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로물루스]는 [에일리언]과 [에일리언 2]를 기본 골자로 하되 [프로메테우스]도 섞어놓았습니다.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레퍼런스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은 되는데, 그건 제가 아직 보지 못해서 제대로 체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기 전에 [에일리언]도 보고 갔으면 좋았겠지만 영화를 더 미루기도 싫었고 보고 봤어도 밋밋했던 감흥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팬픽의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이동진 평론가 식으로 말하면 '원작의 강력한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도가 되겠네요.


[에일리언 로물루스]가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원작들의 흔적이 강한 것도 있지만, 섞일 수 없는 전작들을 섞어놓은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에일리언]과 [에일리언 2]는 출연 괴물만 같지 완전히 다른 영화입니다. 일단 공포의 질도 다른데, 하나는 저항불가한 미지의 존재로부터 쫓기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로도 강하지만 너무 많아서 처치곤란한 짐승떼와 맞닥트리는 공포입니다. 미지의 대상과 이해의 대상, 끝없는 탈주와 투쟁적 사냥, 나의 공간에 침투하는 존재와 내가 침투하는 공간의 존재, 암살자와 맹수... [에일리언 로물루스]는 이것을 작품 속 시간의 흐름으로 넘길려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주인공들이 공포를 극복해버리는 양상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게임적 유희밖에 남지 않는데 특히 무중력 공간을 만들어놓고 제노모프들을 사격하는 장면은 정말 별로였습니다. 에일리언은 이제 인간의 순간적 기지 아래에서 덫에 걸리는 멍청한 동물로 전락합니다. 그 이후에 액체들을 무사히 피해나가는 장면은 영화가 주인공을 지키려고 치팅을 하는 것 같아 좀 짜증이 날 정도였구요.


그렇기에 마지막에 나온 '혼종'도 백룸 게임의 몹 같아서 소위 '짜쳤습니다.' 이 장면에서 감독이 에일리언 시리즈의 공포를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제노모프가 무서운 건 인간의 육체와는 닮아있지만 눈이 없고 피는 산성이며 어떤 의사소통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전한 '인외의 존재'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주 거대한 장수말벌이나 개미 같은 존재이고 포유류도 파충류도 양서류도 아닌 다른 질감과 형태의 괴수이기에 시각적으로 이해불가의 공포감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닮은 에일리언? 그건 그냥 도시괴담스러운 느낌만을 줍니다. 한마디로 크리처의 디자인에서 바로 속된 느낌과 유치한 느낌이 들어버립니다. 저한테는 그 새로운 크리처가 안좋은 의미로 흉물스럽기만 했습니다. 팬픽스러운 느낌이 더 강해졌구요.


오히려 재미있던 것은 극중 합성인간으로 나오는 앤디였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합성인간들에게는 없는 흑인이라는 인종적 속성과 말이 어눌하고 동작을 정확히 하기 어려워하는 장애의 속성이 있는데, 이는 현실세계에서 메이저리티의 차별을 환기시키는 지점이 있달까요. 그래서 이런 존재가 언행을 메이저리티와 동일하게, 혹은 월등하게 할 수 있으면서 더 이상의 호감과 관용을 갖지 않는 상태가 된다면 그 때는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험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그 역전된 위치에서의 냉혹함이 통쾌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레인마저도 저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호러의 측면에서 꽤나 즐거웠습니다. '효율'이라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인간에게 매기기 시작할 때 인간은 어떤 존재로 취급받는지도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통제를 벗어나는 존재라는 지점에서는 에일리언과 묘하게 엮이는 느낌도 있었구요.


이번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별로였던 지점은 에일리언이 너무 빨리 큰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영화 안에서의 설정이어도 그렇지 저 정도의 근육과 골격을 가진 성체가 되기까지 무슨 몇분후에 바로 커진다는 게... 그 영양은 다 어디서 얻는 것이며... 페이스 허거가 떼로 나오는 것도 그냥 규모만 키워서 보여주려는 게 너무 드러나서 좀 별로였고요. 양 옆에 앉았던 생면부지의 타인들이 잔뜩 쫄아있지 않았다면 저는 더 심드렁하게 봤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재미가 없지는 않았는데 보고 나서 왜 이러헥 뭐가 얇고 비어있는 느낌만 드는지 그 자체가 더 신기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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