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금지

2011.01.08 17:47

Koudelka 조회 수:2396

  요 며칠 듀게의 주제어는 바로 이것 같군요.

   

 1. 제 취향, 딴에는 무척 예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이 꽤 있습니다. 콜렉션을 하고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을 만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수십 벌의 청바지들, 무수한 구두들, 가방들, 쌓고 개키고 걸고 주렁주렁 옷장이 주저앉을 정도로 어떤 상황과 장소에도 제대로 다 갖춰 입을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종류의 의상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모든 차림의 화룡점정이 돼주고 흔해빠진 스타일에서 나를 변별해 줄 각종 장신구들, 향수들. 어딘가 조금이라도 스크래치가 나면 마음에 상처마저 되는 그 예쁜 것들. 더불어 그것들과 대척점에 서서 내 지적허영의 훈장이자 최고로 애물단지가 됐어도 결코 한 권도 남에게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각종 도서들. 그뿐입니까? 제 눈에 너무나 멋지고 귀할뿐더러 남들 눈에도 탐난다고 평가되는 사람들도 여럿 있습니다. 사람을 포함, 그것을 손에 넣기까지의 녹록치 않은 과정과 손에 넣었을 때의 환희에 대해, 그리고 입수된 그것들의 효용에 대해 내 사무치는 애정에 대해. 더욱이 그것들이 얼마나 나를 빛내주고 돋보이게 해주는 귀중하고 값지며 흔치 않은 것들인 지, 구구절절 천일야화로 이야기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너무 하고 싶을 때 많았습니다. 사람 사물 통틀어 저의 기호와 취향에 대한 과시 내지는 이참에 타자들에게 제대로 검증받아 더욱 그 가치를 상승시키고 싶은 허영심이 발동할 때마다 입이 근질거렸어요.

 

   저도 어지간히 자뻑이고 둘도 없는 허영덩어리라서 남들이 뭘 갖고 어떻게 하든 무심하거나, 짐짓 무심한 척 했지만, 드물게 몇몇 것들에는 저도 좀 배가 아프고 속이 꼬이더라는 얘기를 하게 되네요(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손에 꼽습니다만). 그것이 유형의 것인지 무형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더듬어 볼 것은 제 안에 과시욕이 꿈틀거리고 졸렬하게도 나는 그것에 무엇으로 응징(?)할 것인가 하는 질세라의 속물근성까지 뒤범벅되면서, 들이대기만 하면 한 번에 평정될 만한 것들의 리스트를 떠올리며 두리번거리기도 수차례. 그런데 저의 경우는 그게 그렇게 되질 않았어요. 퍽이나 겸손하고 수줍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뭔가 그게 더 불편 했거든요. 그런 류의 전시라면 이미 제 개인공간에 차고 넘치도록 해왔고, 어떤 글이든 써왔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나름 최측근의 지인들이고 아마 그 중에도 저의 과도한 자기애를 감상하는 것이 역겨워 댓글 하나 달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에요. 그래도 뭐 개의치 않습니다. 거기는 엄연히 제 공간이고 제 권리니까요. 문제가 될 것도 없고 따라서 속이 시끄러워질 일도 없지요. 게다가 엄선된-_-측근들로만 구성된 구경꾼들은 찬사든 질타든 냉정하고 공정하게 잘도 날려줍니다. 사실 제가 그런 류의 노출을 지극히 제 개인적인 공간에서만 허용했던 것은, 제 고유한 취향을 불특정 대다수의 아무나 하고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나 까다로움이 더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듀게에 사진을 올리는 법도 모르고;;;(이게 진짜 이유!!!)

 

   네. 많은 분들이 종종 올려주는 개인적인 신상들이 그저 자신의 일상의 한 단면으로써의 노출이었을 뿐, 대단한 의도와 과시욕의 발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어쩌면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요?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고 운동을 하고 물건들을 사고 팔고 술을 마시고 싸우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모습의 일면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있었고 대다수가 암묵적으로는 오프토픽이라는 이곳의 특성에 동의하며 그것들을 보거나 건너뛰거나 했겠지요. 그런데 어렵네요. 어디서 어디까지가 그 적정선인지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인데, 그 판단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도 딱히 정해진 것은 없으니, 싫으면 그냥 안 보면 그만이라는 논리가 차라리 명쾌한 것인가 싶을 만큼. 커뮤니티의 속성이라는 것이 타자와의 교감과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맞는데 그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썩 우호적이지 않을 때 감당해야 하는 감정소모가 너무 크죠.

 

   저는 이쯤에서 김애란 작가의 소설 ‘영원한 화자’ 에 나오는 어떤 문장이 떠오르는데, 제가 기억하는 한 이 작가에 대한 인정은 이 문장 하나였습니다. 정확히 읊을 수는 없겠는데 이를테면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다른 사람도 나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불쾌해지는 사람” 이거 너무 솔직하지 않나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굳이 이 문장을 읽기 전부터 저는 늘 타인의 자아도취를 목도하는 것만큼 역겹고 고통스러운 일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요. 어쩌면 제가 그 만큼 저 자신과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이고 온 세상에 유일한 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왕관이나 면류관처럼 내 머리에 올려진 허영심. 하여, 저는  너무나 싫은 것투성이인 가운데서 제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통일지도 모르는 다수의 누군가들을 다분히 의식하는 조심스러운 훈련을 멈출 생각이 없어요.

   

   2. 지난 번 손가락 얘기 했었죠. 한방병원에 갔다가 예기치 못한 치료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게 단순한 증세가 아니었던 것인지 엑스레이를 찍고 채혈을 하고 난생 처음 침으라는 걸 맞고 엉덩이에 주사를 두 대나 맞고--;; 며칠치 약을 받아서 먹고 있습니다. 벌써 두 번째 약을 타왔어요. 붓기가 빨리 가라앉아서 왼손 검지에 알이 큼지막한 반지를 다시 끼고 싶어요. 물론 사진 같은 건 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만^^.

 

   3. 오늘 낮에 지하철 타고 집에 오는데 양 칸에서 각각 싸움이 났어요. 사람들이 칸을 이동할 때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데 그때마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싸우는 사내들의 욕설과 분노와 주먹으로 전동차 내부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가방에 들어있던 책을 한 권 꺼내 읽고 있었는데 이제는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이 흔하지 않은 모양인지 근처의 사람들이 흘끔거리는데, 때마침 시집을 읽고 있는 제가 왠지 조금 부끄러워서 제목을 가렸습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시인이 진짜 오랜만에 내놓은 시집이어서요. 광화문이나 대학로 일대의 영화관에서 영화들을 보고 서점이나 기웃거리고 어슬렁거리면서 며칠 전에 올해 최초로 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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