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를 보고 쓴 리뷰인데요.

 

타진요 사건에 대한 제 생각을 나름대로 담아낸 글이라서 이렇게 옮겨 봅니다.

 

어쩌면 오페라보다 타진요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글이지요.

 

물론 이 사건이 진절머리 나시는 분들은 그냥 건너 뛰어 주세요.

 

저는 이 사건이 우리의 21세기가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구요.

 

다른 곳에서 쓴 글이라 경어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놀라운 일이다. 1896년 초연된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가 2010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니 말이다.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한 명작인 것인가, 아니면 2010년 대한민국이 서구의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올 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소위 ‘타진요’ 사건과 이 오페라는 한 쌍의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서울시오페라단(예술총감독 박세원)에 의해 14일부터 공연되는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는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가 곡을 쓰고 루이지 일리카가 대본을 쓴 베리즈모(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이다. 이탈리아 베르디 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동 중인 로렌초 프라티니가 지휘를 맡았다. 작품은 프랑스 혁명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관중을 압도하는 아리아들 외에도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건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섬뜩함이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의 어느 시골 성에서 열린 파티에서 시인이자 혁명가인 쉐니에(박현재)와 백작의 딸 맏달레나(김향란)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는 이 성의 하인인 제라르(고성현)다. 그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혁명의 주동자가 된다.

 

혁명에 의해 헤어져야 했던 쉐니에와 맏달레나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재회하게 되지만, 제라르 역시 맏달레나를 찾아낸다. 제라르는 맏달레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쉐니에를 혁명재판소에 고발한다. 쉐니에는 당당하게 자신의 무죄를 외치지만, 법정과 군중들은 그의 죽음을 원한다. 제라르 역시 뒤늦게 그를 변호하는 데 가담하지만 결국 사형이 내려진다. 쉐니에와 맏달레나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단두대 앞에 선다.

 

여기서 시인 쉐니에에 래퍼 타블로를, 혁명가 제라르에 일명 ‘왓비컴즈’라는 네티즌을, 혁명재판소에 모인 군중에 ‘타진요’를 대입시키면 이야기는 완전 2010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어 버린다. 물론 세부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면들이 많겠지만 핵심적인 몇 가지 부분들이 두 사건의 공통점을 떠올리게 한다.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을 가져다 주었다. 프랑스의 정치적 혁명은 인민에게 빵과 자유를 가져다 주었고, 대한민국의 인터넷 혁명은 대중에게 정보와 의견을 무한대로 확장시킬 새로운 네트워크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프랑스와 대한민국은 모두 정의라는 이름 아래 무고한 일부 희생자들의 육체적 혹은 정신적, 사회적 죽음을 강요한다. 혹은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혁명재판소’의 풍경이다. 오페라에서 혁명재판소는 대중의 분노와 광기가 표출되는 곳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소리 높여 쉐니에를 죽이라고 외친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보여줬던 성직자들의 광기가 고스란히 군중들에게서 표출되고 있는듯하다. 알다시피 서구사회는 19세기를 거치며 법에 의한 심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즉각적이고 변화무쌍할 수 있는지, 혹은 인간의 판단력이 얼마나 오류로 가득찰 수 있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반면, 2010년 대한민국의 온라인 세상은 어떤 면에서 여전히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테크놀로지는 21세기적이지만(가상현실의 아바타), 그것이 돌아가는 모양새는 19세기 적이고(공론장과 혁명재판소), 부작용을 막을 시스템은 여전히 20세기적(경찰의 사이버수사대)이다. 인터넷은 21세기적인 윤리학과 21세기적인 조절 시스템을 갖추기 전까지 끊임없이 무고한 피를 요구할 것이다.

 

울하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만 쉐니에는 ‘5월의 아름다운 날처럼’에서 “시정(詩情)의 여신이여, 부디 당신의 시인에게 다시 한 번 예전의 그 빛나는 영감을 부여하소서! 당신이 내 마음 속에서 살아 있는 한 내 시는 죽음을 앞둔 자의 차가운, 마지막 숨을 발산하리라!”고 노래하며 단두대 앞에 당당히 선다.

 

죽음 앞에 선 시인에게 다시 한 번 영감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이 시가 타블로의 영혼에 약간이라도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혹은 이성을 잃은 군중들이 자신들의 포악함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해줄 수 있을까. 정말 모를 일이다. 그렇게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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