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머리 그대로 대나무숲에 외치는 마음으로 씁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이게 제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스스로의 얘기를 하는 것에 익명을 하는 비겁함은 일말의 부끄러움 때문이란걸 헤아려주시길.

지금 저를 괴롭게 만드는 그 사람은 동호회에서 만났습니다. 운동을 하는 동호회라 뒤풀이를 해도 술을 잘마시지 않는 분위기인데, 그와중에 그 사람도 저도 술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죽이 맞았죠. 어울리다보니 술뿐만 아니라 다른 먹는 것들도, 공연이나 다른 취향들도 죽이 맞아 자주 둘이 만나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은 그 사람이 더 적극적이였어요. 다들 스마트폰을 이용중일때도 전 2G폰이였는데 그사람 연락에 답하느라 평소에 쓰던 문자량이며 통화량이 폭등해서 통신사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무료문자건수 초과하고, 다른 가족 것까지 끌어썼는데도 모자랐으니까요. 그 사람은 퇴근이 늦은 편이였는데, 퇴근길에 저희 집앞으로 와 저를 불러내 새벽같이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같이 맥주캔을 기울이던 날도 많았구요. 그러던 날들중 비오던 여름날 우산안에서 제게 키스를 했고, 저도 그 사람을 조금 더 달라진 마음으로 제 속에 담았습니다.
그러다가 막상 먼저 고백을 한건 저였어요. 사실 누가 먼저 말을 하는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도 절 좋아하고있다고 확신했거든요. 하지만 전 여지없이 뻥 차였어요. 일때문에 파견와있던 그 사람은 6개월후에 고향으로 갈 예정이고, 고향에 이전부터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도 있다는 이유로 절 거절했습니다. 저는 그 거절에 어떻게도 할 수 없었어요.
그 시간들이 지나 그 사람은 고향으로 갔고 저희는 뜬금없이, 불현듯, 잊을만할때나 카톡으로 안부인사나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금요일에 갑작스레 제가 있는 곳엘 온다고 보자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만나 금요일밤부터 다시 돌아간 일요일 오후까지 같이 있으면서, 전에는 이전 여자친구에 대해 정리가 되지 않아서 어쩔수 없었고, 이제는 그 여자친구와 끝이 났으며 저를 좋아한다 고백을 받고, 애인사이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이는 변한게 없네요. 하루에 두서너번의 카톡이 답니다. 삼시세끼 줄기찬 통화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저도 못해요. 워낙 장거리라 자주 만나는 걸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자기전에 잘자라 전화 한번은 했으면 좋겠어요. 이정도가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잖아요. 이런 제맘은 말 못하면서, 또 신경은 신경대로 그 사람에게 잔뜩 쏠려있자니 스스로가 찌질하게 느껴질뿐이에요.
사실 답은 이미 벌써 알고있죠. 제 솔직한 마음을 말하는거요. 내가 너를 그렇게 신경쓰고 있는데 너도 그렇게 나를 생각하고 있는게 맞느냐고, 그런 마음으로 내게 만나자고 한게 맞느냐고 먼저 물어보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을 닥달하는게 될까봐, 그래서 나에게 질리게 될까봐 저는 겁을 먹었습니다. 그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유일하게 털어놓은 언니에게 얘길 듣고 알았어요. 저는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사랑받고 있지 못하죠. 하지만 저번처럼 먼저 들이박았다가, 이제야 겨우 연결되어 기뻐했던 이 관계가 순식간에 끝나버릴까봐 겁내하고 있는걸요.

스스로의 궁상을 견디다 못해 오늘 그 사람에게 다 털어놓을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직도 퇴근을 못하고 있을까봐 먼저 카톡으로 물어도봤죠. 퇴근하는 길이라는 답을 받고 통화버튼을 눌렀습니다. 전화를 받질 않았어요. 그리고 상사의 차를 타고 간다는 카톡이 바로 왔습니다. 그러고 지금은 1시간이 지났고 전화는 오지 않습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눈물이 저절로 났어요, 너무 비참해서.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이렇게 비참하다니. 이런 것이 연애고 사랑이였던가요.

저는 더 이상 이것이 연애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내일 다시 제가 전화를 할거에요. 그리고 당신은 우리의 관계에 대해 대체 어떻게 여기고 있는 건지 물을 겁니다. 누군가와의 관계때문에 스스로를 싫어하게 되지 않길 바래요. 결국 전 "너"보다 제가 중요한 사람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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