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현명한 이별에 관하여

2010.08.30 02:29

질문맨 조회 수:5050

 이별에 관한 이야기는 참 흔한 것입니다.  음악이나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익명의 게시판에서의 여린 고백으로도, 그리고 늦은 밤의 술 한잔사이에 알게 되는 안주 같은 이야기까지. 이별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 다른 사람들 만큼이나 각자 다른 사연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이별에 대한 회고는 애틋함이나 쓸쓸함처럼 잔잔하기 마련이지만 이별의 순간에 밀려오는 감정의 노도는 단순히 슬픔이나 아픔이란 단어로 정의내릴 수 없는 감성의 주체마저 흔들어 버리는 힘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만남의 인연 사이에서도 이별의 순간을 알게되는 인연이란 살아온 날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것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인연이란 마치 낙엽처럼 일상 속에서 자박거리다가 사라지는 순간을 알 수 없는 잊혀짐으로 망각될 따름이니까요.

 

 함께 해야 하는 이유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 어떤 인연이든 이 두가지 이유는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때론 빛이 강하면 어둠도 강하듯 함께 해야 할 이유가 커질 수록 함께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커져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인연의 부등호란 어떤 예측할 수 있는 경향을 띄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주사위처럼 시간 속에서 매번 다른 값을 산출해 내곤 합니다. 그렇기에 인연의 서로 다른 끝을 잡고 있는 두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공유하더라도 이별의 이유와 순간을 함께 알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기에 이별은 예정된 합의가 아니라 느닷 없는 소나기같은 선언을 자주 겪게 됩니다. 때문에 잔뜩 구름이 낀 날씨에서의 빗방울이 되는 이별도 있지만 매우 화창한 날인듯 하다가 갑작스레 어두워져 세찬 비가 되는 이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 얄궂은 것은 인연의 부등호에서 헤어짐의 이유가 크기에 이별을 선언했던 사람이 나중에 다시 만남의 이유쪽으로 부등호가 기울어져 더 큰 아픈 후유증을 겪는 일도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별에 대한 합리를 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사람은 이별의 순간을 알기 위해 비합리적인 수단을 때론 의지하기도 합니다. 미지의 영역에서 답을 말하는 점이나 타로에 눈이 가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몇 줄의 정보만을 열어 둔 채 답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태도를 어리석다던지 잘못된 것이라고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별을 고민해야 할 정도의 인연이란 이치에 의해 연결된 것일 뿐만 아니라 감정에 의해 연결된 것이기도 때문입니다. 모듈화된 인연의 메뉴얼이 존재하여 시작과 끝을 결정지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감정은 마음의 붓과 캔버스만으로 다양한 모양을 창출해 내기에 규격화하여 인연의 가치를 평가내리기 어렵게 합니다. 더군다나 감정의 전시회란 다른 이가 쉽게 찾아갈 수 없는 내밀한 곳에 위치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조언이 일종의 영감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별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어져야 합니다. 가장 불행한 이별이란 이런 자신의 의지마저도 침해당하는 외적 요인에 의한 결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실 이별 보다도 관계의 단절을 겪는 것이 더 흔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인연이던 각자의 오차가 환영과 착오를 만들어 낼 테지만 서로간의 오차가 누적되어 이별이란 과정을 거치는 것조차 버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때론 인연의 무게를 들고 있는 두 사람의 무게가 너무 달라서 이별이란 임계에 달할 만큼의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하고 관계를 종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관계의 단절을 행한 사람에게서 인연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경우란 거의 없습니다. 어쨌든 관계의 단절을 받는 사람은 쉽게 그 사람을 원망할 테지만 스스로의 착오와 어긋남을 복기하는 것이 좀 더 나은 태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매우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좀 더 나은 다음 관계를 위한 일종의 노하우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자신에 대한 비하나 위안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각자 다른 인연의 모양을 갖고 있기에 서로간에 어긋납니다. 이것은 각자의 고유함일 뿐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타인의 모양을 바스러뜨리지 않는 존중과 예의는 쉽게 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앎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겸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쩌면 평생 이런 자신의 대답이 오답만으로 점칠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지나오는 동안 관계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 보다 관계의 시작을 소중히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겠지요.

 

 이별은 이별을 말하는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별을 말하는 것은 인연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의 끝을 준비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덤덤히 인연의 끝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난삽한 감정의 글로 인연의 끝을 적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별이 모든 인연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엔 오지랖일수 밖에 없을 테지만 이별을 경험중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곤 하는데 이것은 이별에 대한 어떤 결론과 위로를 해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여전히 주위엔 삶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기실 저의 조언이란 상당히 높은 확률로 어리석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그리 재담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지만 한 번의 눈물 정도는 감추어 줄 수 있는 병풍은 되어 줄 수 있으니까요. 이별은 외로움을 겪는 자신을 아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고독하지 않은 자신을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가장 큰 인연에 집중하느라 소흘히 할 수 밖에 없는 다른 관계 사이에서도 상처와 아픔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별의 과정에서 알아 챌 수 있음을 바랄 따름입니다.  

 

 어쩌면 가장 현명한 이별이란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눈물로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별도 밤새 뒤척이며 상대방에게 저주를 내뿜는 이별도 상관없이 가장 현명한 이별이란 어떤 이별도 결국엔 현재가 아닌 과거 시간 속에서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을 깨닫는 이별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이별 영화는 이별을 과거로 돌리는 영화입니다. 토이스토리에서의 우디와 앤디의 애틋함도, 조제호랑이에서의 비겁함도,  500일의 섬머에서의 찌질함도 결국엔 이별을 깨닫는 순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바라봅니다. 새로운 인연에 대한 소중함과 두려움을 없애는 것. 이것은 과거의 좋았던 인연의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좋았던 순간들을 대해서는 고장난 순간들이 있기에 쓰레기통에 버려두거나 귀찮기에 천장의 박스안에 밀어 넣기 보다 새로운 인연의 즐거움으로 함께할 수 있는 현재의 향으로 남겨두길. 언제나 이별은 두렵고 관계는 현재를 잠식해 나가기도 합니다.  삶이 이어가는 동안 이별 이라는 필연 뒤에 만남이라는 우연이 다가옵니다. 여기서 인연의 부박함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의 단 한마디의 대사만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Enjoy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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