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6 11:34
아래 글타래 읽어보다가 아, 질투랑 시기심이 다른 거구나 싶었네요.
저는 시기를 많이 당하기도 했고 제가 많이 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좋지 않은 양육 환경으로 사회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거죠. (에릭 에릭슨의 1단계 숙제 '신뢰'부터 안 되어 있으니 뭐... ㅠ.ㅠ 누가 내 쪽을 보고 웃으면 '나를 비웃나?'라는 생각으로 철렁 내려앉아요. 그냥 그 사람은 우연히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도 공부머리는 좋아서 -정확히 말하면 객관식 정답을 찾는 머리가 좋아서- 제가 다니던 소도시의 초-중학교에서 늘 압도적으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중간에 전학을 가기도 했는데, 전학 가자마자 전교1등을 해서 그 학교 사람들이 놀랐던 기억도 나고요. 그래서 저는 늘 다른 동급생 엄마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잔소리할 때 단골 소재로 등장했습니다. '자두는 이번에 100점 맞았는데 너는 몇 점 맞았니? 응?'하는 식으로요. 제가 전혀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비교당하는 친구들의 기분이 좋을 리 없고 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겠죠... 유년기는 늘 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집은 감정적으로 더 불안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어디서도 위안을 얻지 못했지요.
대처에 나와서 상급학교에 진학했더니, 헐, 여기서는 제가 또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정말 똑똑하고 천재적이고 집안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악기도 잘하는 그런 친구들이 널려 있었고, 이번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없는 거예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찌질이 열폭하느라고 노력도 안 하고 한탄만 하며 시간을 낭비하긴 했습니다. 성실하게 한 걸음씩 공부하고 운동했다면 그 상급학교에서 괜찮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때는 너무 격차가 커 보여서 그냥 넋놓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늘 '똑똑하게 타고났다.' '천재다'라는 칭찬을 듣고 자라서 그랬다 싶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노력이 아닌 재능에 대한 칭찬은 아이를 망치기 위해 아주 적합한 칭찬이더군요.) 내가 갖지 못한 천재성을 가진 친구들을 많이 시기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내 갈 길을 고민하고 조금씩 정서적 안정도 찾고 이래저래 크고 작은 성취도 이루었어요. 어쩌면 지금의 나를 미친듯이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 속을 다 까서 보여주고 싶어요. 난 이렇게 지금도 속으로는 찌질이 열폭하는 사람일 뿐이고, 늘 불행하다고 느낀다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천진하게 자랑하지 않고 불행을 가장하는 것이 이놈의 경쟁 심한 한국사회에서 미운털 박히지 않고 사는 팁인가 싶기도 해요. 남들이 앓는 소리를 해야 안심이 된다죠.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가 그런 맥락에서 나온 노래라고.
준결승에서 '난 지금 최고로 행복해요'라고 인터뷰했던 유쾌한 중국 수영 선수가 생각나요. 그 사람도 고된 훈련을 겪었겠고 또 여러 마음 고생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처럼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에릭 에릭슨의 1단계 숙제부터 어떻게 좀... ㅠ.ㅠ)
전 별로 잘나지 못해서 시기를 받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네요. 엄마가 아는 "엄친딸"과 비교 당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있지만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문제은행(연식 나오나요)을 했었는데 당연히(..) 거의 풀지 않았습니다. 대학 구내 복사점에서 책 한권을 복사 제본한 듯한 흑백의 지겨운 문제집이 정말 싫었습니다. 양은 또 왜그렇게 많은지.. 초등학교에서 공부할 게 뭐 그리 있다고.. ;; 그래서 사은품으로 받은 천가방만 잘 가지고 다녔었죠..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떤 여자애가 문제은행을 다 풀고 문제집을 새로 사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너무 충격적이라서 아직도 기억합니다. ㅋㅋ 전 그냥 걔가 비정상이라기 생각해버렸어요. 그 후에도 엄친딸 이야기에 스트레스를 좀 받았지만 엄마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란 걸 알게 된 후 그냥 한 귀로 흘리고 말았어요. 사실 저희 엄마는 제 공부에 별로 신경 쓰시지도 않았거든요. 아마 저도 엄마 친구들 집에서 엄친딸이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