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4 12:32
다른 게시판에서는 스토리 비판하는 글이 좀 있던데 여기는 그런 글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ㅋㅋ
어떤 분들은 역적의 자식이라는 설정이나 거기서 오는 좌절감, 상실감 등이 극 초반에 보여지다가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점을 지적하더라구요. 물론 역적남매로 서럽게 살아남아 아버지 대신 동생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이 남이가 집요하게 적군을 따라붙는 가장 큰 동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개연성은 살아남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야기를 즐기는 관객의 입장에서 가장 큰 희열은 주인공의 문제상황과 그 문제해결에서 오는 쾌감이기에, 남이와 자인이의 이 근본적 문제가 별로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은 사실주의 영화에서는 당연한 설정이지만 이 영화가 액션히어로물에 크게 몸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흥미가 반감되는 요인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히어로물이 줄 수 있는 비현실적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 채 이런 설정만이 덜렁덜렁 남아있다는 것은 영화 내적인 대응성이 떨어지는 점이랄 수 있지 않겠나요.(여기서 대응성이라는 건 문제상황과 문제해결이라는 점에서의 대응)
이런 문제는 사실 좀 더 이 영화의 욕구와 그것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도 생겨났다고 봐요. 한계가 있는 역사적 맥락에 히어로물을 접합시키려고 했다는 것이요. 주체성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던 이 영화는 요즘 잘나가는 미시사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큰 판에서 싸워봤자 더 대단할 것도 많지 않고 말이에요. 차라리 작은 판에서 활로 싸우면 인원수로 승부하는 적군에 꿀릴 것도 없고 말이죠.
하지만 바꿀 수 없는게 너무 많다는, 역사적 틀 안에서의 미시영웅사의 한계를 노출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져버린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거기에 어떤 전쟁영웅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남이가 소외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기에 조선의 역사에서 남이의 신분을 상승시키고 좌절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애초에 있을 수가 없었던 거죠.역사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남이가 그저 목숨처럼 아끼는 동생을 구해내어 이 좌절감을 극복하는 수준으로 만족해야 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주인공이 활약하고 성공하여 이야기가 완성되길 원하던 어떤 관객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왜 저런 설정을 넣어놨냐. 해결도 안되는데. (그냥 스토리를 갈아엎다가 남은 잔해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지만요;ㅋㅋ)
또 적국에게 유린당했다는 패배감이 조선 신궁의 히어로적인, 그러나 극히 미시적인 활약상만으로 상쇄되기도 쉽지가 않네요. 가령 역사적 사실보다 스케일 큰 히어로물에 찌든 단순한 관객의 경우 "뭐야, 그러니까 결국 그냥 동생을 구한 이야기인건가.. 좀 더 대단한 활약이 아니었던건가아,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시시하기도 하고.. 어차피 진 전쟁인데.. 궁시렁" 이라며 좀 김샜다고 하는 반응을 보이는거죠. 저처럼=_=.
역시 원인은 한계가 있는 역사적 맥락에 히어로물을 접합시키려고 했다는 데 있다고 봐요.
또 자신의 활은 목숨을 빼앗기 위해 있는게 아니라는, 강하게 보여줄 신념이 아니라면 있으나마나한 휴머니즘(?)의 잔해 따위도 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완벽하게 극을 관통하는 신념으로 박아놓던가, 그렇지 않을 거라면 아예 없는게 보는 입장에서 속시원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거든요. 사실 저는 그냥 이런 같잖은 이념보다는 그냥 서민의 소박한 생존주의적 입장으로 "나는 살기 위해 쏜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배운 활은 아니어도, 내 것을 빼앗으려는 자가 있으면 먼저 죽이는 수밖에.." 정도의 야만적 입장을 더 지지하는 편이기야 합니다. 하하하
아무튼 이런 지우다 남은 듯한, 채에 치다 걸린 듯한 건더기들은 무언가 초반의 이리 저리 얽어놨던 시나리오를 흥미진진 액션씬이라는 바리깡으로 대거 밀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물론 모든 시나리오가 구체화 시키는 과정에서 다 휙휙 바뀌고 사라지고 그러겠지만, 어쩐지 이 영화는 긴장과 스릴이 넘치는 활 추격전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러가지를 그냥 다 없애버렸소..라는 느낌이 좀 더 많이 드는지도요.
에 또.. 대사가 별로 대단한 건 없는 것 같아서, 이런 액션 영화에서는 사실 순수하게 이미지와 효과음의 향연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대사를 단순하고 간결하게 처리하는 고도의 수정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사실 최근 본 액션 영화, 엑스맨이나 퍼스트 클래스나.. 뭐 몇 년 된 다크나이트나 대사가 대단한 건 못본 거 같아서 말입니다. 이런 대작을 만들려면
시나리오도 아주 정성들여서 고퀄리티로 뽑아내는 것일거고 이게 바로 정제된 그 언어들. 인 것이겠죠..?
아니 이렇게 뭔가 줄줄 또 투덜거렸지만 저는 활이라는 무기도 정말 좋아하고, 이 미시적인 영웅물과 활이라는 원거리 살상 무기가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그럭저럭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데다가, CG처리된 호랑이가 좀 거슬리긴 했어도 숲에서의 싸움도 긴박감 있어 즐거웠고, 박해일도 좋아하고, 여러가지로 즐겁게 보았습니다. 아, 문채원의 만주어 연기가 조금 바보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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