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1 04:20
원래는 우리 학번 동기들(절반쯤은 형입니다) 모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섯시부터 소주에 맥주를 잘 말아서 달리기 시작합니다.
네 살 많은 형이 신문사에 취직하더니 음주습관이 하드코어해졌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동기들은 즐거웠지만 하나 둘씩 저랑 사는 세계가 달라지니
약간 우울해집니다. 며칠 전 큰 증권사 취직한 놈과, 최종에서 떨어진 제가
비교됩니다. 여기서 계속 먹었다가는 그야말로 뻗을 듯해서 눈치를 봅니다.
나가자. 그냥 집에 가서 송년 행사나 보다가 디비 자자...
그 와중에 친구 A에게 걸려온 전화. "너 B에게 뭐라고 말했냐?"
A는 남자고 B는 여자인데. A가 말실수를 해서 B의 심기를 건드린 게 있습니다.
B도 여자애치고는 연애경험이 없어서 완전 곧이곧대로 유도일직선-_-인 녀석이고
A도 사회생활에 비해서는 의외로 숙맥입니다. 전 A가 숙맥인 줄 몰랐죠.
A는 B가 왜 최근 자기한테 쌀쌀맞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넌지시 눈치를 줬습니다.
그런데 이 A는 B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내가 너한테 혹시 뭐 실수한 거 있다면
새해인데 그냥 툭툭 풀고 잊어버려." 라고 해버린겁니다.
아 이 자식아. 나보다 연애 횟수도 많은 놈이-_-
내가 그걸, B와의 신의에 기스가 날 우려까지 감안해 가며 눈치를 준 거는
A 니가 B하고 얘기를 이리저리 나누면서 분위기 좀 훈훈하게 만든 다음에
그 건드린 그걸 살살 끌어내어서(ex: 무슨 일... 있는 거야?) B의 진의를 직접
들은 뒤에 A 니가 확실하게 풀어 주어라는 뜻이지 누가 그런 돌직구를 던지래
니가 무슨 오승환이냐-_- 아아아앍 나도 몰라 니들 문제는 니가 해결해.....
.... 라고, 모임 도중에 A한테 전화걸어서 불을 뿜자니.
A는 속도 편하게 제 말을 간단히 씹어버리고는 말합니다.
"어디냐?"
"노량진."
"거기 왜 갔냐?"
"동기모임이라고 임마."
"내가 누구 바꿔줄께. 잠깐만"
C씨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01410이냐? 나 C형이야."
"앗 예 안녕하십니까 형님"
"여기 여의도인데 넘어올래?"
"옛! 총알처럼 가겠습니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던 다른 모임에 3차를 달리게 됩니다.
아 꼭지가 슬슬 돌고. 어떤 아저씨의 현 위치 은퇴 및 영전 기념 번개.
근데 이 분
저랑 동갑이라시네요.
저 이 나이 먹고 뭐 한 걸까요.
저 분은 5년차 커리어에 간판 뉴스 진행 경력.....
나는 서류 필기 면접 들어가고 결국 최종 탈락...
(뭐 제가 응시한 데도 이번에 사업자선정 탈락했던데 동병상련 ㅋㅋㅋ)
아놔
술이 안 깨서 그냥 주절주절 합니다.
가뜩이나 별로 술 잘하는 편 아닌데 술 마실 일만 늡니다.
새해는 뭐 좀 잘 풀릴까나요.
+
저 3차 모임에서 처음 본 D씨와 C형, A군과 4차를 가게 되었습니다.
D씨 귀여워서 호감가네요. 다시 만날 일 있을까요.
근데 D씨에게 누군가 보낸 새해문자.
"(전략) 언니 내년에는 꼭 남자친구 생기시고... (후략)"
근데 문자가 12시 2분에 왔네. 어머나. (.......) D씨는 울부짖을 뿐이고.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난데없는 작은 해프닝은 우울한 이 밤 정초 새벽의 한 줄기 위안.
주저리주저리. 그냥 바이트 낭비입니다. 그래서 바낭입니다.
어쨌건간에 이 게시판에 계신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