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모 스포츠 신문인데 적당히 고유명사는 윤색했습니다. 

*(글쓴이는 무속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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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들과 강원도 영월로 MT를 가게 됐다. 한여름 밤 우리는 서로 돌아가며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하게 됐다. 당연히 내 차례도 돌아왔다. 

그 순간 내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 중 불연듯 이 사건이 떠올랐다.

1984년도 일이다. 당시 나는 ㅇㅇ동에 은거하고 있었다. 

훨씬 전의 일이라 그저 기도에 정진할 뿐이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모 국영기업체 감사인 K씨가 찾아왔다. 그는 지인들을 통해 

내 소문을 익히 들었다면서 자신이 한 번 더 감사직을 맡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K씨의 이력은 화려했다. 외교관출신인 그는 공보관으로 일하다 국영기업체 감사직을 맡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생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같이 온 한 살 연상의 부인 옆에 웬 하얀 안개처럼 생긴 여자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왠지 불길한 예감에 "사모님은 건강하세요?"라고 묻고는 영 기분이 이상해 

"혹시 원절 맺은 여자 분이 있습니까?" 그러자 K씨는 

"제 부인은 워낙 인텔리라서요, 원절 맺을 만한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나는 하도 답답해 할 수 없이 두 사람 앞에서 내가 본 여자를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솜씨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는 '이렇게 생긴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역시 둘 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K씨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의 부인이 갑자기 난소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다행히 예후는 좋다는 소식이었다.


"그 때 그려주신 여자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비슷하게 생긴 여자가 있습니다."

K씨말로는 1년 전 쯤 관리직으로 일하던 한 여성이 무단결근을 이유 없이 두 번이나 하자 

세 번째 하던 날 직장 내 기강을 잡기 위해 본보기로 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여성에겐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친정과 시댁 가족 열 명을 모두 먹여 살리는 대가족의 가장이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해고되자 우울증에 시달린 나머지 그만 농약을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감사인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혹시 그 여자가 제게 원한을 품고 있는 걸까요?" 


순간 K씨에 상상도 못할 불행이 닥칠 것만 같았지만 도울 수는 없었다. 

운명은 믿을지언정 영적인 문제에 대해선 내 말을 100% 신뢰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두 달 뒤 부인의 병세는 갑자기 악화돼 그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명동 B병원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잘못은 남편이 하고 왜 부인이 죽어야만 하는지, 

내가 부인을 살릴 방법은 없었는지 스스로 괴롭고 원망스러웠다. 


장례는 종교 예식에 따라 정중히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꽃으로 둘러싸인 부인의 영정 앞에 절을 두 번 올리고는 막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영정사진 속 부인과 눈이 마주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영정 사진 속에는 부인이 아닌 그날 부인을 따라왔던 여자 영가(靈家)가 웃고 있는 게 아닌가.


K씨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인이 죽은 뒤 식음을 전폐하며 폐인 생활을 하던 K씨는 

어렵게 재혼에 성공했지만 재혼한 부인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K씨도 알코올중독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만약 내가 제를 올렸다면 K씨의 운명은 달라졌을까.죽은 부인을 위한 천도재라도 올렸다면 여성의 원한은 풀렸을까.

악인도 아니었던 K씨가 자신이 해고한 직원의 원한으로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던 사건이다. 

20년 넘게 말 못할 비밀로 간직해왔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최초로 고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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