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두고...투표여부에 대한 여전한 고민
1. 몇 년 전 덴마크 관련 다큐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효율이라는 단어 사용 때문인데요. 그곳에서는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에 정규직 임금의 1.5배가 받는 게 효율적이다"라고 말하더군요. 같은 단어임에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국은 원가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게 효율적이다. 라고 말하니까요. 우리가 말하는 경쟁도 북유럽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였습니다. 타인과 경쟁이 아닌, 자기자신과 경쟁의 의미로요.
2. 같은 말을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건 국내에서도 종종 발생합니다. 야권은 거의 '진보'라고 묶이지만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가질 때가 많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한국과 북유럽의 거리만큼 진보 내의 거리를 체감합니다. 쪽수가 적은 흔히 말하는 '좌파' 쪽에서는 거리만큼 절망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3. 2002년 대선은 투표권을 가진 후 처음 치른 대선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노무현을 찍었고, 주변 사람들을 많이 설득해서 친구들이 노무현을 많이 찍었죠. 개표가 시작될 때 즈음에 학원엘 갔는데 지하철 내 티브이에서 예상결과가 노무현이 조금 앞선다고 나와서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막연하게 꿈꾸던 이상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행이도 그 투영이 무참해진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무참해진 이유는 제 투영이 섣불렀던 탓이더군요. 그리고 시위도중 무참히 죽어가던 사람들. 기억해야할 죽음들. 살아도 사는 게 같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제 투표가 무서워졌습니다. 그 과정에 일조했다는 걸 알기에, 그 일조에 기뻐했던 순간을 기억하기에. 그 때부터 투표가 참 무거웠습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책임은, 평화로워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세상이 아니라 평화롭기 위해서 제가 끊임없이 탐구해야할 세상이라는 것도 깨달았죠.
4.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내내 다짐한 점은 내가 무엇을 위해 왜, 투표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답을 내리는 거였습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자주 힘들었고 자주 미안했거든요. 망자 앞에서 우는 것조차 자격이 없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세상과 다른 길로 가는 걸 지지해놓고 제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옆에, 아니 뒤에 서있는 것조차 미안했습니다. 제 한 표가 당락을 좌우하지는 않지만 저와 같은 표가 모아 당락을 좌우한다는 걸 알기에 뼈저리게 체감했기에. 그들을 사지로 밀어넣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염치없던지요. 저는 자주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 2007년 대선에도 같은 고민은 계속됐습니다. 가는 길이 달라서 과정도 목표도 다른데,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야, 같은 목표에 도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옆에 비켜서기가 왜 그리 어렵던지요.
6. 과정이 분명 다르다고 체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대악을 물리쳐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노라고. 불행히도 체감은 모든 이들이 균등하고 함께 느끼는 게 아님을 어떻게 말씀드려야할까요. 야권단일화로 묶인 이번 선거는 다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일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듭니다. 저는 이전에는 생략가능했던 고민들을 시작해야합니다. 최선을 위해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지금 요구되는 선택이 어쩌면 진보정당의 입지를 점차 줄어들게 만들고, 수십 년 숙원이었던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자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선택. 조금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아주 몸의 방향을 틀어야하는 선택에 대해서요.
7. 진보정당을 만들고 후보를 내는 일이, 후보를 선택해서 투표하는 일이 사표라는 주장이 있지만, 실은 그 표는 씨앗표였습니다. 그 씨앗표가 없었으면 2003년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여할 수도, 그 후 총선에서 기록적인 득표율을 이뤄내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지난 총선이 너무 아쉽습니다. 0.1%만 있었어도 노회찬이 후보토론회에 참여하여 더 많은 지지를 위한 발판을 만들 수도 유시민이 심상정 출연을 반대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씨앗이었을 테니까요. 아니 그 전에 3%를 넘어 한 명의 비례대표라도 있었으면, 정당지원금이라도 더 받았으면 이렇게 빨리 심상정이 강을 건너지도 조승수가 패배선언을 하지도 않았겠죠. 그래서 한 표 한 표가 정말 정말 소중합니다. 선거의 중요성과 투표의 소중함이 사무칩니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투표하는 일이 망설여집니다. 이 투표가 과연 진보정당이 돌아서라도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당체제가 굳혀질수록 한나라당이 거대악으로 모아질수록 진보정당에서 후보를 내는 일은 정의에 반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단일화에 계속 협의해주는 민주노동당은 큰 선거에서 연이어 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지율이 낮은 정당에 대한 양보와 배려 없는 단일화는 진보정당에서 후보를 내는 가능성을 차단하니까요. 노동자세력의 정치세력화가 목적이었던 진보정당의 창당과 유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게 만들어주는 행위가 되고 말죠. 현 상황은 진보정당의 목적을 거세하게 만들 겁니다.
9.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수록 진보정당 당원 탈당자와, 표 이탈자는 가속화될 것이고, 더 이상 씨앗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 올 것 같습니다. 너무 두렵습니다.
10. 제 꿈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이 정권 잡는데도 50년이 걸렸으니, 진보정당이 집권하려면 못해도 100년을 걸릴 것이고, 진보정당이 위협이 될수록 비방은 더 심해질 터이니, 그 때까지 진보정당을 유지하는데 힘을 쏟는 거였습니다. 내 생에 집권을 못 보더라도 유의미한 정당으로서 세력을 유지하다보면 어느 순간 확장이 되고 그러면 집권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그 믿음은 운동권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한 양심이었습니다. 애써 이룩해온 진보의 역사를 제 세대에서 마감하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었으니까요. 다음 세대, 그 다음세대가 고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남겨놓을 수 있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11. 그래서 저는 이 순간에도 투표를 해야 하는지, 야권단일화를 찍어야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을 물리친다고 해서 진보정당의 입지가 강화되는 게 아니라는 걸 지난 10년 동안 학습했기에 더욱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선거를, 투표를 포기해야 맞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 휩싸입니다. 인천에 거주하는 친구는 서울시민이었다면 약한 마음 때문에 결국 투표를 하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저는 그 약한 마음이 진보정당에 악한 마음이 되어 돌아오는 게 아닌가 불안합니다.
12.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마도 투표를 하겠지요. 투표장 가는 내내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투표장 앞에서 들어가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를 한참을 고민할 것입니다. 그리고 투표용지를 받고도 차마 선택하지 못함을 괴로워하겠지요.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투표장에 나왔을 때, 아주 괴로울 것입니다. 제 선택이 옳았는지 잘 모르겠어서요. 어쩌면 투표용지를 받고 차마 선택하지 못할지도 모르죠.
13. 정책과 사안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찬성과 반대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내 편, 네 편으로 가를 게 아니라요. 어떤 정권에서 하는 fta는 찬성하고 어떤 정권에서 하는 fta는 반대하는 게 아닌, fta 체결 내용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대추리와 강정이 다르지 않기에, 대추리에도 반대하고 강정에도 반대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김주익 열사가 크레인에서 몸을 던졌던 시대와 김진숙이 크레인 85호에 올라간 시대가 자본의 횡포가 같기에 자본가의 횡포에 반대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14. 그런데 이번 선거로 인해 2003년에서 2007년 동안 염치도 없어 차마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같이 울 수도 같이 싸우기도 미안했던 그 시간들이 제 남은 여생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없이 우울합니다.
15. 지난주에 감기가 걸려 통증 때문에 매일 밤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습니다. 3일 전부터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더군요. 어차피 오지 않을 잠, 스스로 자보자는 생각으로 어제는 수면제를 먹질 않았더니 밤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선거가 끝난 오늘 밤에는 무사히 잠들 수 있으려나요. 아니면, 심상정이 떠난 그날 밤처럼, 이정희가 조승수에게 편지를 보내 대체 어디까지 후퇴해야 좌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지 고민했던 그날 밤처럼, 이정희가 유시민에게 계속 러브콜을 보내는 걸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그런 진보대통합은 실은 우경화에 지나지 않음에, 오히려 진보정당이 뿌리내리는 걸 막는다는 확신으로, 자생력을 갖춘 진보정당이 성장해야한다고 주장해야할지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못했던 그 수많은 밤처럼, 또 다시 밤을 지새우게 될까요.
오늘밤도, 심상정이 여전히 너무 미울 것 같아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