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에 대한 기억 (스포)

생생하게 기억이 나죠 지금도. 99년이었는지 아니면 2000년이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세트를 발견했는데 저는 당연히 (왜 당연한데?!) '죽음의 미학' 편을 집어들었어요.  그리고 수록된 첫번째 단편이 현재 가장 핫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이었죠. 너무나 충격적이고 거의 유일한 체험이어서 그 이후로 15년동안 저에게 최고의 단편은 언제나 우국이었습니다. 영상도 아니고 텍스트로 그런 저릿한 느낌을 받은건 우국이 유일무이한데 뭐 어쩌면 교과서를 겉에 대고 수업시간에 몰래 읽었던 탓에 쫄깃함이 배가 되었을수도 있으나.... 


따지고 보면 저는 그런식의 일본식 비장미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226 쿠테타가 (박정희가 이거에 꽂혀서 쿠테타쿠테타 노래를 불렀다는....) 배경인데 진압된 동료들에 대한 우정과 나라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살짝 갈등 하다 그냥 속편하게 죽어버리는 지극히 일본스런 이야기인데... 그 지점 말입니다. 책임 혹은 회피로서의 자살. 솔직히 정말 바보같고 무책임 하다고 생각되는데 이건 머리가 하는 생각이고 왠지 모르게 그런 개죽음에서 알수없는 아름다움이 모락모락 뭐 그래요. 죽기로 결심하고 부인과 마지막 섹스를 한 후에 동반 자살하는 과정의 묘사, 그 묘사를 보고 ㅎㄷㄷㄷㄷ 해하던 저의 반응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런데 정말 웃긴건 시끄러운 표절시비에서 창비측에서 소설의 전반적인 전개랑은 별로 상관없다고 한 문제의 그 부분 말입니다. '기쁨을 아는 몸' 부분이요. 저 역시도 그 부분이 15년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던건 왜 일까요? ㅎㅎㅎㅎㅎ 역시 빛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탐나는게 아닐런지.. 


이 참에 다시 한번 읽어볼까 생각도 드네요. 


    •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2권 <죽음의 미학>은 정말로 세계적인 명작의 산책이죠.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잭 런던의 불 지피기,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의 나라야마부시고,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 후에도 이만큼 강렬한 단편소설들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 이문열 생애 최고의 작품이 바로 세계명작산책이라고들 하더군요. 


      그런데 '기쁨을 아는 몸'이란 표현은 뭔가 좀 야설스럽지 않습니까? 저는 신경숙이 그런 단어 조합을 썼다는 것 자체가, 표절 시비를 제쳐두고 여성 작가로서 자의식이 없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야말로 완전히 남성의 시선과 욕망으로 표현된 문구죠. 제가 신경숙의 <전설> 전체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요.

      • 전 표절 관련 기사에 이 표현이 빠짐없이 언급되는거 볼때마다 사람들이 이 표현의 외설성이라는 실재를 회피하려고 열심히 표절이라는 추문에 몰두하는게 아닌가하는 지젝스러운 생각을 했어요;

        • 와, 빙고! 


          처음에 이응준씨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이 구절을 '김후란이 시인답게 유려한 표현으로 번역했다'고 썼죠. 마치 신경숙의 작품이 그 번역 구절을 훔쳐온 덕분에 사뭇 빛나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 이후 신경숙을 디스한 거의 모든 평론가와 기자들의 글이 이응준의 해석을 열심히 되풀이하더군요. 심지어 여성 작가나 기자들까지도, 이응준의 고견에 이견을 달기가 무섭다는 듯이... 또는 말씀하신 대로 실재를 회피하려는 듯이요. 


          물론 김후란씨는 미시마 유키오의 마초적인 세계를 '제대로' 초월번역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일본어 원문은 '기쁨을 알았다' 정도라고 하더군요.

    • 이문열이 보기 싫어서 모아놓은 세계명작 사 놓은 거 다 버렸네요. 아까운 거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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