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오브 더 위치>를 보는 건 솔직히 지치는 경험이었습니다. 영화 전체가 어둠컴컴한 분위기인데다 배경도 거의 한밤중, 숲, 묘지, 칙칙하고 더러운 중세의 마을 등이어서 1/3쯤 보다 보니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더군요. 도대체 뭐가 제대로 보여야지 칼을 어느 방향으로 휘두르는지, CG는 제대로 되었는지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깜짝깜짝 놀래키는 테크닉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뭐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던가 갑자기 흉측한 몰골의 것이 불쑥 나타난다던가 하는 것 말입니다. 나중에는 분명히 여기서 뭐 하나 나오겠지, 이번에도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가 나오겠지 등등이 예측이 됩니다. 깜짝깜짝 놀라다 보니 피곤해지는 데다 그렇다고 해서 등골이 싸아하게 무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가 중반까지 기대고 있는 트릭은 현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회의주의적 심리입니다. 우리는 중세 교회가 마녀 사냥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페스트의 발발 및 전염에는 중세의 지저분한 환경이 아주 큰 기여를 했음을 압니다. 베이먼과 펄슨이 들어간 마을이나 감옥의 꼴을 보면 저 안에 있다가는 일 주일도 못 견디고 페스트에 걸려 죽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영화 도입부부터 뒤의 내용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중반까지 설마 마녀겠어? 괜히 좀 예쁘고 좀 튀는 애 하나를 잡아서 족치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다지 이성적이거나 머리가 좋아 보이지는 않아 보이는 교회 사람들과 바보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사 베이먼이 대비가 되니 더더욱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회의주의와 광신에 대한 이야기처럼 굴던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산으로 가더군요. 그래서 이 영화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던전을 헤매면서 끊임 없이 소형 몹의 공격을 받았고, 대형 몹을 때려잡으면 모든 일이 끝날 줄 알았는데 최종 보스가 나타나더라.'가 되었습니다.

 

 예, 마녀 혐의를 받던 소녀에게는 실제로 악마가 씌워져 있었습니다. 수도원에는 악마를 물리치는 방법을 담은 비서 <솔로몬의 열쇠>가 있었고, 악마는 수도원에 들어가 그 책을 파기하기 위해 소녀에게 씌워져 수녀원 안으로 호송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최종 보스를 때려 잡고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열심히 뜁니다.

 여기까지도 좋습니다. 문제는 악마가 너무나도 찌질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무슨 악마 주제에 주인공들과 몸싸움을 합니까? 죽은 자도 일으켜 세우고 병도 퍼뜨릴 수 있다면 뭔가 그럴 듯한 방법으로 주인공 파티를 괴롭힐 수도 있잖아요? 나라면 그냥 급속 진행 흑사병에 걸리게 해 버리겠네. 장담하건데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제일 많이 웃는 부분은 펄슨이 악마와 박치기를 하는 장면일 겁니다. 어쨌든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게임은 클리어되었습니다만 마지막에 죽어가는 베이먼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에 들어간 음악 때문에 손발이 오그라들 뻔했습니다. 그런 음악을 넣지 않아도 관객들은 베이먼이 좋은 일을 했고 나름 속죄나 희생 비슷한 걸 했다는 걸 안다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아까워요. 이 사람이 제발 좋은 각본을 고르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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