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8 16:07
1910년 상해에 정무체조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상해에 체재중이던 권사 곽원갑의 퍼포먼스에 감명을 받은 상해 유지들이 곽원갑의 무술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고, 곽원갑이 설립자인 걸로 되어 있지만 당시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유명인 곽원갑의 명성에 업히기 위해 이름을 내걸었다는 이야기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정무체육회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정무체조학교는 중국 최초의 일반인 대상 무술교육기관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문파를 중심으로 이너서클로 전수되고 서로간의 교류도 별로 없었던(무림이란건 무협지에나 나오는 허구이고) 무술을 여러 문파들을 설득해가며 채집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현재 중국문화의 하나인 '중국무술'의 개념이 만들어진 것도 정무체육회의 공이라고 합니다.
곽원갑은 생전에 이런저런 일화가 많이 전해지지만 그게 역사기록이라기 보단 전부 설화에 가까운 것들이고 실체는 상당히 애매한 인물입니다. 곽원갑의 일화들이 현재 검증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조작되거나 허구일거라는 주장도 있죠. 하지만 정무체육회의 설립에 관련이 된 인물인만큼 진짜로 절정고수였냐 따위는 어차피 중요하지 않은, 중국무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라 해도 문제는 없을겁니다.(적어도 황비홍같은 진짜 뜬구름잡는 인물 보단 좀더 믿을만 하겠죠)
정무체조학교의 초대 사범이던 곽원갑은 학교가 설립되고 몇달 지나지 않아 유명을 달리하게 됩니다. 지병이 악화되어서라고 하는데, 겨우 40대 초반의 나이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곽원갑이 일본인 의사에게 약을 받아 먹고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에는 곽원갑에게 패한 일본인들이 독살을 사주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합니다. 물론 그역시도 검증 불가능한 소문일 뿐이지만 당시 중국 사람들에게는 이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 독살 소문은 20세기 초 대륙을 휩쓸었던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중의 한사람) 평강불초생이 곽원갑의 생을 무협소설로 재구성해 발표할때 채택하면서 중국의 대중들에게는 걍 사실인 걸로 박제가 됩니다. 불초생은 실제 무술인들과 교류가 있었고, 당시의 무술인들에게 전해들은 걸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하거든요. 물론, 무협지라는 형태로 나온 이야기니 어디까지 믿어야할지는 애매하지만... (여담으로 무협영화가 장르로 정착하게 된 것이 불초생의 무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히트하면서부터였습니다)
지금에 와선 이 이야기가 중국침략을 꾀하던 일본인들이 계획적으로 벌인 것이라는 쪽으로까지 살이 붙어 대표적인 항일 이야기의 하나가 되어있는데, 곽원갑이 사망한게 1910년, 일본의 중국 침략과 엮기엔 시기가 좀 이르지않은가 싶기도 한데... 이게 항일과 연관이 되게 된 건 1972년에 나온 영화 [정무문]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60년대 말에는 조어도인지 센가쿠인지 하는 곳 영유권 문제로 진영을 막론하고 중국인 커뮤니티 전체에 반일감정이 강했다고 합니다. 이시기에 영화감독이며 각본가인 나유가 일본인에게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있는 중국인 영웅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래서 반일 색채가 강하게 들어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 정무체조학교가 무림문파인 정무문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정무체육회가 정무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수는 있겠지만 무림문파와는 좀 거리가 있는 곳이죠. 그러니까 영화는 곽원갑의 이야기에서 동기만 빌려온 무협지라고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곽원갑의 제자 진진이 사부의 복수를 한다는 것인데, 진진은 나유가 창작한 캐릭터이고 실제 학교 설립에 관여했던 인물인 진공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물론 진공철은 일본인 도장에 쳐들어가 사람을 뚜드려패고 그러진 않았습니다. 성이 같다는 것 말고 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곽원갑이고 진공철이고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사람들 기억속에서 희미해진 인물들이라, 1972년 이후로 나온 정무문 혹은 곽원갑 관련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이 다, 나유의 [정무문]을 재각색한 이차창작물들입니다. 이유는 뭐 당연히 이소룡 때문이죠. 이소룡이 아니었다면 곽원갑과 관련된 일화가 이렇게 계속 재생산될 일도 아마 없었을 테니까...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중국인들의 사부에 대한 개념입니다. 청출어람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부는 제자보다 뛰어난 존재, 뭔가 초월적인 인물이라는 인식이 있고, 어떤 사람이 유명해지면 그 사람의 사부도 덩달아 유명해지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황비홍이 유명해진 건 제자인 임세영이 무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이고. 섭문(또는 엽문)이 유명해진 건 한때 이소룡의 사부였다는 이유 때문이죠.
제자가 이정도로 대단한데 그 스승은 얼마나 대단했겠느냐는 그런거...
곽원갑이 20세기 말에 다시 유명해진 것도 이 비슷한 이유인데, 특이한 건 곽원갑 역시도 이소룡의 사부이기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겁니다. 진짜 사부도 아닌 영화속 캐릭터의 사부였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세월이 지나 곽원갑의 이소룡 사부 약발이 다 떨어질 때쯤 되자 이소룡의 진짜 사부 섭문이 캐릭터화 되어서 영화속 영웅으로 뜨게되더란 거.... 거기다 섭문은 캐릭터화 되면서 항일영웅이란 이미지가 붙었는데 이것도 곽원갑의 항일영웅 이미지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금보의 할머니가 정무체육회 출신이라고 합니다. '중국제일여협'이라는 별명이 있는, 상해에서 무협영화배우로 날리던 분이었죠.
2024.07.29 01:50
2024.07.29 06:13
정무문 보고 검색해보니 '정무체육회'라고 나오던데 원래 이름은 또 그것도 아니고 체조학교였군요. ㅋㅋㅋ 영화로 만들면서 원래 이름을 쓰지 못했던 그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가기도 하네요.
곽원갑에 대해 적어주신 걸 읽어보니 얼마 전에 본 일본 액션 영화 때문에 찾아봤던 사카모토 료마 생각이 나네요. 이 양반은 곽원갑보단 그래도 입증 가능한 공적이 있긴 한데 그래도 소설가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버프가 잔뜩 들어간 채로 대중들에게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면에선 비슷하네요. 고작 100년 전이지만 요즘 세상이랑은 참 달랐던 것 같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렇게 뜨자마자 학폭 의혹, 안전벨트 미착용 영상 업로드, 인성 논란 같은 게 줄줄이 이어질 텐데 말입니다. 입소문 영웅 되기도 힘든 세상이에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