구('욕망'이란 표현도 아깝... ㅋㅋ)를 채우기 위해 오만가지 악행을 서슴지 않는데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다 개그로 승화된단 말이죠. 그것도 교훈 같은 건 거의 찾아볼 길이 없는 그냥 개그... 살짝 오버하자면 그동안 갖고 살던 가치관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달까요. ㅋㅋㅋ


 거기에다가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골 때리는 새 캐릭터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황당무계한 사건들은 대체 이 작가님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가... 라며 매번 감탄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무대뽀로 웃기기만 하다가 갑자기 슥 튀어나오는 로맨틱한 장면들은 또 얼마나 적절하던지. 친구들이 다 드래곤볼, 북두신권, 시티헌터를 붙들고 열광하고 있을 때 전 '하지만 란마1/2이 더 재밌다고...'라고 혼자 중얼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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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용 캐릭터에 아주 소소한 에피소드지만 되게 좋아했던 캐릭터 & 에피소드였고 이번에 다시 보면서도 웃었습니다. ㅋㅋ)



 - '시끌별 녀석들'이 그랬듯이 요즘 기준으로 보면 괴앵장히 걸리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죠. 특히나 상황에 따라 거리낌 없이 여자로 변해서 옷을 벗어 제끼는 란마의 행동을 보면 21세기 기준으론 변명의 여지가 없는 폐급 캐릭터라 하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이게 21세기 만화는 아니니까요. 이미 재밌게 봐 버린 몸인 제가 지금 다시 보기에 살짝 난감하긴 해도 그렇게 큰 문제까진 되지 않았구요.


 그리고 작가 본인이 여성이지 않겠습니까. 아니 여성이니 맘대로 아무 얘기나 해도 된다는 건 당연히 아니구요. ㅋㅋ 가만 보면 '시끌별 녀석들'이나 이 작품이나 성별 역할 분담이 아주 확실한데요. 쥐어 패고 싸우는 건 남자애들이 해도 그 남자애들을 움직이는 건 언제나 여자애들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이죠. 1957년생 일본인 여성... 이라는 작가님 특성상 분명히 낡은 성관념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절대로 여자애들을 꽃병풍이나 매가리 없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그리진 않아요. 그것만 해도 그 시절 일본 소년 만화 기준으론 꽤 훌륭했던 게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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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적 여성관과는 분명히 10광년 정도의 거리가 있습니다만. 시대 여건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뭐... ㅋㅋ)



 - 1987년부터 1996년까지 10년을 주간으로 연재했던 작품입니다. 그것도 에피소드 하나에서 둘 정도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형식으로 이어진 시리즈였죠. 그러다보니 아주 후반까지 가면 좀 반복되는 느낌도 들고 약빨이 떨어지는 기분도 들고 그래요. 시끌별 녀석들을 읽고 이어서 읽는다면 더더욱 하지만 다행히도 그게 오래 지속되기 전에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줘서 이미 질린 작품을 꾸역꾸역 읽어 제끼는 체험은 안 해도 되어서 좋았구요. 그 시절엔 좀 애매하고 싱겁다 싶었던 엔딩도 지금 다시 보니 그냥 적절합니다. 어차피 이게 일종의 일상물인 것인데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엔딩보다 어울리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이걸 10년간 봐 온 사람이 마지막에 찬 물 뒤집어 써도 여자로 안 변하는 란마를 보면 그게 시원하겠습니까 섭섭하겠습니까. ㅋㅋㅋ 단행본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도 그런 얘기가 적혀 있더라구요. 여자 란마를 없애 버리고 싶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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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동안 정 들인 이 귀엽고 웃기는 놈들이 싹 다 사라지는 게 과연 해피엔딩일 수 있겠습니까!!? ㅋㅋ)



 - 암튼 뭐. 

 '시끌별 녀석들' 때문에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단 얘길 많이 듣긴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작가 본인의 확립된 스타일을 이전보다 더 발전한 절정의 감각으로 펼쳐낸 작품... 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반복이라는 느낌을 제껴 놓고 보면 그림체, 액션 연출이나 이야기 전개 등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전작보다 발전했단 느낌이 확실히 들거든요. 지금 와서 다시 봐도 굉장히 부담 없이 책장이 다다다다 잘 넘어갑니다. 스무 권을 금방 다 봤어요.

 본문에도 적은 21세기 관념에 잘 안 맞는 설정이나 내용들 때문에 요즘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기에 적절한 작품인가... 라는 부분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이라면 아마 요즘 청소년들이라고 해도 일단 재밌게 보긴 할 거에요.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재미 하나는 확실한 작품이니까요. ㅋㅋㅋ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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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선 애니메이션 방영 때문에 또 인기가 몇 배로 폭발이었죠.



 사실 전 만화책만 보고 애니메이션은 단 한 편도(...) 안 봤지만 이 노랜 워낙 인기가 많아서 종종 들었죠.

 근데 지금 보니 가사가 심오하네요. '여자 남자는, 남자 여자는, 우리 세상엔 친구가 안돼' 라니. 음... ㅋㅋㅋㅋ



 ++ 매우 신비로운 우연의 일치로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리메이크 버전 애니메이션이 10월 6일에 공개된다고 합니다. 아니 전혀 몰랐는데요. 



 +++ 이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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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엽고 그럴싸해서 올려 보구요.



 ++++ 워낙 인기가 많았다 보니 게임도 여럿 나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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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요 격투 게임이었습니다.

 저희 집엔 슈퍼 패미컴이 없어서 친구네 가서 했었는데... 정작 게임기 주인은 게임에 소질이 없어서 제가 맨날 킹을 골라 약올리며 놀던 기억이. ㅋㅋ 그 녀석도 잘 살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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