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자 - 동정 없는 세상

2012.12.05 12:49

Isolde 조회 수:1629

귀천(歸天)

(중략)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천상병은 동백림사건에 희생되어 고문으로 폐인이 된 작가이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분노와 경련이 들어있지 않다. 

자신을 망쳐버린 세상과 독재 권력가에게 저주를 퍼붓고 절망하면서 남은 인생을 소일할 수도 있었다.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 세력에 실망해서 세상과 쉽게 타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길을 가지 않는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주인공은 강압적인 부조리한 체재에 반해서 저항하다 전기고문으로 식물인간이 된다. 
그의 투쟁과 망가짐을 끝까지 지켜보았던 친구는 그를 안락사시킨다. 

게시판에서 벌어진 <김지하 변절>의 논쟁을 읽었다. 

다수는 정신적 신체적 망가짐으로 이성을 잃은 문인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의 변절조차도 이해하자고 한다. 

소수만이 그의 변절에 절망하며 고투한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배려의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비극적인 문인의 삶을 동정해야 한다는 다수의 이성적 고언은 그래서 무감동이다. 
<귀천>의 시인이 고통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을 이길 수가 없다. 

고난과 고통에 대한 낭만적인 숭배자가 아니고 고통 그 자체만으로 충분했던 적은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대부분 극단적인 선택으로 끝난다.

그럼에도 자신의 절망과 고통에도 일관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고 삶의 고통을 통해서 지혜를 배운다는 이들을 존경한다. 
건강하지 못한 변절자를 이해하자는 이성적 방관자는 망가진 지인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을까?

동정보다 필요한 것은 세상과 언론과의 절단이다. 

망가뜨림에 대한 공포는 잃어버림에 대한 고뇌보다 더 강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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