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작업을 한 사람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죠. 관리감독의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을 뿐이었고 숭례문의 화재, 유실의 시기와 상황에 대한 안좋은 기억 + 대충 후다닥 복원에 급급한 당국의 습성에 대한 경험치에 의해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참조본이 다른거였군요. 만약 선택의 문제였다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하필 왜 전작보다 더 후지게 보이는 참고본을 택하였나를 두고 따지는건 있을 수 있는 쟁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선택, 결정의 과정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을 하는건 충분히 가능하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에 따라 조금씩 수정되어온 것중에서 가장 오래된 참조본을 따르는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에요. 조선초기본이 있었고 조선후기본이 있었다면 그렇게 변해나간 과정도 하나의 역사라고 생각하거든요.
sooboo님은 어떤기준으로 비판을 하신지 잘 모르겠지만,일반적인 분위기,심지어 듀게에서도 초점이 된건 그림형태 그 자체였죠. 용이 유치하고 후지다.색감이 후지다..왜 작업자 화풍으로 마음대로 바꾸냐..등등. 실제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저걸 싹 지우고 새로 그려야 한다.는 의견들이 물밑듯이 넘실댔어요.
배경에 대해서 그렇게 흐를수밖에 없는 전사들이 있긴 하죠. 한국의 문화재관리나 복원이 자주 문제가 되었다는 점과 더불어,이명박정권이 자신의 시기에 일어난 참극에 대해 무리하게 봉합하려는 시도가 있고,그래서 숭례문 복원작업을 무리하게 서두른다는 소문들도 많았고요.
그러나 공격방향이 '용의 모양이 촌스럽다'로 흐르는 점은 좀 의아하긴 했어요. 관련해서 글을 하나 남겼었는데,배경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는 시점에서 그런관점이 올바른 비판인가.하는 점이 의구심 들어서 검토해봤던거고,다른 커뮤니티에서 관련자 한분이 자기가 봤을떈 큰 문제가 없어보인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계셨고,나름 수긍이 가더라구요.
음....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미감으로 토를 다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미감과 별개로 그림의 복원과정 그리고 참조본의 선택과정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충분히 논란이 있을 수 있었다고 봐요. 조용히 지나치기보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지식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의견을 내는 것은 광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문명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가 치 있는 논란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판본에 대한 선택문제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여러 전통문화 관련하여 언제나 있어온 소동들이기도 합니다.
다른일도 아닌 문화재복원과 관련해서는 재반지식이 없는 개인의 '미적 취향'이 비판의 근거가 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 일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남아있던 그림과 대조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그림이 공분을 샀던건데,함께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이 바로 이전의 단청 경우에도 이미 한번 교체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던거고,그 배경만 드러나도 '유치하다,용이 촌스럽다'를 벗어난 보다 실질적인 논의가 바로 나올수 있었겠죠.그 과정에 도달하지 않고 조금 성급하게 일어난 소동이라고 봅니다. '엇? 기존과 다르네? 근데 더 별로네? 엉망이네? 누가 이따위로 그린거야? 다시 그려라!!' 듀게를 지칭하는건 아니고 인터넷상의 소동들이요.
이명박오세훈이라서가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전례개혁이 있었는데 전례학자들의 초기교회 전례연구 성과를 반영시킨 결과죠. 그런데 일부 전례"주의자"들이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화려하고 웅장한 전례만이 "전통"이라고 우겨대며 거의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대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어쩌다보니 저도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멋쩍네요.
딴 소리인데 어느시대 것을 복원했던 현재 그려진 용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눈동자의 크기입니다.어느시대 용이건 눈동자와 흰자가 1대 1비율로 그려진게 보이는데 지금 쟤는 눈동자 1에 흰자 2란 말이죠. 역시 어느시대 어느 생명체건 눈이 중요합니다.눈동자가 작으면 확 죽어요.눈동자를 좀 키워주었으면..(현대 인간이 왜 서클렌즈를 끼는지도 숭례문 용을 보며 깨닫고 갑니다.)
제 눈엔 귀여워요. 시간이 좀 흐르고 좀 낡으면 흔히들 떠올리는 단청의 고풍스러운 맛도 더해져서 더 보기 좋겠죠. 절구경 좀 다니다 보니 의외로 진중하기만 한 건 아니더라구요. 새로 칠한 단청색이나 막연하게 기대되는 진중함같은 것이 낯설어서 벌어진 소동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풍화때문에라도 자주 칠하는 모양이니 매번 사진 크게 잘 찍어서 박물관 같은데서 시기별 비교같은 거 해주면 한 일이백년 지나면 그것도 재밌을 거 같아요.
예상되던 일이라 입다물고 있었지만 배경지식이 없이 본다면 비웃음을 살만한 퀄리티라고 보이는 건 어쩔수 없죠. 설령 저 그림이 1963년이 아니라 처음의 원본이었다고 하더라도 화재전의 용그림과 비교했을때 웃기게 보이지 않나 싶네요. 일반적으로 복원이란 건 소실전으로 되돌리는 걸 복원이라고 하지 태초 모습으로 되돌리는 걸 말하는 건 아니죠.
이사무님이 올려주신 링크에 들어가서 보니 참여하신 분이 말씀하시길 "제가 저 사진으로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선을 본따고 그것을 본으로 지금 용을 그린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머리가 지끈... 왜 저렇게 디테일이 떨어지면서 전체적으로 느낌이 단순해지고, 특히 선 느낌이 조야한지 바로 나오네요.
복원시 무엇을 기준으로 했는지가 의아합니다. 위의 원그림을 정확히 복원한 것도 아니고, 단청 장인 아드님이 자의적으로 선을 부드럽게 바꿔놓았다니....
그냥 복원이라면 원본을 복원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드님 글을 읽어보고 의문점이 더 생깁니다. 문화재청에서 지정해 준 1963년 용을 복원했다고 본인이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왜 1963년 용과 다른 용으로 일러작업을 했을까요? (같은 용이라고 보시는 분들은 지나가세요)
더욱이 문화재 복원작업을 아무리 아버님이 단청장인 중요무형문화재 48호라 하시더라도 왜 문화재와 관련없는 아마추어 아드님이 밑그림을 조정(보완?)을 하시는지 참..
단청장인은 이분이 아니고 아버님이신거잖아요. 그리고 사실 아버님도 단청도장장인이지 복원전문가가 아닌 것 같은데요.
우선 원본과 복원본의 완성도에서 차이가 난다고 느낍니다.(물론 개인적의견입니다) 흑백으로 된 두 그림이 있다면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은 예전 원본의 퀄리티가 더 낫다고 느끼시리라 생각하고 싶습니다.(소심;;;) 꼬리,구름, 용얼굴 등 디테일에서 너무 차이가 납니다. 디테일에 관심이 적으신 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이런 디테일의 차이를 참는게 어렵습니다.
아무튼 색상에 대한 이야기나 고증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서.
흑백기준으로 보더라도 복원 전 후가 그림이 달라졌고. 그 복원라인과 구도를 누군가가 조정했고. 물론 승인은 받았을 테지만(여기가 가장 의아합니다. 어찌 이런 다른 그림을 승인해줬는지) 그런데 무언가 어색하고 원본보다 못한 결과물이 나온 듯 느껴집니다.
"작업과정은 처음 단청할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가칠을 한다. 끓인 아교를 엷게 물에 타서 목부에 골고루 바른 다음 그 위에 밀타승(密陀僧), 즉 흰색 안료를 칠하고 다시 아교물을 먹인 후에 쇠녹이나 석간주색을 칠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 번 거듭하면 단청할 바탕이 조성된다. 가칠로 바탕이 완성되면 초상(草像)한다. 종이에 그려진 무늬에 따라 돗바늘로 구멍을 뚫어 만든 화안(畵案)을 대고 흰가루 주머니를 두들겨 가칠바탕에 무늬 초안이 나타나게 한다. 이때 선을 따라 각기 맞는 색을 칠하면 시문(施紋)이 된다."
여기서 가칠을 하기 위한 종이에 그린 라인작업을 아드님이 하신겁니다. 결국 라인과 채색 둘다 문화재청에서 지정해준 1963년 원본과 다른 작업을 한것이죠.
채색을 무형문화재 48호 세분중 한분이 하신것이니 제가 왈가왈부할 수 없을 듯 싶구요. 라인작업과 이에 대한 승인이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사실 디테일 측면에서는 원본이 더 낫고, 개인적인 선호도의 측면에서는 화재 전의 그림이 더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복원라인과 구도의 조정은 복원을 맡은 단청장의 역량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을 따서 그 본을 바탕으로 복원했다지만, 정말 디테일을 보시는 분들이라면 63년의 그림과 저 그림이 선이나 곡선의 느낌뿐 아니라 형태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도 아실거에요. 눈의 위치, 용 지느러미(?)의 하일라이트 갯수 등등. '잘못 베낀'것이 아니라 본을 바탕으로 좀 더 지금 사람들이 싫어하는 명랑한, 동글동글한 느낌으로 변한거랄까요.. 이건 복원하시는 분이 의도하신 걸로 봐야할거고.. 그 '의도'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되어야 할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63년의 그림도 원래 조선시대의 그림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이라고 하니까요.
복원을 맡으신 홍창원 단청장님은 이번에 제가 알아보니 숭례문 외에도 많은 복원 작업을 하신분이더군요. 그분의 현장 경험과 단청 복원에 대한 지식이 이 그림이 '승인'된 바탕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예술의 전문가가 완성한 그림이 지금 우리의 눈에 왜이렇게 마음에 안드냐, 이건 물론 유의미하게 접근해야할 문제라고 보지만 그냥 '퀄리티가 떨어지는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좀 공정하지 않은것 같아요.
+ 라인작업에 아드님의 역할이 얼마나 컸을지 지금은 잘 알수 없다고 봐요..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을 전혀 하지 않고 복원작업을 하신 경험이 더 많으실거고, 거기에서 전수받고 터득하신 나름의 방법이 있으실테니까요.
+ 아 물론 아드님의 일러스트레이터 작업만으로 라인을 뜨신게 맞다면 그건 정말 뜨헉할 일이죠. 하지만 그건 장인이 할만한 일이라고 볼 수 없는것 같아요.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중요무형문화재라는 호칭 못쓰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돌아다니다 어디선가 본 건데, 단청은 원래 금방 색이 바래서 복원도 자주 이루어지고 그런 덕분인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100% 완벽한 복원은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고 그러더군요. (물론 어느 정도 지키는 기준선은 있겠지요.) 사실 여부 확인은 안 되지만, 분야마다 전통이 다른 것도 맞으니까요. 지금 나타난 정도의 터치가 전통적으로 허용되어 왔다면 그것 자체도 단청문화의 특성이니 왈가왈부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도 색감 얘기가 아니고 형태의 얘기였습니다. 캐나다 원주민의 토템기둥 제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서구 사람들이 1mm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복제를 원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물론 단청은 토템이 아니지만 분야에 따라 어느 정도의 유도리가 허용되느냐도 각자 전통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는 얘기예요.
63년 원본 복원작업이라는 복원 기준에 대해서 제가 게시글에 따로 올렸던 기사의 몇 문장을 가져오겠습니다.
"문양 형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19세기의 단청과 1954년의 단청은 조선 후기 단청의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1963년의 단청은 조선 초기 단청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1973년부터 1988년까지의 단청의 경우 문양 형식은 조선 초기 양식이지만 수법이나 색상은 조선 중·후기의 단청 양식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홍창원 단청장은 63년도, 조선 초기의 양식으로 단청을 복원하겠다고 '역설'했고, 그대로 작업했죠. 사실 제 상식으로는 문화재 복원급의 예술이라는게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어떤 '오더'에 따른다는 것이 더 이해가 안가긴 합니다만, 어쨌든 홍창원 단청장의 결정과 의도는 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나름의 근거를 지닌 것 같고 함께 작업하는 장인들과의 상의도 있었겠죠.
제가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말씀하신것처럼 '지켜보자' + 비판의 지점이 명확해져야 할것 같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제가 전제하는 입장은, 예술은 하나의 이미지로만 완결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63년 것을 본으로 하기로 한 결정, 약간 동글동글해진 형태 모두 홍창원 단장과 단청 복원 팀, 나아가 문화재 복원에 대한 큰 틀의 판단이 낳은 예술이라는 거죠.
하지만 지금 우리의 미감에 관련된 이야기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위에 댓글에도 썼듯이요. 단지 그 이야기는 좀 더 상황을 알고나서, 또 작업자와 해당분야의 전문가를 존중하면서 이루어지길 바라는것 뿐이죠.
동경소년 <- 제일 역겨운 타입의 트롤이네요. 광기? 비슷한 광기타령을 한참 정사충대침공 시절의 이글루스에서도 보고 알바가 총집결했던 대선직전 불펜에서도 본 기억이 있는데... 하긴 듀게에서 '광우뻥 좀비'라는 말을 쓰면서 자기는 상식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런 종류의 트롤도 한마리쯤 있어서 이상할건 없겠지만.
63년도에 찍혔다는 저 사진이 진짜로 원래의 용 그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맑고 순진하게 복원된 용 그림은 처음 봅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황룡도 민화들 https://www.google.co.kr/search?hl=ko&newwindow=1&safe=off&q=%ED%99%A9%EB%A3%A1%EB%8F%84&bpcl=40096503&ion=1&bav=on.2,or.r_gc.r_pw.r_cp.r_qf.&bvm=bv.1355534169,d.cGE&um=1&ie=UTF-8&tbm=isch&source=og&sa=N&tab=wi&ei=YU_gUIfQIszSigKFsIFQ&biw=1216&bih=694&sei=ZE_gULjACMvliwKa4oC4DQ#um=1&hl=ko&newwindow=1&safe=off&tbo=d&tbm=isch&sa=1&q=%EC%A1%B0%EC%84%A0+%ED%99%A9%EB%A3%A1%EB%8F%84&oq=%EC%A1%B0%EC%84%A0+%ED%99%A9%EB%A3%A1%EB%8F%84&gs_l=img.12...0.0.8.120017.0.0.0.0.0.0.0.0..0.0...0.0...1c.3jjZ80G8Avw&bav=on.2,or.r_gc.r_pw.r_cp.r_qf.&bvm=bv.1355534169,d.cGE&fp=b0e232346c92ffe4&bpcl=40096503&biw=1216&bih=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