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저한테는 예상 적중이네요.


명박이 정권은 어찌보면 가장 전형적인 신세대 기회주의자들이었죠. 이념은 포장이나 도구에 불과하고 추구하는건 어디까지나 돈입니다. 5년동안 나라를 걸레쪽으로 만들었던 짓들도 '기왕 힘들게 권력을 잡았으니 남는게 있어야지'라는 맥락 속에 있었고. 친일파에서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100년 역사의 유구한 자칭보수 기회주의자들의 가장 최신형? 그 자들은 속으로는 반공이니 보수니 하는걸 비웃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유용한지는 알 정도로 똑똑하죠. 한마디로 매우 저급한 차원의 질낮음이죠. 보면서 욕 나오고 열받지만 한편으론 '기득권, 있는 자들은 항상 그렇지 뭐' 라는 냉소주의의 뒷문도 살짝 열려있는..


저는 ㅂㄱㅎ는 명박이랑은 질적으로 다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선 확정됐을때 다리에 힘이 풀렸고.. 이 여자를 비롯해서 이 여자를 옹위하고 있는 노인들과 돌격대들은 명박이 일당과 달리 매우 이념적입니다. 구세대 기회주의자들인 셈이죠. 똑같이 살길을 찾아 변신을 거듭하는 기회주의지만, 이쪽은 명박이 타입과는 달리 영악한편은 못되고, 이상한 표현이지만, 좀 나이브하죠.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어떤 정체성을 구축했다면, 정말로 그게 자기의 지상의 신념이라고 믿어버리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요. 


이쪽이 명박이 부류보다 100배는 무섭습니다. 비지니스맨적인 기회주의자들과 달리 이쪽은 적대하는 상대가 있다면 그 최종 해결법은 박멸입니다. 전자가 위기에 처하고 무엇보다 돈벌이를 방해받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때 야료도 부리고 알바도 쓰고 작전도 하면서 그때그때 땜빵하고 모면하려는 멘탈이라면, 후자는 '지금 우리를 흔드는 적은 누구인가' 부터 규정하고 그 토대를 부숴서 완전한 제거를 획책합니다. 성실한 군바리 타입이죠.


이쪽은 맥주 한캔 따고 TV켠다음에 '에이~더러운것들!쯧' 하고 욕하고 잠자리에 들만큼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이젠 생존 자체가 위협당하는 거니까요. 월급이 끊긴다든지 하는 조잡한 방법이 아니라, 진짜로 '끝장'을 보는겁니다. 국가도 결국은 거대한 공동체일 뿐인데, 공동체속에서 성원으로 머무르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게 살인이지 별건가요.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자신이 빨갱이인지 아닌지부터 밝혀야 시민자격이 주어지는 공동체는 이미 파국이죠. 그런 시절을 수십년을 겪었는데 그게 부활됐잖아요.


복지요? 사민주의? 경제민주화? 보육수당이 어쩌고... 다 한급씩 차원이 낮은 얘깁니다. 이념전쟁 앞에서는요. 저런거는 '이제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이념논쟁 하는 레벨은 넘어섰다'는 착각 위에서 가능했던 잠깐의 사치였죠. 생각해보세요. 한가하게 경제가 어쩌고 재벌이 어쩌고 복지예산이 어쩌고 떠드는 입놀림 위에다가 '국!가!안!보!' 하나 턱 내려놓으면 모조리 셧업입니다. 그래서 북풍이 어쩌고 여러가지 수작들이 있었던건데, '이제 북풍 그런거 안먹혀 시민들이 우습나'라고도 우리는 착각을 했죠. 


자기랑 지 새끼 사진까지 박아놓고 실명으로 트위터하는 놈의 타이틀이 '서북청년단-종북말살하자'라고 해놓고 정말 쌍팔년도도 아니고 1945년에나 횡행했을 말들을 쏟아내고... 해체를 운운할 정도로 쓰레기통이 된 정보기관이 득의만면해서 '우리가 내란음모 간첩을 잡았다'고 선언하고, 맑시즘 강의한다고 강사를 신고하고, 중학생 애들이 지나가는 남자들이 영화 대사 흉내낸것 듣고 간첩신고하고... 음... 제가 너무 민감한걸까요. 걍 저한테는 이 기류 자체가 맨살에 면도칼을 쓱쓱 문대는것 처럼 공포스러운데요.


아니 지금 2013년 21세기 때가 어느땐데 국회에서 '종북주의자인지 아닌지 커밍아웃해라'라는 말이 나오나요. 학생이 선생을 고발해요? 어제까지만 해도 국정원 규탄하고 민주주의 타령하던 친구가 안면몰수하고 '우리나라에 빨갱이가 이리 많으니 걱정이다' '의심스러운 놈들은 싸그리 잡아서 씨를 말려야 한다'같은 소릴 합니다. 쌍팔년, 아니 쌍칠년 쌍육년 시절에는 그게 국가폭력이라는 실질적 물리력을 업고 있어서 더 무서웠겠지만 적어도 멀쩡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그게 잘못됐다는걸 알았을 겁니다(전부 목소리를 내진 못했겠지만) 지금은 이 미친 매카시즘 빨갱이선풍에는 뭔 진영도 없어요. 


진짜로요. 야권과 여권이라는것도 없고요. 빨갱이색출 매카시즘 얘기 꺼내면 열에 아홉은 그러네요. '너 통합진보당 빨갱이구나' '왜 이석기 잡혀가서 똥줄타냐?' 이게 미친 광풍이라는 자각조차 없습니다. 21세기에 레드 컴플렉스요? 씨발 진짜... 지금은 모든 토론에서 우선 첫 발언을 이걸로 해야 발언자격이 주어지는 셈이죠. "저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저는 종북이 아닙니다. 저는 이석기가 싫어요"  오히려 격렬한 반새누리당 포지션에 있던 자들이 이 레드컴플렉스가 더 심한건 참 아이러니입니다. 자신의 이념적 선명성을 드러내려는게 아니라, 그냥 무섭기 때문입니다. 간첩신고당할까봐 무서워서가 아니라요, '나는 정의롭고 종북도 아닌 '깨끗한 진짜' 진보적 성향인데 이런 나의 진정성이 종북 물타기에 훼손당할 수 있다'라는 두려움이요. 


반공이니 빨갱이니 하는 얘기가 아주 잠시 조소의 대상이고 흘러간 옛노래였'던' 시절도 있었죠. 도로 리턴이네요. 이름만 종북으로 바꿨고, 다만 아무때나 잡아가서 고문하는 경찰이 없다는 점만 빼면 군바리 독재시절의 반공주의랑 뭐가 다른가 싶습니다. 불과 몇달전에 인터넷으로 우익키워랑 햇볕정책에 관해서 논쟁했던것도 다 지나간 꿈같습니다. 햇볕정책? 햇볕정책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란음모를 획책하는 간첩들이 원내에 진입해서 책동하는 나라라는데, 그런 나라에서 무슨 햇볕정책이요. 조만간 민주당이 '북한과의 전쟁불사' 성명을 내지 않을까 기대도 되네요(아마 그렇게 되겠죠)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애새끼들까지 뜬금없이 반공투사로 돌변하는 이 분위기가 죄다 국정원 심리전(?)의 결과물이라든지, 새누리당의 작전이라든지 하는 음모론은 저도 안믿습니다. 다만 ㅂㄱㅎ의 시대 이후로 이것이 더 부추겨지고 더 강화되고, 또 그것을 이 ㅂㄱㅎ 일당이 매우 즐기고 반기고 있다는건 확신합니다. 그리고 굉장히 성공적이었고요. 


저는 몸서리쳐지게 명박이가 싫었고 명박이 시대를 사는게 짜증났지만, 솔직히 진지하진 않았던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덥잖은 개수작이 보도되는걸 볼때마다 화를 낼 기운까지는 있었습니다(어차피 달라질건 없다는 무력감도 물론 있었지만...) 근데 이젠 진짜로 '걍 입 다물고 살자'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나는 종북이 아닙니다. 나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나는 이석기가 싫습니다'라고 선언하라는 강요에 굴복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내 편'이라고 믿었던 진영의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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