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싸게 보면 소비자 입장에서야 좋습니다. 그런데 좋은 영화를 볼 때는 제값을 내고 보지 않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그런달까요. 특히나 극장에서 독립영화나 아트하우스 영화를 챙겨보는 분들이라면 이런 마음을 더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공짜를 믿지 않는 편이고 좋은 영화를 만나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알기에 거기에 드는 돈을 막 아끼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문화상품을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히 영리한 소비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최소한의 투자자나 영업사원이 되는 기분도 들게 하니까요. 최소한의 자본주의적 이득을 거둬야 창작자들도 계속해서 창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리스 신화의 금기를 무서워하듯, 좋은 영화를 제값을 주지 않고 보면 결국 벌을 받을 것 같은 느낌마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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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을 받아 표를 예매하기 부담스러웠던 사례를 들자면 최근 들어 본 무대인사 회차입니다. [하이재킹]은 겸사겸사 여진구씨를 좋아해서 실물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어우 정말 훈훈하더군요. 요즘 트렌드처럼 막 8등신이고 그런 느낌은 아닌데(저는 대체 왜 배우가 그렇게까지 슈퍼모델같은 "비율"을 자랑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지만 실제로 보니 너무 근사했습니다. 이건 약간 두툼하고 뼈대있는 남자배우들을 좋아하는 제 개인적인 취향도 있습니다ㅎㅎ 또 한편은 무대인사 회차인줄 모르고 가서 봤던 [핸섬가이즈]였는데 배우분들이 입소문 부탁을 열심히 하시더군요. 원래도 배우들의 무대인사 행사가 있긴 했지만, 요즘 들어 정말 활발해진 느낌입니다. 아마 극장 흥행에 위기감을 느낀 출연자들이 관객들을 끌어모으려고 열심히 영업한다는 느낌이랄까요. 극장 산업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무겁기도 하고, 또 이렇게라도 배우들 직관을 해서 좋기도 하고, 마음이 좀 복잡했습니다. 무대인사 회차를 차마 할인표로 보지는 못하겠더군요. 배우들이 저렇게까지 '열일'하는데, 그걸 할인받아서 보고 배우들한테 감사인사까지 받는 게 너무 염치없는 짓이 될까봐요.


무대인사를 포함해서 저에게는 정가로 영화를 본다는 그런 개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일단 독립영화는 무조건 제값으로 봅니다. 그리고 한국영화들도 제값으로 봅니다. 관객수가 1만에서 2만 사이에 그치겠구나 하는 아트하우스 계열도 무조건 제값으로 봅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독립극장들도 어지간하면 제값으로 봅니다. 이제 남는 영화들은 무료쿠폰이나 할인을 받아서 예매하는데, 예를 들어서 흥행이 엄청나게 되고 있는 [범죄도시]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할인표나 브이아이피 무료로 봅니다. 한국영화기는 하지만 이미 1000만을 네번이나 찍은 데다가 저 말고도 봐줄 사람이 많으니까요. 헐리웃 흥행 대작들도 가능하면 쿠폰으로 봅니다. 정성일 평론가님은 영화를 지지하는 데 있어서 국적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전 한국영화들은 아무래도 손해를 덜 봤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나라 사람한테 표값좀 깎아주세요 이러는 게 괜히 좀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런 쿠폰 할인을 시원하게 적용할 영화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는 영화들이 다 보고 싶고 표값이라도 온전히 주고 싶은 영화들이 대부분이고, 부담없이 할인쿠폰을 쓸만한 영화들에는 애당초 손이 잘 안갑니다. 그나마 쿠폰을 쓰는 건 재개봉을 하거나 기획전으로 상영하는 고전 영화들이겠네요. 제가 당장 할인받는다고 아쉬워질 일이 없는 감독님이나 제작자들이 대부분일테니... 물론 저 규칙이 절대적이진 않아서 CGV에서 주는 아트하우스 쿠폰을 쓸 때도 제법 되고, 또 톰 크루즈 영화같은 경우에는 헐리웃 영화여도 제값 내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곧 개봉하는 정이삭 감독의 [트위스터즈]는 할인을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 사소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OTT에서 무료로 영화를 보게 되면 장바구니에 여럿 담아놨다가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내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손이 정말 안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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