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 곤충주의] 이상한 데자뷰, 서리얼한 바퀴벌레



새벽 네시 반에 화장실에 앉아서 쥬라기 공원 리뷰(벨로시랩터 부분)를 읽다가 저를 지난 이틀간 고문한 모기를 만났습니다.

이 놈, 잘 만났다, 라고 모기가 도망가지 못할 결전의 장을 준비하기 위해서 살짝 열려 있던 화장실 문을 시건하고 몸을 푸는데, 모기와 한 판 붙기도 전에 3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몸길이의 바퀴벌레를 만났습니다. 변기 밑쪽에서 나타나 저를 향해 작은 소리로 인사했습니다. 


바퀴벌레는 귀가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비명을 질렀더니 움찔하더라구요. 


아무 도구 없이 화장실에서 만난 놈이라 잡을 길이 막막했습니다. 게다가 전 큰일을 보고 있었어요. 순서는 용변 마감 -> 모기 -> 바퀴로 정했습니다. 사실 바퀴가 두 번째인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 중에도 하기 싫은 일을 뒤로 미루게 되더군요. 


제가 첫 번째로 마감하기로 정한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 와중에, 바퀴벌레가 변기 아래에서 돌아다녔어요. 심호흡을 한 후에 마음 정리를 했습니다. 저건 햄스터다, 저건 애완동물이다, 제법 애완동물처럼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있지 않느냐. 바퀴벌레로서의 기본 중의 기본인 모서리 따라다니기, 코너와 코너 사이를 빠르게 주파하기 등등을 지킬 생각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더군요. 바퀴가 위험에 대한 인지 조차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점이 바퀴의 집주인에 대한 무시인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첫 번째 일을 마치고, 두 번째 일은 정말 쉽게 끝났습니다. 

쿵후마스터 같은 표정으로 건성으로 친 첫 번째 타격으로 모기를 즉사시켰습니다. 바퀴가 코앞에 생기자 모기 따위 별거 아니더라구요. 


세 번째 일에 대해 이르자면,  

낡은 칫솔을 모아두는 통으로 사용하고 있던 머그컵을 탈탈 털어서 바퀴를 덮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면서 덮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30점을 주고 싶습니다. 

햄스터라고 자가세뇌를 한 다음에 접근을 했는데도 가까이 다가가니 죽어버리고 싶더라고요. 더듬이 극혐. 개인적으로 바퀴벌레한테 당한 일도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겉모습을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게 싫은지 모르겠습니다. 

머그컵은 검찰 증정품입니다. 저울추가 그려져 있는 "검찰" 머그컵으로 바퀴벌레 체포 (및 아마도 구속) 을 완료하고 나니 이 것이 대한민국 검찰이 올해 한 일 중에 제일 내 맘에 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에 "며칠 동안 바퀴를 방치하여야 이 녀석이 굶어 죽을까"를 질의하셨던 듀게분이 계셨던 것 같은데, 혹시 보신다면 뒷처리가 궁금합니다. 

그 글을 읽을 때는 "가져다 버리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의 일이라고 경솔했습니다. 

머리로는 머그컵 밑에다가 종이판을 가져다 대서 변기에 내려버리면 되는 것 아니야? 하고 있지만 너무 하기 싫습니다. 바퀴가 머그컵과 종이판 사이를 탈출하는 장면, 머그컵을 열자 바퀴가 없는 장면, 바퀴를 변기에 넣었는데 변기물이 내려가는 속도보다 바퀴가 기어올라오는 속도가 더 빠른 장면 등등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데, 저 일이 일어날까봐 바퀴 처리가 하기 싫은 건지 아니면 바퀴 처리가 하기 싫어서 저런 일들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4:44에 자동 저장되었습니다. 라는군요. 

뭐죠. 불길한 일의 전조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 ㅋㅋㅋㅋㅋ굿럭!입니다~화이팅ㅜㅜ
    • 고난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좋은 글입니다...경험상 정면돌파밖에 없는 듯합니다
    • 으하하 글이 너무 재밌습니다. 해학의 미가 느껴지네요. 그 컵을 물마시는 용도로 사용할 계획이 없으시다면 살짝 들고 모기약을 안에 살포한뒤 다시 닫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얼마 후에 변기에...


      바퀴벌레를 그닥 징그럽게 인지하지 않는 저의 유전자에 감사합니다ㅎㅎ

    • 대한민국 검찰...ㅋㅋㅋㅋ 바퀴님 지금은 형집행되셨길 바래봅니다.

    • 이런 글 너무 좋습니다. 마이너한 사물을 소재로 한+유머+리얼리티 :D

    • 예전에 변기 물이 내려가지 않았던 분의 글이 갑자기 기억나네요.


      모두가 온 힘을 합쳐 전 우주적 기를 모아 변기 물이 내려가길 바랐었었는데..


      결국, 옷걸이와 뚜러뻥과 락스 등등도 안 되었다가 ..결정적으로 해결이 되어서


      모두가 기뻐했던(ㅎㅎ..지금 생각해도 웃겨요) 기억이 납니다.


       


      우선.. 쓰신 글을 읽고 현실 웃음 터져서 완전 깔깔 대고 웃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글을 써주세요. 아주 재밌게 글을 쓰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_^


       


      바퀴벌레는..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자연이 가깝다 보니, 바퀴벌레를 발견하면


      - 집친구는 약을 뿌리고 헤롱대는 바퀴를 종이에 떠서 바깥에 버립니다. 자연으로 돌아가 죽어라(!!!) 의 의미


      - 저는 휴지를 세 번 둘둘 말아 바퀴를 잡은 후 꼭꼭 뭉쳐서(알도 터져라!!) 변기에 버려 물을 내립니다.


       


      ... 성공하시길!!!

    • 저도 약 분사 추천. 확실해요. 산 채로 변기에 내렸다가는 바퀴벌레가 헤엄을 치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번에 글 쓰신 분 잘 처리하셨는지 궁금해서 후기 남겨달라고 댓글 달았는데 무소식이네요. 그게 희소식인 거겠죠? 

    • 머그컵이 스뎅이거나 하면 좋을텐데요...위 아래로 펄펄끓는 물을 부어서 소독겸 익사?아 컵을 또 살짝 들어야 하는구나.ㅡㅡ;;;;;



      바퀴는 아궁이같은데 던져넣는게 최고인거 같아요. 바퀴를 정말 굶어 죽으라고 투명 아크릴통을 덮어둔적 있는데 아 이놈이 그안에서 알을까서  통안이 완전.....아우아우



      그거 본 이후(어무이가 철제방충망조각을 밀어넣어 끓는 물을 부어 처리...)



      살충제를 뿌려도 거의 익사할정도로 뿌리게 됩니다.잔인하지만 어쩔수가 없어요. 꾼 돈도 없는데 왜 극혐일까??저도 아리송이네요.

      • 저 점심 먹다가 이 댓글 봤어요...ㅠㅠ

        • 죄송합니다...그러나 도저히 지나칠수 없는 장면이 주마등처럼 떠올라서 그만...ㅡㅡ;;;저도 잊고 싶어요. 엉엉.

    • 글 재밌어요ㅋㅋ 저도 전에 3cm 가량의 녀석이 벽에 얌전히 앉아 있기에 바퀴 약을 홍수가 나도록 뿌려서 독살(익사--?)시킨 적이 있습니다. 근데 두 번이나 나와서 결국 세스코 관리 신청했어요ㅠ 만약 즈이 집에 나온 넘과 같은 종류의 바퀴라면, 집안에 서식하는 종류는 아니고 밖에서 유입되는, 좁은 공간에 끼여 눌리기를 매우 즐겨하는 녀석일 것입니다...ㅠ

    • ㅋㅋㅋ 넘 재미있네요. 바퀴님은 공간이동하는 능력이 있지 말입니다. ㅎㅎㅎ 저도 대한민국 아줌마로써 바퀴를 비롯 더듬이, 발여러개 다 때려잡을 수 있지만(정의와 내 아이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않겠다)


      그래도 싫은건 싫은거니까요. 바퀴가 그리 쉽게 죽었다면 다들 이렇게 본능적으로 싫어하지도 않을겁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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