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2 01:18
- 2023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22분.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적다 보니 영화의 재미가 전혀 안 묻어나서 그냥 그만 뒀어요(...)
(호밀과는 아무 관련 없는 영화입니다.)
- 남녀 공용 화장실(애... 앨리!)에서 시작됩니다. '돔'이라는 젊은 회계사 젊은이가 자기 절친과 바람이 난 구여친의 사진을 보며 좌변기에 앉아 질질 짜는 소리를 '야스'라는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이 듣고서 호기심을 갖게 되죠. 둘은 잠시 후 공동의 지인이 여는 전시회에서 마주치는데, 야스가 돔의 운동화를 알아 보고선 갑자기 돔에게 잘 해주며 가는 길을 졸졸 따라가며 말을 걸고 그래요. 상황이 영 쌩뚱맞지만 대체로 온순하고 수동적인 성격의 돔은 야스를 떼어내지 않고 그냥 달고 다니다가 이런 일, 저런 사건 등을 함께하게 되고. 그러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호감이 싹트는 거죠. 뭐... 더 설명할 게 없네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ㅋㅋ
(찌질한 표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남자와)
(위풍당당 쪽으로 특화된 여자... 되겠습니다. ㅋㅋ)
- 영화의 내용이... 대략 절반 이상이 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요. 그냥 세상 사는 얘기도 하고 각자의 전 애인 이야기도 하고 점점 친해지면서 각자 인생 이야기도 하고... 아무튼 둘의 대화가 끊기는 일이 별로 없는 영화입니다.
그렇게 수다만 떨면 아무래도 좀 심심해질 수 있으니 볼거리도 이것저것 던져 주는데요. 한 명이 이야기할 때 무슨 연극 무대 같은 연출이 나오면서 다른 한 명이 관객으로 앉아서 박수를 친다든가 하는 식의 코믹한 연출도 자주 나오긴 하지만 기본이자 핵심은 영화의 제목인 '라이 레인'의 풍경입니다. 대충 런던 남부의 페컴과 브릭스톤... 이라는 지역이라는데요. 정말로 영화 내내 이 동네를 계속해서 돌아다니는데 계속해서 다른 장소가 나옵니다. 이쯤 되면 관광 영화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ㅋㅋㅋ
근데 그 알지도 못할 '동네 구경'의 재미가 매우 쏠쏠합니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옛날 말로 홍대 피플들의 이상향 같은 모습이랄까. 요즘 식으로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아주 '힙'한 곳이에요. 최소한 그렇게 보이도록 찍어놨습니다. ㅋㅋ 로케이션과 편집의 힘이 크겠지만 어쨌든 골목 골목을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나오는데 그게 다 폼나면서도 친근하고 매력적이란 말이죠. 게을러서 여행 같은 건 평소에 상상도 안 하는 저 같은 사람 입장에서도 '한 번 가서 둘러 보고 싶긴 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매우 성공적이었던 것...
(이 사진이나)
(이런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로 야스가 리드하고 돔은 반응하는 쪽인데요. 양쪽 캐릭터 모두 센스 있고 재미가 있으며 잘 어울려서 특별히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각본을 잘 쓴 거죠.)
- 이야기 자체는 정말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흔한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기에 대략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녀가 어쩌다 좀 코믹한 상황으로 인해 엮이고, 어쩌다 하루를 통으로 함께 보내며 이런저런 자잘한 사건들을 겪다가 정들고. 그러다 막판에 일이 꼬여서 서로 성질부리며 찢어지고 그랬다가... 이런 뻔한 이야기를 역시나 참으로 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넣어서 만들어낸 건데요.
일단 흑인들의 영화입니다. 주인공 둘이 다 흑인이고 영화 내내 나오는 수많은 동네 사람들 중 대사 있고 비중 좀 되는 백인 캐릭터는 딱 하나. 나머지는 몽땅 다 흑인이에요. 그런데 이게 또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동네 할매 할배들도 있고 힙하고 잘 나가는 젊은이도 있고 사업가도 있고 백수도 있고 등등... 이렇게 다양한 부류들이 나와서 런던의 흑인들이 살아가는 모습, 세대별 계층별 그들의 문화 같은 것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게 얼마나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걸지는 제가 전혀 모르지만 암튼 영화에서 보인 걸로는 디테일하게 잘 그려낸 듯이 보여요. 뭐 그럼 제게는 그걸로 된 거죠. 하하;; 어쨌든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서 이런 부분이 살짝 신선한 느낌을 심어주고요.
(부자 젊은이들 파티도 나오고)
(그냥 동네 어르신들 파티도 나오구요. 뭐가 됐든 어쨌든 흑인들 문화이고 흑인들 이야기라는 거.)
- 주인공 둘이 참으로 리얼하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물들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나름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배우님들이 다 격하게 잘 생기고 예쁘려고 노력하지 않는 스타일을 하고 나와서 계속 그런 연기를 하거든요. 캐릭터 디테일을 봐도 마찬가지이고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그런 일상적인 느낌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로 대충 조율되어 있어요. 그런 식으로 평범한 남녀의 로맨스를 그렸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네요.
'로맨틱'과 '코미디'의 비율이 대략 반반 정도 되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메인은 로맨스가 되겠지만 코미디의 비중이 거의 그만큼 된다는 거. 그리고 그게 꽤 웃깁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로맨스가 잡아 먹히겠다... 싶을 정도로 코미디에 진심이고 그것도 제겐 맘에 들었습니다. 애초에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이니 여기서 막 리얼한 삶의 현장 같은 게 나오진 않을 거라는 건 당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화장실에서 남자 둘이 xxx 대결하는 장면 같은 게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ㅋㅋㅋㅋㅋ
- 요약하면, 예쁘고 힙한 동네 풍경 속에서 평범한 캐릭터의 남녀가 만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길을 걷는 그런 영화입니다. 아주 특별하거나 튀는 구석은 의외로 별로 없어요. 특히 클라이막스와 엔딩 즈음에 가면 정말 당혹스러울 정도로 전통적인 전개와 연출이 그냥 좌라락 펼쳐져서 '아니 정말?? 2023년에???'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만.
그 동네가 정말로 요즘 스타일로 보기 좋고. 또 캐릭터들이 정말로 요즘 스타일로 매력 터지구요. 둘이 각자의 캐릭터에 맞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센스 있게 날려대는 대사들은 듣기 재밌고 훈훈하고 감동적이구요. 코믹한 만남과 귀여운 소동들, 얄밉지만 아주 싫어지진 않는 나쁜 사람들과 그냥 귀여운 좋은 사람들. 거기에 애틋하고 훈훈하면서 깔끔한 마무리까지. 그러니까 그냥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라서 재미 있는 영화입니다. 이 정도로 만들어 놓으면 원래 선호 장르는 아닐 지라도 재밌게 볼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잘 봤습니다. 디즈니 플러스에 볼 게 없어서 아쉬우신 분들은 한 번 틀어 보세요. 참 이쁘고 사랑스럽고 즐거운 영화였어요.
(특별히 취향 탈 일 없이 재밌고 사랑스러우니 심심하시면 언제든 그냥 한 번...)
+ 보다가 '비포 선라이즈' 생각이 좀 나고 그랬습니다. 여기 주인공들은 여행객은 아니지만 뭐 중간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열심히 안내하며 동네 구경하러 다니는 전개가 길게 나오기도 하구요. 정말 시종일관 둘이 수다를 떨구요. 그러면서 은근히, 나중엔 대놓고 서로 끌리구요. 시작부터 영화 내용의 거의 대부분이 딱 하룻 동안 벌어지는 일이고 그래요. 결정적으로 다 보고 나면 저 동네에 가 보고 싶다는 점에서... ㅋㅋ
++ 영화를 보기 전에 저 여배우님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검색을 해봤는데. 어디서 봤는지는 못 찾았고 그냥 직업이 배우 겸 뮤지션이라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중간의 어떤 장면에서 전혀 놀라지 않았죠.
+++ 카메오가 있습니다. 꽤 커요. 아니 정말 왜 그 분이 갑자기 여기에서 그런 역할로... ㅋㅋㅋㅋㅋ 감독과 친분이라도 있는 걸까요. 근데 사실 생각해보면 꽤 잘 어울리는 카메오였구요. 왜 잘 어울리는지는 설명을 생략합니다.
그리고 쿠키도 있습니다. 아마도 NG 컷인 듯 한데... 역시 그냥 웃겨서 좋았네요.
++++ 영화의 첫 공개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네에서 했나 봐요. 감독님이 이 동네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신 듯. 내친 김에 아예 이 동네 배경으로 시트콤이나 시리즈 하나 만드셔도 좋으실 것 같구요. ㅋㅋ
2024.08.22 08:51
2024.08.22 09:14
여기서도 되게 잘 하세요. 좀 심심하고 뻔한 캐릭터가 될 수 있는 걸 잘 살리시더라구요. 귀엽고 짠하고 웃기고 멋지고 다 해요. ㅋㅋ
2024.08.22 10:57
저도 이틀 전에 봤어요. 저도 '비포 선라이즈' 떠올렸어요. '저도'가 많네요.ㅎ 미국 영화에서 보던 흑인들의 동네나 생활과 달랐던 거 같아요. 훨씬 친근감이 가더군요. 물론 저도 실제야 모르지만 일단은 미국 흑인들 등장할 때 문장마다 나오는 추임새 욕 같은 거 없고(로맨틱 코미디라 그렇겠지만) 이야기 흐름은 뻔하지만 동네의 현실적인 생활 느낌 물씬 나는 일상의 풍경이 보여진다는 점이 좋았어요. 활력이 있었어요. 시장 건물 골목도 우리 나라와 비슷하고요.
그래도 듀나 님의 별 셋 반에는 좀 놀랐습니다. 무척 즐겁게 보신 듯.ㅎ
2024.08.23 02:28
맞아요. 같은 흑인(?)이어도 미국 영화 속 동네 모습이나 문화랑은 많이 다른 느낌이 있어서 신선하고 좋더라구요. 물론 가만 보면 많이 순화되고 더 예쁘게 꾸며지지 않았겠나... 싶었지만 어차피 영화니까요.
시장 건물 골목은 정말 저도 한국이랑 닮아서 웃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못골 시장'이 제목이고 힙한 젊은이들이 그 시장을 거닐며 연애 하는 이야기인 거잖아요. ㅋㅋㅋ
듀나님께선 리뷰에서 비교하신 '노팅힐'에 별 셋을 주셨으니까요. 그보다 조금 더 호평인 이 영화는 셋 반... 나름 합리적이긴 합니다. 하하.
2024.08.22 11:00
저도 조성용님의 추천을 받고 디플에 들어가서 보았는데요. 참 재미있었어요. 내용은 말씀하셨다시피 평범했지만 흑인분들이 런던에서 사는 모양새가 좋아보였어요. 특히 연출과 미술이...
칼라풀하고,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잘 찍는 카메라와 조명 기술을 최대한 사용한 것같고 온갖 색깔의 향연이더라고요. 영화를 보다보니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이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어찌나 옷도 컬러풀하게 잘 입고 나오고 현대 미술도 울긋불긋한지 눈이 호강을 했네요. 모노톤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아주 즐겁게 영화를 보았습니다.
2024.08.23 02:29
맞아요 영화가 정말 컬러풀하죠. 당연히 여러 방면으로 색감을 강조해서 연출한 거겠지만, 참 이쪽에선 나오기 힘든 그림과 색감이란 생각이 들어서 이런 게 문화 차이인가... (말 그대로 '차이'요. ㅋㅋ) 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네요. 옷도 컬러풀 동네도 컬러풀!!!
2024.08.22 12:31
흑인 남녀가 공동주연인 롬콤은 나름 다양성 출연진이 트렌드가 된 요즘도 보기 힘들었던 그림이라(둘 중 하나인 경우는 봤지만) 신선했고 런던을 배경으로하는 우리 눈에 익숙한 워킹타이틀표 다른 영국 롬콤들이랑은 다른 시점에서의 런던이라서 더 신선했던 것도 같아요. 배티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언급하듯이 작중 배경이 되는 장소를 너무 힙하면서 이쁘고 정감가게 그려놓고 음악도 감각있어서 눈과 귀과 다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스토리 진행상으로도 두 주인공을 공식적으로 억지로 엮는다는 느낌도 없이 말씀대로 엔딩도 깔끔했죠.
남주를 맡은 데이빗 존슨의 저 어딘지 안쓰럽고 정감가는 인상은 이번 에일리언 영화에서도 캐릭터에 맞게 잘 활용됐고 연기도 정말 잘했어요.
2024.08.23 02:31
그렇죠. 워킹타이틀과 친구들 덕에 런던 구경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 속 런던은 또 다르고 신선하더라구요. 사실 보는 동안엔 이게 런던이란 생각도 못했어요. 검색해보니 런던 남부라길래 헐... 했습니다. ㅋㅋㅋ
표정을 보니 '라이 레인'의 그 짠한 느낌이 그대로네요. ㅋㅋㅋㅋ 블룸 하우스가 원하는 새로운 인재상이 아닌가! 생각하며 호러 영화에서 자주 뵙길 빌어 봅니다. 본인 커리어를 위해선 좀 별로겠지만 제가 보는 게 거의 그 쪽이니... 하하.
2024.08.22 17:29
2024.08.23 02:32
특근 ㅋㅋㅋㅋㅋ 맞아요 그런 느낌도 있었어요. 중후반엔 시간 배경도 밤이 되기도 하니까요.
저도 노래 때문에 타이틀롤 끝날 때까지 쭉 봤습니다. 그 난감하게 웃기는 쿠키도 보구요. 힙한 영화가 되려면 역시 음악 선곡 센스는 필수구나... 라는 생각을 했구요.
아 그게 주연 배우님이 로물루스에 출연했다는 얘깁니다. 감독은 다른 사람이니 속으시면 안돼요!!! ㅋㅋ
얼마전에 인상깊게 본 영화 에일리언 로물루스의 엔디가 나오네요
저분 너무 잘해서 영화가 살던데 이 영화도 챙겨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