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남편과 벌레 퇴치법?

2013.07.19 22:22

밀감 조회 수:4877

올초에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결혼 후 쭉 아파트 생활을 했었거든요. 우리 애는 꼭 흙마당이 있는 집에서 기르자,  연애 할 때부터 이야기 했던 터라

큰 맘 먹고 내린 결정이었지요. 꼬딱지만한 아파트를 판돈으로 변두리로 눈을 돌리니 꽤 널찍한 집을 구할 수가 있더라구요. 

신랑 출근 시간이 1시간 반이나 늘어났으니 사실 변두리라기보단 교외라는 표현이 맞겠죠. 

마당 뒷편으로 큰 은행나무랑 목련나무, 감나무도 있고 봉숭아나 맨드라미 같은 작은 꽃들도 제법 심어져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사오기 전엔 50대 부부가 주말에만 들려

텃밭 가꾸는 용도로 사용하셨다고 하는데, 집에 신경을 쓰신 티가 역력했지요.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햇볕도 잘들고...

신랑 출근시켜놓고 커튼 너머 살랑살랑 들어오는 햇빛 냄새 맡으면서 소설책을 읽는 여유로움이라니...

아이를 갖기로 하고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서 찝찝했던 마음이 사그라들 정도였지요.


근데 역시나 문제는 있었습니다. 벌레가 너무 많아요. 종류도 다양하고 어디서 들어오는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합니다. 다행히 바퀴벌레는 없는데 제가 벌레라면 종류불문 

기겁을 해서 (잠자리도 무섭습니다;)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에요.

세스코라도 불러볼까 했는데 신랑이 결사반대를 합니다. 저희 신랑은 벌레를 안 잡거든요. 불교도라서 살생을 안 하는거면 이해라도 하겠건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연애시절 경주로 여행을 가서 민박을 했는데 이 인간이 자기 팔에 붙은 모기를 안 잡는 거에요. (네. 이 인간 모기도 안 잡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글쎄

"벌레들한텐 우리가 신같은 존재 아니겠어? 몸에 남아도는 피 좀 빤다고 손바닥 한 번 휘두르면 생사가 왔다갔다 하잖아.

만약 진짜 조물주라는게 존재해서 우리를 들었다 놨다, 벌주고 상주고 하는 거라면 나중에 꼭 한 번 따져볼라고.

야, 넌 뭐가 그리 잘나서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어놓고 설교질이냐. 그래놓고도 밤에 잠이 오디?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려면 당연히 나부터 솔선수범 해야지."

랍니다.;;


당시에는 귀엽기도 하고 착해보여서 좋았는데 (네.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더랬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중2병의 발상.

얼마 전에도 거실에서 지네를 닮은, 다리가 아~~~주 많이 달린 벌레가 나왔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게임 하고있던 신랑한테 SOS를 쳤더니

행여나 다칠까 쓰레받기로 곱게 떠서 창밖으로 놓아줍니다. 그렇게 놔주면 또 들어 오잖아!!! 버럭 소리를 질러도 물지도 않고 해충도 아니랍니다. 

"징그럽다고! 임신했는데 놀라서 유산이라도 하면 어떡할래? 네가 책임질래? "  

"좀 징그럽다고 얼마 살지도 못 하는 생명을 죽이면 쓰냐? 보다보면 정들고 정들다 보면 귀여워" 

랍니다;;;  

"부처님 나셨네, 부처님 나셨어. 그런 분이 고기는 어떻게 드시나? 송아지랑 닭이랑 돼지는 안 불쌍해? "

"살기 위해 먹는 거랑 귀찮다고 죽이는 건 다르지 이 사람아."

"고기 안 먹는다고 안 죽거든요? 채식하는 사람들도 잘만 살거든요?

"네네, 사모님, 잘 알겠습니다. 고정하세요" 

이러고는 또 게임하러 갑니다;;;

야!! 내가 소중해, 벌레가 더 소중해? 유치작렬 멘트가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만 지금까지 고이 쌓아올린 저의 지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니 그냥 눌러 삼킬 수 밖에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에프킬라도 못 뿌립니다. 모기는 물론이고 손톱만한 나방도 가끔 나오는데 말이에요. 방충망도 새걸로 갈았고 거실, 부엌, 욕실등을 전부 개조해서

그럴만한 틈이 안 보이는데, 집 자체가 오래되어서 그런가 벌레들이 오가는 구멍 같은게 있나봐요.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백반이 벌레를 쫓는다길래 친정 엄마한테 부탁해서 구석구석 뿌려봤지만 가시적인 효과는 없네요. 

벌레를 죽이지는 않고 쫓기만 하는 효과적인 방법 없을까요? 벌레를 못 들어오게 하는 전문적인 공사라든가...

아니면 아직 철이 덜든; 저희 신랑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저도 생명존중 좋아라하고 가능하면 그러고는 싶은데, 거실에서 TV조차 마음놓고 볼 수가 없으니 저한테는 정말 심각한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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