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9 01:09
- 작년 영화죠. 런닝타임은 무려 2시간 32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
(20세기였으면 '가을의 해부'라는 번역제를 달고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썰렁한 생각을 해봅니다만. 포스터에 눈이 있어서 안 되겠네요...)
- 배경은 프랑스지만 일단 시작은 외딴 산장이라 티는 안 나요. 우리의 주인공, 성공한 소설가 산드라 여사님께선 자길 찾아온 대학원생과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근데 이 양반은 인터뷰엔 관심이 없고 이 젊은이의 매력을 즐기는 듯 하구요. 근데 윗층에서 공사 작업 중이라는 남편이 노래를 엄청 크게 틀어서 인터뷰를 방해 하네요. 그러다 젊은이는 떠나고. 이 집 어린 아들래미는 맹도견을 끌고 산책을 나가구요. 산드라는 쉬러 올라가는데... 아들이 개와 돌아와 보니 아빠, 그러니까 산드라 남편이 피흘리며 쓰러져 죽어 있습니다. 산드라가 뛰쳐나와 구조대를 부르지만 이미 늦었죠.
문제는 이게 자살이라 볼 근거가 없고, 타살을 의심하자니 범인으로 가능한 건 산드라 뿐이고, 근데 산드라가 뭘 어떻게 했다는 증거 역시 없습니다. 어쨌든 수사와 재판이 시작되고... 그 중에서 우리가 앞으로 2시간 동안 구경하게 될 것은 재판입니다.
(그러니까 재판 '과정'을 내내 보게 되는 것이고 실제 재판 장면은 절반 남짓 정도 될 겁니다. 오해하실까봐... ㅋㅋ)
- 설정만 놓고 보면 스릴러 무비에 딱 알맞을 얘기지만 그런 데 관심 없을 영화라는 건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 수상'이라는 스펙이 말해줍니다? ㅋㅋㅋ 그럼 대체 무슨 얘길 하는 영화냐면요... 방금 적었듯이 재판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재판의 컨셉이라면 '양쪽 다 증거가 없는 싸움'이라는 거죠. 검사 측은 정황상 자살이나 사고로 보기 어려우니 산드라가 죽였다고 주장을 하고 변호사 측은 어쨌든 우리 고객은 안 죽였다. 라는 식이에요. 그런데 경찰의 수사로 밝혀진 내용들 중 확증이라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결국 이 재판은 동기 싸움이 됩니다. 산드라가 죽일 동기가 있었다 vs 남편이 자살을 할만한 동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건 다 정황 증거들의 해석이고 그래서 우리가 보게 될 재판은 참으로 문과적인 재판이 됩니다. ㅋㅋㅋ 대학생 시절 몸 담았던 동아리 활동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이야기 속 어떤 장면, 상황을 놓고 이건 이런 의미다 아니다 저런 의미다 이러면서 박터지게 싸우는 거죠.
(맡은 역할상 그런 문학적 상상력(...)을 가장 열심히 펼치는 캐릭터, 검사님이십니다. 되게 얄밉고 재수 없게 구는 장면이 많지만 뭐 그냥 본인 일 열심히 하는 것 뿐이었죠.)
- 일단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부부 관계 이야기입니다. 산드라와 사무엘. 서로 아끼고 사랑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어그러지고 어떻게 최악으로 치달았는지를 보여주는데요. 한 가지 재밌는 부분이라면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이 관계는 끝났잖아요. 한 명이 죽었으니까요. 그럼 싹 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여야 하는데, 이걸 플래시백 같은 걸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현재 시점에 머물며 재판 과정을 통해 전달합니다. 변호인과 변호 전략을 세우는 대화, 법정에서 선 증인들과 산드라 본인의 증언, 녹취 청취 같은 식으로 전달이 되고 그걸 또 변호사와 검사가 열심히 해석하고 분석하며 논평을 해요. 그리고 이런 해석과 논평은 검사와 변호사만의 것이 아닙니다. 산드라가 남편과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사실 다 해석이고 논평이죠. 증인들도 마찬가지이고 마지막엔 이 해석 & 논평 배틀에 어린 아들까지 끼어들게 되구요.
그러다보니 한참 보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라쇼몽'스런 이야기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부의 '사실'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다른 입장, 다른 각도에서 다른 해석을 하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를 끝까지 봐도 정답은 제시되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이 옳았는지는 그냥 관객들이 알아서 생각해 보라는 식... 인데 솔직히 그걸 생각해 보라는 게 영화의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영화의 태도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쪽에 가깝습니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냐면요...
(이렇게 인간적인 모습을 자꾸 보이니 무죄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산드라가 범인이어도 저렇게 진솔하게 오열할만한 이유는 얼마든지 있구요.)
(또 재판 구경을 하다 보면 애초에 이 양반이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게 계속 드러나서요. 물론 사람 죽일 정도의 인간이란 얘긴 아니지만 홧김에 그럴 수도 있죠 뭐!! ㅋㅋ)
- 모릅니다. ㅋㅋㅋ 언제나 그렇듯 저는 몰라요. 다만 막판에 아들이 하는 대사 중에 인상적인 게 하나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면 정황을 봐야 해요. 이 재판처럼요. 아무리 찾아봐도 어떻게 된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 '어떻게'가 아닌 '왜'에 의문을 품어야죠."
주인공인 산드라는 이 사건의 직접 관계자이자 당사자이니 관객도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는데 반해 아들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관찰자에 가까운 입장이고 갖고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이 사건에 대해서 당장 무언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도 본인 인생을 건 선택을요.
근데 처음에 적었듯이 이 아들래미는 시각 장애인입니다. 아무 것도 보지를 못해요. 게다가 어려서 어른만큼 판단력이 되지도 못하는데, 재판정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자기 엄마 아빠는 자기가 평생 알고 살았던 거랑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엄마의 말들도 100%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그렇게 그 어떤 결정도 확신을 갖고 내리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들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저거에요. 그래 난 모른다. 알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결정은 내려야 하고, 그렇다면 내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이 일을 해석할 수밖에.
이게 영화의 주제다! 같은 얘길 하려는 건 아니구요. 그냥 이 부분이 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저 아들의 캐릭터(시각장애인+어린이)가 대략 보통 사람들 사는 모습 같아서요. 살다 보면 선택을 내리고 결정을 해야 할 일이 부지기수인데 우린 대부분의 경우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숙한 판단을 내리죠. 근데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 해서 해석하고 이해하려 애를 쓰는 거죠.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다 보고 나니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산드라가 아니라 아들래미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ㅋㅋ 아니 진짜로 영화를 보다 보면 아들 비중이 점점 커지다가 마지막엔 얘가 가장 중요한 순간을 장식하니까요. 산드라에 비해 좀 더 보편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처지의 캐릭터이기도하구요.
(이 영화에 나오는 생명체들은 모두 연기를 잘 합니다. 이 아들래미 역의 어린 배우도 참 연기 좋았구요.)
(아카데미까지 참석하셨다는 요 메시 배우님의 연기도 참 기가 막혔습니다. ㅋㅋㅋ)
- 뭐 어쨌든... 이 영화의 재미 포인트는 대부분 궁서체로 진지한 재판 과정을 구경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딱히 신선할 일은 없는 부분이지만 내용이 되게 충실해요. 검사 측도 변호사 측도 모두 자기 일 열심히 하는, 또 아주 잘 하는 전문가들이고 그래서 영화 내내 열심히 자기 일을 합니다. 그걸 아주 디테일하게 잘 묘사를 해 주니 드라마틱한 반전 같은 게 없어도 잔뜩 몰입해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더군요. 두 시간 반이란 런닝 타임이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고로 법정물 좋아하는 분들은 꼭 보시구요.
그 다음 재미라면... 역시 산드라 휠러 구경(?)이 되겠습니다. 작년에 두 편의 영화로 동시에 세계 영화 시상식을 장악했던 실적 답게 참 잘 하시네요. 뭐랄까... 그러니까 이 캐릭터의 포인트란 게 참 억울해 보이면서도 100% 결백할 거란 생각은 안 들게 해야 한다는 오묘한 부분인데요. 결과적으로 제가 그런 기분으로 봤으니 잘 하신 거겠죠. ㅋㅋ 사실 결백하고 억울해 보이는 쪽에 가깝긴 해요. 특히 억누르던 감정을 쏟아내는 어떤 장면을 보고 나면 이 양반이 무죄가 아닐 리 없어... 이렇게 되긴 하는데. 그렇게 감정 이입을 하는 와중에도 일말의 의심은 끝까지 남더라구요.
(감독이 '니가 범인인지 아닌지 나도 안 알려줄거야~' 라며 연기 시켰다는 대목에선 봉준호 생각도 나고 그랬습니다.)
- 대충 마무리하자면요.
일단 법정물이라는 부분이 가장 큰 정체성이겠지만, 그런 형식 안에 이것저것 다양한 소재들을 꽉꽥 채워 넣고 다방면을 건드리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그게 솜씨 좋게 잘 버무려져 있고 이야기 전개 속도도 빠르고 해서 두 시간 반이 지루하지 않구요. 또 딱히 뭐 분석을 하고 따져 보고 하지 않으면서 그냥 봐도 몰입할 수 있도록 드라마도 충분히 고퀄로 잘 만들어져 들어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딱히 취향 타지 않고 두루두루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라는 얘기구요.
다만... 깔끔하고 속 시원한 마무리를 기대하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ㅋㅋㅋ 그런 걸 기대하시다간 최악의 엔딩을 맞이하게 되실... 하하. 그래도 어쨌든 마무리는 돼요. 재판의 결과는 나온단 얘기구요. 어쨌든 저는 이런저런 쓸 데 없는 생각들 하면서 재밌게 잘 봤습니다. 끄읕.
+ 플래시백이 없다... 고 적었는데 사실 플래시백 장면이 두 번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가만 생각해 보면 그건 결국 플래시백인데 플래시백이 아니고 그래요(?) 근데 그 중 첫 번째 것은 좀 얄미웠죠. 의도적으로 녹취 마지막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ㅋㅋㅋㅋ
++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정말 지겹도록 반복해서 울려퍼지는 곡이 있는데요. 이게 50센트의 곡이고 가사가 여성 혐오다... 라는 얘기가 재판정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에 나온 버전은
가사가 없는 요 밴드 버전이었죠.
영상 댓글들이 웃깁니다. 죄다 이 영화 관련 드립들이에요. ㅋㅋㅋ
+++ 사실 산드라 휠러 뺨 치게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가 하나 더 있었는데... 맹도견 '스눕' 역을 맡은 '메시'님이십니다. ㅋㅋㅋㅋ 아니 근데 정말 너무 연기를 잘 해요. 카리스마 쩌는 얼굴도 인상적이구요.
아... 근데 생각해 보니 이 개 이름이 그냥 지어진 게 아니군요. 계속 흘러나오는 그 50센트 노래에 피쳐링한 게 스눕 독...;
++++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지만 지하철에서 우는 것보단 자기 차에서 우는 게 훨씬 낫다. 는 말이 나오는데 예전부터 많이 듣던 말이죠. ㅋㅋ 전 그냥 인터넷 드립 같은 건 줄 알았더니 스코틀랜드 명언(?)이라고 인터넷에 퍼져 있네요. 근데 설마 오래된 스코틀랜드 명언에 '자전거에 타고 우는 것보단 벤츠에 앉아 우는 게 낫다' 같은 게 있으려나요(...) 이 대사 나올 때 산드라가 타고 있던 차가 혹시 벤츠는 아닌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ㅋㅋㅋ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재판은 대략 이렇게 진행됩니다. 일단 검사측에서 현장 검증 결과를 통해 '그냥 떨어져선 피가 이렇게 안 튄다. 이건 살인이다' 라며 대략적 시나리오를 얘기해요. 변호인측은 전문가를 불러 '드물지만 확률적으로 이렇게 튈 수도 있다'고 주장한 뒤 '검사측 시나리오대로 폭행이 있었다면 이러저러해야 하는데 피고인 체격과 그 동작의 난이도를 생각할 때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구요. 뭔가 과학수사스런 언쟁은 여기까지이고...
이후부터는 죄다 정황의 해석 배틀입니다. [피고는 남편 글을 표절해서 자기 작품으로 히트시켰다 -> 허락 받고 했으니 표절 아니다 -> 근데 왜 녹취에선 표절이라면서 화내냐 -> 화가 나면 표현이 그렇게 나올 수도 있지!!! 지금 여기에서 표절 개념에 대해 토론이라도 해야 하니?] 라든가. [녹취 들어보니 남편이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자살 아니다!!! -> 남편 처지를 생각해 봐라. 안타깝지만 이건 모든 걸 끝맺어 버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태운 불꽃이라 봐야 한다.] 뭐 이런 식이죠. 이게 어디 답이 나오겠습니까. ㅋㅋㅋ 근데 이렇게 확실한 뭔가가 없으니 검사측이 물량전(...)으로 나오면서 산드라는 정말 전방위로 온 세상에 망신살이 뻗칩니다. 사실 확실히 속 편히 믿어주긴 좀 그런 사람이긴 해요. 외도도 했고, 남편이랑 싸울 때 날리는 폭언들도 그 수위와 스킬 면에서 아주 살벌하기가 그지 없었구요. 거기에 대한 해명도 다 말이 되는 듯 하면서도 좀 궁색한 구석들이 있고. 아마 남편이 그때 죽지 않았어도 결국 아포칼립스 엔딩을 맞을 결혼이었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들죠.
근데 이런 전개를 어린 아들이 다 듣고 있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 아들은 매우 순수하게 '엄마가 아빠를 죽였을 리 없잖아'라는 믿음으로 처음에 혼자서 위증까지 시전했던(의도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려서 그랬을 수도.) 아이였는데. 여기에서 들리는 부모들에 대한 정보들, 그리고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마의 태도와 그 내용 등등을 접하면서 완전히 멘탈이 나가요.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원래 계획에 없던 증언을 신청하고는 며칠 동안 엄마를 집 밖으로 보내 버리고 법원에서 보낸 보호자와 지내며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제가 본문에 적은 그런 이야기구요. 저 대사를 끝낸 후에 아빠가 죽기 얼마 전에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법정에서 들려줍니다.
맹도견 스눕은 언제 갈지 몰라.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엄청 힘든 일을 하고 있잖니. 스눕에겐 수퍼 파워가 있어. 언제나 네 곁에서 널 도와야 하고, 심지어 니가 필요로 하기도 전에 미리 눈치를 채고 도와야 하기도 하고. 그렇게 힘든 일을 하다 보면 일찍 죽을 수도 있지. 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해. 그러다 갑자기 스눕이 떠나도 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잘 살아가야 하고...
그러고서 마지막으로 덧붙이죠. 그 때는 당연히 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빠 자신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라고요.
이때 재밌는 게, 먼저 나왔던 과거 사건 장면의 경우엔 법정에서 부부 싸움 녹취를 틀면서 그 소리에 맞춰 당시 상황이 재현이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의 경우엔 차 속의 아들과 아빠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목소리는 철저히 아들 목소리만 들려요. 일단 녹취와 달리 실제 법정에서 아들의 목소리로 전달이 되니까 당연한 것이기도 하구요. 또 그렇기 때문에 '이게 사실인지 아닌진 아무도 몰라요' 라는 의미도 되죠. ㅋㅋㅋ
어쨌든 이제 마지막입니다. 결국 산드라는 무죄로 풀려나요. (사실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흉기로 죽였을 거라며 흉기 비슷한 것도 못 찾았고 그 외의 아무 구체적 증거도 없었으니... 암튼 산드라는 그동안 자길 참 열심히 도와준 변호사와 로맨스 성사 직전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연출하다 간신히 끊고 집에 돌아가구요. 잠든 아들을 침대에 뉘어 놓고 자기 방으로 가려는데 아들이 깨어나서 몇 마디 대화를 합니다. 보아하니 아들은 마지막에 엄마를 돕긴 했지만 여전히 확신은 하지 못하는 듯 하구요. 산드라는 홀로 자기 방으로 가서 침대에 눕는데... 무심한 듯 시크하게 스눕이 다가와 옆에 누워요. 반가워하며 스눕을 어루만지며 누워 있는 산드라의 모습을 한참 보여주다 엔딩입니다.
2024.07.29 01:15
2024.07.29 01:42
하하 그것도 괜찮은 진상인데요. ㅋㅋ 적어도 남편에겐 그런 짓을 할만한 동기는 충분히 있었으니까요.
재판 동안 애 봐주기 서비스는 참 좋더라구요. 특히 극중에서 그 일 하는 분이 참 성실하고 책임감 있어 보여서 더 그랬구요. (실제론 그 정도는 아니겠... 죠? ㅋㅋㅋ)
영화가 좀 지치긴 하죠. 아무래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냉정한 척 하면서도 이야기를 꽉 붙들고 성실하게 달리는 전개를 보면 참 각본 잘 썼구나... 했습니다. 감독님과 함께 각본 썼다는 남자 친구님이 영화에 출연도 하셨더라구요. 티비 토론 속 패널로 나와 몇 마디 하십니다.
2024.07.29 10:45
재판 기간 동안에 애를 봐 주는 정부 서비스가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고 봤는데, 그 서비스가 시각장애인인 아이까지 돌볼 수 있는 전문가를 포함하는 서비스라는데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아동이 가정에서 학대를 당해도 대신 돌봐주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부럽긴 하더라고요.
2024.07.29 10:54
이 영화를 보고 얼마 안되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봤는데 산드라 휠러의 역량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어와 불어도 하고, 모국어인 독어도 하는건 물론이고 양성애자 현대소설가에서부터 나치 가정주부까지 못하는게 없어요.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선생님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이야기하면서 이 여자가 쓰는 독일어가 아주 천박한 뿌리가 확실히 드러나는 거였다고 하더라고요.
2024.07.29 19:51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그저 막연히 언젠간 봐야 할 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 꼭 봐야겠다. 고 생각이 바뀌었네요. 아마 이 영화보다도 스트레스가 더 강할 영화 같지만요. ㅋㅋ 정말 산드라 휠러 연기 너무 훌륭했어요.
2024.07.29 13:09
제목 보고 설마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랑 이 작품이랑 리뷰 둘을 게시물 하나에 쓰셨나 했습니다. 혹시 다음글 예고? ㅋㅋㅋ
메이저 영화 시상식 각본상 수상작들을 간혹 보면 과연 심사위원 or 투표자들이 저 각본의 어떤 면을 우수하다고 생각해서 줬을까하는 의문이 들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냥 저번 시즌 각본상 거의 다 휩쓴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너무나도 잘 쓰여진 각본이었죠. 연출이나 다른 면들도 훌륭하지만 각본이 우수한 게 제일 티가 날 수 밖에 없다고나 할까요. 법정물인데 강조해주신대로 확실한 물증이 없다보니 검사, 변호사 측이 서로 내러티브를 어떻게든 꼬고 꼬아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몰고가려는 문과적인 대결인데 가끔 어이가 없다가도 너무 흥미로웠고 전반적으로는 주인공 산드라가 겪는 재판이 위주지만 이걸 쭉 지켜보고 듣던 아들에게 중요한 부분의 무게가 실리는 것도 아주 좋은 진행이었다고 봅니다. 마지막에 자기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든 애써보려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글썽거릴 지경이었어요.
산드라 휠러는 '토니 에드만', '인 디 아일' 같은 작품들에서도 이미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줘서 좋아했었는데 유럽권 밖에서는 인지도가 낮았지만 작년에 이 작품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이제 당당히 세계 톱클래스 배우라는 게 알려진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하더군요. 차기작들 보니까 윌렘 데포랑 투톱 주연으로 찍는 영화, 크리스 밀러 & 필 로드 콤비가 만드는 SF 영화에 라이언 고슬링이랑 같이 캐스팅 되는 등 할리우드에서도 러브콜을 많이 받았더군요.
++ 사실 이건 자살도 타살도 아니고 남편이 이 노래를 들으며 너무 과격하게 바이브를 타다가 실수로 떨어져 죽었다라고 드립을 친 리뷰가 레터박스에서 추천 상위권이더군요. ㅋㅋㅋ 이게 가장 논리적인 추론이라는 댓글들 막 달리고
2024.07.29 16:31
2024.07.29 23:16
아... 예고는 아닙니다. ㅋㅋ 원래 미야자키 하야오 스타일을 별로 안 좋아해서 심지어 평가도 애매한 그 작품은 아예 볼 생각이 없네요. 저 사실 줄줄이 명작 반열에 오른 전성기 작품들도 절반 정도 밖에 안 봤어요(...)
각본을 잘 썼다는 게 참 여러가지 의미일 수 있는데 이 영화 각본은 그냥 다방면으로 다 훌륭한 것 같았어요. 이야기의 밀도나 구성이나 아이디어나, 거기에 인물들 감정이랑 드라마까지. 원래는 뭔가 한 쪽 방향으로만 언밸런스하게 잘 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변태 취향(...)인데 이 정도면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구요. ㅋㅋ
ㅋㅋㅋㅋ 그 분석도 일리 있네요. 이 영화를 재밌게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들이 되게 많은가 보더라구요. 영화 제목을 영문으로 검색했더니 나오는 게 온통 다 '사무엘은 대체 왜,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가설들로 가득가득! ㅋㅋ
2024.07.29 16:41
2024.07.29 23:18
기본적으론 남편 의문사(?)에 대한 해부인데 그게 결국 산드라 결혼 생활의 해부로 이어지고... 안 그래도 '결혼 이야기'랑 연결짓는 글들이 많더라구요. ㅋㅋ 말씀해주신 세 편 중에서 '팬텀 스레드'를 아직 안 봤네요. 넷플릭스에서 사라지기 전에 얼른 챙겨 봐둬야겠습니다.
2024.07.29 16:59
2024.07.29 23:34
당연히 웃기는 조크 영상일 줄 알았는데 진지한 해석이라서 놀랐습니다. ㅋㅋ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요약해드리자면 영화 처음에 공이 계단에서 튕겨 내려오는 장면을 두고 '누가 던졌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구요. 다니엘은 나중에 나뭇가지로 던지고 물어오기 놀이 하는 걸 보면 개랑 이런 놀이를 잘 하지 못하는 애라고. ㅋㅋ 게다가 스눕 목욕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제외. 그럼 남는 게 사무엘인데 비록 3층에 있었지만 3층 바닥인지 계단인지에 2층으로 바로 통하는 구멍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거기로 공이 빠져 굴러와서 처음 그 장면의 상황이 나온 것인데. 이게 왜 중요하다고 주장하냐면, 결국 스눕은 그 공을 사무엘에게 갖다 줬을 거래요. 아마도 일하는 사무엘의 발 밑에 두고 그냥 갔을 것이고, 그걸 사무엘이 밟고 균형을 잃고는 창 밖으로 떨어져 죽은 거라고...
그러면서 이 영화를 보면 스눕의 비중이 너무 크기도 하고. 특히 영화의 시작과 끝을 스눕으로 하는 게 의미심장해서 이렇게 해석을 해봤다고 합니다. 뭐... 말은 되네요. 영화 진짜 열심히 여러 번 보신 듯. 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지역 케이블 VOD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았는데, 저희 어머니는 이 영화를 아가사 크리스티 미스테리처럼 받아 들이셨고, 결론적으론 남편이 간접적인 복수를 위해서 (고생 좀 해보라고) 트릭을 쓴 자살을 한 거라고 해석하시더군요. ㅎㅎㅎ 좋은 영화긴 했는데 재판 기간 동안에 애를 봐주는 정부 서비스가 있다는 자체가 한국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여서… 하여튼 이것저것 생각해볼 여지는 많은 데, 보는 과정이 꽤 지치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