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번 이슈에서 민희진-뉴진스 편드는 분들이 민희진의 성희롱 은폐 의혹건에 대해서는 이악물고 외면하는 게 참 보기 그렇더군요. "너 하이브니?" 하고 모함하는 민 전대표의 대응이나 그런 것에 동조해서 성희롱 피해자 몰아세우는 장면도 되게 익숙한 그림이고요. 동일한 건이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비난했을 분들이 자기들이 듣기 좋아라하는 음악을 생산하는 집단의 흠결이라고 모른 체하면서 제가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하이브니 뭐니 어도어 권력 관계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제가 이 이슈에 대해 시큰둥해지게 되더군요. 전 이제 하이브-민희진 갈등은 어떻게 결말이 지어지든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 성희롱 은폐 건이나 제대로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


"성희롱 은폐한 걸로 고소당한 사람은 그럼 무슨 민희진이 아니고 민희진 2랍니까. 왜 분리를 해야 하죠?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민희진 전 대표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능력있고 일 잘하는 프로듀서가 방시혁을 비롯한 하이브 경영진으로부터 부당하게 내쳐진다는 서사가 먹혀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게시판에서 민희진 옹호하시는 분들은 그 서사에 천착하고 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본 성희롱 은폐 사건에 대처하는 모습이나 뉴진스와의 관계 등 이런저런 행태를 보면 민희진은 그다지 옹호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것이 제 결론이에요. 뉴진스를 민희진 없으면 자립도 못하는 아티스트로 만들어놓은 건 대체 뭔지 싶고. 정해진 계약관계 어겨가며 내쫓으려는 하이브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쯤되니 전 민희진이 대표에서 물러났건 말건 간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지들끼리 지지고 볶든 알아서 하라죠. 다만 이 건에서 민씨 실드치고 옹호하시는 분들은 결국 자신들이 믿는 정의가 자신들의 이익에 위배될 때는 은근 슬쩍 고개를 돌리는 아주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를 보였다는 걸 자각은 하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민희진의 성희롱 은폐 의혹에 대해서 묻는다면, 저는 민희진의 책임과 과오가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피해자의 말이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그와 부대표의 대응이 전형적인 사내 정치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미 해당 건에 대해서 제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민희진을 비판하는 입장을 피력했고, 그에 공감하는 다른 뉴진스 팬들과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종종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성 지인들과도 사적인 자리에서 고민을 나눈 적이 있고요. 제가 이 건에 대해 "듀나게시판"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해당 건에 대해 듀나게시판 회원들이 저의 개인적인 고통과 윤리적인 고민을 나눌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이악물고 외면" 같은 게 아닙니다. 이런 표현으로 사람을 위선자 취급하는 걸 보면 그냥 어이가 없습니다. 


'당신이 00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xx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지'


어떤 사안에 대해 발언의 의무를 요구하는 eltee님 같은 분들을 보면 되묻고 싶어집니다. 저한테 윤리를 맡겨놨나요? 혹은 제가 모든 건에 대해 모든 윤리적 입장을 다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본인은 모든 윤리적 쟁점에 대해 듀나게시판에 어떤 입장들은 다 투명하게 밝히나요? 그냥 개인적으로만 말하면, 이 게시판에 민희진과 하이브 관련 글을 올리는데 제 여유 시간을 엄청나게 할애합니다. 하이브와 민희진의 구도에 대해서만 쓰는 것도 몇시간씩 걸립니다. 저는 시간 빌게이츠가 아니고 어떤 건에 대해서 쓰는 것만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제게 무슨 어떤 공적인 책임을 준 것도 아닌 분이 이렇게 저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조금 다른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도대체 같은 게시판의 같은 회원에게 왜 이렇게 금나와라 뚝딱 입장 내라 뚝딱을 외쳐댑니까? 본인들이 어떤 독자로서, 일종의 "소비자"로서 누군가에게 무슨 글을 쓰게 하고 그걸 본인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거 아닙니까? 듀나게시판에서의 글로 제 '행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게 너무 오만합니다. 저한테 이 게시판은 증명을 위해 애를 쓸만큼 그렇게까지 의미있는 곳이 아닙니다.


제가 되묻고 싶습니다. eltee님은 민희진의 성폭력 은폐 의혹에 대해서 듀게에 글을 썼나요? 안쓰셨죠. 본인이 글을 안쓴 것은 그냥 시간이 없거나 써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느끼셨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댓글로 왜 어떤 사람들은 민희진의 성폭력 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글을 안쓰냐고 비난합니다. 해당 건에 대해 글을 안쓴 것은 저나 eltee님이나 동일한데, 마치 저나 어떤 사람에게는 훨씬 더 막중하고 드넓은 윤리적 책무가 있고 그를 위반한 것처럼 평가합니다. 왜 동일한 듀나게시판 회원인 저는 그런 입장을 밝히는데 필수이고 그게 윤리라고 생각하는지? 그게 바로 소비자의 태도입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배달 어플에 별점을 매기듯 본인이 볼 수 없는 듀나게시판 바깥의 부분까지 함부로 추측하며 인격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떤 커뮤니티의 소비자니이니까 자신의 글과 댓글에 어떤 의무도 책임도 없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신에게 계속해서 엄격한 윤리적 일관성을 체크받아야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안은 반드시 듀나게시판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사안이며, 이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이악물고 외면"하는 것이고 "자신들이 믿는 정의가 자신들의 이익에 위배될 때는 은근 슬쩍 고개를 돌리는 아주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라고 표현한 건에 대해서는 정말 황당함을 느낍니다. 이런 식의 논리로 치면 듀나게시판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저한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사태를 "이악물고 외면" 하거나 "내로남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사안에 대해 언급을 안하니까.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으니까. 그런 식으로 평가하면 또 부당하다고 하시겠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은 저한테 정말 심각하게 느껴지는 사안입니다. 그런 건에 비교하면 뉴진스 건도 별다른 일이 아닙니다. 가자지구에서는 팔다리 날아가고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민간인들이 싹 죽어나가니까. 자, eltee님은 뭘 하셨습니까? 듀나게시판에서 뭘 이야기하셨나요? 저도 eltee님의 관련 사태 발언이 없는 것에 대해 부작위로 평가하고 비난을 퍼부어도 됩니까? 대체 왜 윤리로 줄세우기를 합니까? 


윤리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언어적 실천과 그 이후의 실천을 함께 도모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이제 듀나게시판에서 그런 식의 아주 진지한 글을 별로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이 게시판은, 딥페이크로 나라가 난리가 나도 관련 글이 딱 두개 밖에 안올라오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제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한 후기를 쓰면서 썼던 겁니다. 이런 게시판에서 무슨 윤리에 대한 의무나 책임이 있습니까? 그 어떤 사건이 터지고 세상이 쑥대밭이 되어도 듀나게시판은 완전히 평화로운 곳인데? 딥페이크 사건 터지고 저는 박지현씨와 장혜영씨가 주도했던 토론회에 방청을 다녀왔고, 보신각에서 하는 딥페이크 규탄 시위에 다녀왔고, 권김현영씨와 서지현씨가 주도하는 또 다른 딥페이크 긴급 토론회에 방청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진짜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면에서는 성폭력의 임계점이 또 뚫린 지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책임과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듀나게시판에서 글 깨작거리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의미하다고 느낍니다. 어차피 이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도 없고 저 혼자만 또 유난 떠는 것처럼 일장연설 늘어놓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저런 스케쥴을 다 소화하면 그냥 체력적으로 피곤합니다. 


저는 듀게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윤리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별로 많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윤리적 실천의 현재진행형, 잠재적 '동지'들은 다른 곳에 훨씬 많다고 느끼고 반응도 훨씬 더 많이 옵니다. 그리고 저한테 eltee님은 윤리적 입장을 필수적으로 공유해야할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제 블로그에 올리는 수십개의 성범죄 기사들을 듀나게시판에 아예 안올립니다. 아, 여기에 이런 거 올려봐야... 그게 딱 이 게시판에 제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eltee님은 이런 생각을 깨부술만한 유의미한 사람이 저한테 아닙니다. 이런 본인이 듀나게시판 윤리적 글쓰기의 감독관이라도 된다고 믿으시는건가요. 저는 퇴근 후에 사적으로 도덕적 유난을 떠느라 바쁩니다. 본인은 뭘하고 계셨나요?


제가 짜증이 나는 지점은, eltee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외치는 어떤 윤리적 지점들이 전부 다 '민희진 불매'에서 그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윤리를 외치면서도 글 하나를 안씁니다. 그리고 민희진 글을 안쓰면 본인의 그 윤리적 실천은 완결됩니다. 그 모든 게 '민희진 이야기 안함'으로 완성되는, 본인들의 윤리적 결백을 증명하는 장입니다. 너는 어떻게 저런 사람을 지지하고 좋아해? 너는 내로남불인데? 이를테면 트위터에서 꼭 남자작가 책이나 예술품 소비해주지 말라는, 이른바 '한남 안묻힌다'는 그런 식의 "안함"에 너무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 같습니다. 계속해서 본인들이 자신의 결백에 얼마나 철저한지만을 이야기합니다. 댓글로, 아무 것도 안함을 증명하면서 실천하는 윤리라니 정말 편리하고 쉽네요. 이런 식의 논리라면 베테랑 2를 포함해 어떤 것도 소비하지않는, 아무것도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 무적이 됩니다. 저는 무위로 윤리를 증명하려는 태도가 정말 게으르다고 느낍니다.


본인이 듀나게시판에서 실천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이 실천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내로남불' 같은 단어로 비난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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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계속 반복해오던 말인데, 이번 사태에서 민희진을 이야기하려면 하이브를 이야기해야합니다. 조국을 이야기할 때 검찰을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야 최소한 어떤 사람들이 왜 조국한테 국회의원하라고 표를 줬는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안티검찰'이라는 상징으로 인기를 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건을 두고 민희진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이브가 민희진에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최소한의 맥락이 완성됩니다. 이미 민희진은 하이브라는 주체와 엮여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사람들이 민희진만을 떼어놓고 호불호를 이야기합니다. 물론 민희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민희진을 왜 싫어하지 않냐고 별의별 근거를 갖다대봐야 그 논의에서 하이브라는 대상이 소거되어있으면 그건 그냥 의미없는 인상비평으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이 게시판에서 이런 인상비평하는 분들은 민희진은커녕 뉴진스도 제대로 아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 게시판에서 해당 이슈를 제일 많이 이야기했던 사람으로서, 이제 저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이 왜 하이브에 화를 내는지 다른 사람들이 간신히 따라잡는 느낌마저 듭니다. 처음에는 민희진이 누구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채 쌩뚱망뚱한 글이 올라왔죠. 이제 민희진이 얼마나 나쁘고 사악한지 민희진을 욕하고 하이브는 찬양하는 글이 올라옵니다. 그 다음에 올라온 글들이 하이브도 싫지만, 민희진은 더 싫다는 양비론의 글입니다. 이제야 하이브를 맥락 안에 끼워넣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제 도저히 하이브를 외면하거나 배제할 수 없으니까 부분적으로라도 논의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인데, 그럼에도 하이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감을 못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관심이 없는 분들이니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이브 피알 담당이 기자한테 전화해서 뉴진스는 일본에서 앨범 별로 못팔았다고 후려치는 건에 대해 회사를 쌩판 안다녀본 사람처럼 반응하는 걸 제가 어떻게 설득합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를 포함한 어떤 사람들이 단순히 민희진을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안티 하이브'의 맥락에서 지금 이 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편으로 이것이 바로 개인이 개인이 아닌 주체와 대결할 때 생기는 권력적 구도의 함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개인이 '기업'과 붙으면? 개인이 '검찰'과 붙으면? 개인은 개인으로서 금새 인격화되어 인격체로서의 모든 결격사유를 탈탈 털리지만 그에 맞서는 조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격화의 심판' 자체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인격화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공정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민희진은 카톡이 탈탈 털렸습니다. 그러면 "하이브"의 구성원들의 카톡은 그렇게 탈탈 털립니까? 어떤 기업이나 검사에 아무리 실망을 하고 비판적 시선을 가져도 그것은 인간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는 비인격적 주체에 대한 실망이기에 비판의 효용은 전혀 다르게 작동합니다. 애초에 인격체로서 이입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이, 그저 어떤 권위나 위력만을 실행합니다. 키오스크에게 불친절하다고 하는 대신 불편하다고 화를 내는 것처럼, 사람들의 집단임에도 어떤 조직은 그 자체로 인격적 비판이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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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게시판에서 정말 신박한 표현들을 많이 봅니다. "뉴진스를 민희진 없으면 자립도 못하는 아티스트로 만들어놓은 건 대체 뭔지 싶고."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몇번이나 말하는데, 이 분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전혀 다론 종류의 협업이자 창작업을, 그냥 일반인이 회사 다니면서 일하는 것에 끼워맞춰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프로듀서가 없는데 대체 아이돌들이 어떻게 일합니까? 아이돌들이 무슨 앨범 컨셉에 디자인에 의상에 안무에 어디에 출연하고 뭘 할지 그냥 알아서 다 결정합니까? 프로듀서 자리에, 대표 자리에 그냥 아무나 앉혀놓으면 뉴진스가 여태껏 해왔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음악이 뚝딱 만들어집니까? 같은 가수여도 유영진이 개입한 에스파 노래와 그렇지 않은 에스파 노래는 아예 다릅니다.  뉴진스는 본인들이 일을 하고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사람을 본인들 스스로 체감하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자립 못한" 상태가 됩니까? 영화 감독이 이 영화를 찍을 때 이 배우가 꼭 있어야 한다고 하면 그 감독은 그 배우에게 자립을 못한 게 됩니까?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본인이 파트너로서 어떤 사람을 간절히 원하는 걸 의존이라고 해버린다면 그건 사회의 작동방식에 대해 아예 이해가 없거나 괴상한 오독이죠. 


이런 창작업은 특정 결과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특정 인물이 어떤 자리에 가야만합니다. 사람 자체가 자원이자 기능입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어떤 결과물을 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업을 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때 와이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건 테디입니다. 이 사람 없이는 당시의 투애니원과 빅뱅의 성취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티아라가 그 유치한 고양이 손 장갑을 끼고서도 성공했던 이유는 당연히 프로듀서 신사동 호랭이 때문입니다. 저스틴 팀벌레이크의 솔로 2집의 메가히트에는 당연히 프로듀서 팀벌랜드가 있습니다. 뭔가를 창작하고 수행하는 프로듀서에게는 유능하고 자신과 비전이 맞는 협업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권투선수 타이슨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의 멘토이자 코치인 커스 다마토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뉴진스의 녹음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민희진이 직접 녹음 현장에서 디렉을 주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민희진은 가수도 아니고 음악 관련 종사자 출신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직접 앨범 녹음에 참여해서 프로듀싱을 하는 겁니다. 어떤 보컬 전문 유튜버는 그런 자컨에서 실제로 발매된 뉴진스의 앨범 버전의 노래 이전의 녹음본을 들으면서 자신이라면 어떤 디렉을 줄 것 같다고 초 단위로 멈춰놓고 리액션을 계속하는데, 민희진씨가 자신과 거의 비슷한 디렉을 줘서 신기하다고도 반응했습니다. 


저는 이런 걸 제가 왜 설명해야하는지 이제 모르겠습니다. 뉴진스의 자립이요? 느닷없이 싱어송라이터가 되라는 말인가요? 모든 아이돌이 작사작곡 프로듀싱까지 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어떤 판이 전문화될 수록 그 판은 점점 분업화가 됩니다. 그 분업들의 합을 총괄적으로 어우르고 감독하는 리더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게 영화판에서는 감독이고, 이런 아이돌 앨범 작업에서는 프로듀서입니다. 많은 음악평론가들이 뉴진스의 앨범에 일관적으로 묻어나오는 민희진만의 '때깔'을 이야기합니다. 뉴진스는 그 고유한 개성을 직접 만들고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프로듀서이자 대표이사로서 민희진의 능력을 몸소 느꼈던 사람들입니다. 뉴진스가 민희진을 대표이사이자 프로듀서로 요구하는 게 어떻게 "의존"입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작 민희진의 공백에는 누가 어떤 식으로 뭘 해야할지 그 대안을 하나도 이야기못합니다. 당연하죠. 모르니까요. 그냥 대충 아무 말이나 하는 거니까요. 하이브가 알아서, 그냥 좋은 프로듀서 꽂아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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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본인의 자유입니다. 제가 개인적인 호불호까지 간섭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 개인적인 호불호를 절대적인 도덕이나 가치관처럼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 정말 어떻게 된 논리적 구조인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냥 말하는 것만 봐도 별 관심이 없고, 사람은 커녕 어떤 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본인들이 뭔가를 통달했거나 지식이 해박한 것처럼 떠드는 건가요? 저는 이 게시판에 감도는 이 나르시시즘이 그냥 소규모 커뮤니티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런 사람들만 남은건지 이제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나 기분이 더러워지는 건 진지하게 글을 써도 그걸 아주 쉽게 퉤 하고 뱉어버리는 '윤리 쇼핑'같은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지나치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민희진이 어떤 이유로 싫으니까 이번 건은 알 바 아니다'라는 식으로 굳이 본인의 입장을 표명하는 그런 태도입니다. 네, 당연히 자유죠. 그러니까 그런 무관심의 권력을 보면서 윤리쇼핑의 소비자에게 뭘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죠. 그래서 저는 딥페이크가 됐든 뭐가 됐든, 다른 이슈에 대해서도 별 이야기를 안하고 싶습니다. 제가 무슨 상품판매자처럼 이건 마음에 드실테니 한번 드셔보시고 마음에 맞으시면 지지나 동의를 하나 주시죠~ 하며 영업을 하고 호소를 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이 게시판은 유난히도 시니시즘으로 깔아뭉개는 걸 무적의 기조로 삼습니다.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내가 신경써야해? 하는. 그러니까 제가 이 게시판에서 온라인의 윤리라는 게 얼마나 싸구려인지 처절하게 실감하게 됩니다. 태도만 전시하는 것으로 모든 걸 챙기려 하니까요.


저는 제가 방탄 팬이나 다른 아이돌 팬이 아니어도, 그 사람들이 트럭 시위 보내고 소속사의 부당처우에 항의하는 걸 비웃지 않습니다. 다 그들만의 진지함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선심 한번 써준다 안써준다 식으로 어떤 이슈를 갑자기 후려쳐버리는 태도가 정말 신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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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의 편리한 점은 어떤 대상들을 모조리 격하시키면서 자신의 권력을 뽐낼 수 있다는 점이죠. 양비론의 최종적인 승자는 모두까기를 하는 자기자신입니다. (진중권이 이러다 망했습니다) 알 필요도 없고 신경쓸 필요도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일축해버리면서 본인만의 알 수 없는 지적, 도덕적 권력을 과시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신경을 안쓰는 것도, 어떤 대상 모두를 안좋아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어떤 의견처럼 내보이면서 양비론 자체를 어떤 윤리적 실천으로 여기는 태도가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에는 정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논의에는 끼고 싶지만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는 간편한 방법이니까. 


양비론은 결국 권력자에게 불의한 승리를 갖다 줍니다. 둘 다 똑같다고 하는 순간 모든 도덕적 간섭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현재 보유한 권력 뿐이니까. 저는 계속 말하지만, 뉴진스 건을 신경을 써야된다거나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야한다는 게 아닙니다. 논의를 할 거면 최소한의 정보나 맥락은 찾아보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어떤 사안을 별거 아닌 거라고 후려치면, 본인은 뭐 얼마나 고상하고 위대한 사안들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까? 그리고 뭘 하고 있습니까? 


오늘 하니가 민희진의 강연을 응원하는 카톡을 보낸 게 민희진의 인스타에 올라왔습니다. 어차피 이런 정보가 차고 넘쳐도, 또 어떤 사람들은 가스라이팅을 운운하고 민희진의 인성을 판별하면서 양비론으로, 민희진을 비토하는 쪽으로 계속해서 생각을 하시겠죠.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인생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해봤다면, 그리고 그런 입장에 처해봤다면 다른 싸우는 사람들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글을 쓰면서 표현이 귀찮지만 같은 고민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이제 점점 희박해집니다. 어차피 온라인에서는 모든 것이 다 쉽고 남의 일이니까 그게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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