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7 19:11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는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보아온 치정 범죄의 전말을 담은 소설입니다.
주인공 직업은 집배원이 아니고 집배원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책이 나올 무렵 그냥 제목을 정하지 못해서 찾다가 정해진 거라고 하네요. 결과적으로 다수의 사람들 머릿속에 이만큼 잘 각인된 제목도 드물지 않나 싶네요. 실제로 성공한, 많이 팔린 책이 되었습니다. 미국 출판계 최초의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누가 나에게 훌륭한 소설이라고 말했을까 기억해내려고 했는데 못 찾았고 책에 비해 영화가 훨씬 낫다고 한 사람은 찾았네요. 또 까뮈가 [이방인] 쓸 때 이 책에서 영감을 받은 바가 있다는 말을 했나 본데 출판사에서 이 말을 책 소개에 써놨습니다. 다 읽고 나자 까뮈의 말이 어떤 맥락인지 알 거 같았어요. 읽기 전에 이런 정보와 저런 정보가 섞여서 제가 멋대로 훌륭한 책이라고 입력한 거 같습니다.
읽고 나서 작품이 훌륭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개성면에서 장점은 확실히 보였어요. 제 3의 개입자 없이 시종 주인공이 화자인데, 진행되고 있는 일을 조미료나 기름기 없이 미화하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자가 소소한 범죄 이력이 많은 부랑자이고 별 생각없이 끌리는대로 사는 사람이라 계획도 이유도 의도 같은 것도 (설명할 것이 없으니)설명없이, 말과 행동 위주로만 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읽다 보면 독자조차도 뭔가 황량하고 조바심나는 이들의 현실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고 이입의 여지도 없는 인물의 상황 속에, 전혀 가 있고 싶지 않은 삭막한 주유소식당에 있는 느낌이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주인공이 속으로 하는 생각은 주로 남을 어떻게 등칠까라든가 그냥 단순한 욕구의 발로가 대부분이어서 소설에서 묘사 부분이 거의 없네요. 인물의 내면 묘사, 심리 묘사가 없어서 범죄를 다룬 르포르타주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소설이 나오기 몇 해 전에 실제로 유사한 사건이 있었고 꽤 오래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가 케인은 이 작품으로 '타블로이드 살인 사건의 시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네요.
1934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이런 범죄와 이런 관계를 다룬 유사한 이야기는 많겠으나 에밀 졸라의 1867년에 나온 [테레즈 라캥]이 떠올랐습니다. [테레즈 라캥]은 서술자가 따로 있었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이 화자임에도 이입의 여지 없이 먼 거리감을 갖게 하는 방식 역시 졸라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은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장면이 영화로 번역되어 떠오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복잡한 내면 같은 거 없고 시공을 넘어 통하는 욕구만이 존재하고 말과 행동으로 진행되며,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사건은 너무나 시각적입니다.
이 소설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면 아마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읽었으니 돌이킬 수 없죠.ㅎㅎ [테제즈 라캥]도 좋아하는 소설이 아니거든요.
좋은 작품을 읽고 싶습니다. 이때 좋은 작품이란 세계명작이나 고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주관적인 기준입니다. 제가 좋아할 책을 뜻합니다. 명작이나 고전 중에서도 그런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영화는 딱히 그렇지 않은데 책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책 읽기가 수월하지 않음을 나날이 느끼거든요. 몸과 정신의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임을 느낍니다. 문제는 남들이 좋다고 해도 실제로 읽지 않으면 내가 좋다고 느낄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엔 읽지 않은 책이 너어무우나 많고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애플티비에서 '무죄추정'을 봤습니다. 매회 40분~50분 사이이고 8회 완결입니다. 검사인 제이크 질렌할이 범인으로 찍혀 재판받는 과정에 과연 진범은 제이크 질렌할인가, 아니라면 누구인가가 전체 8회를 이끄는 궁금증인데 더 중요한 것은 잘 살렸는가와 별개로,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씨네21의 ott리뷰에서 보게 되어 찾아 봤네요. 반대 진영 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인 듯? 아니 인물들이 다 좀 평평하고 매력이 적은 듯? 소설 원작이 있는 작품인데도 그렇게 설득력이 느껴지진 않았어요. 최종회의 반전도 힌트도 없었고 좀 뜬금없었습니다. 시카고 경치나 여기저기 많이 비춰주지,라는 생각을 했네요. 시리즈가 제가 예상한 성격과 다르기도 하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랬습니다. 피해자 검사가 낯이 익어서 찾아보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주인공이었어요. 이 시리즈를 한꺼번에 몰아봤다면 중간에 포기할 저였을 텐데, 수요일마다 한 회가 올라와서 지난 주에 끝냈습니다.
넷플릭스에 '바튼 아카데미' 올라왔네요. 봐야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2024.07.27 23:35
2024.07.28 13:19
없어져 봐야 생각하게 되고 알게 되나 봐요... 눈 앞에 있는 거 가진 거는 생각을 안 하는 구조.ㅎㅎ
넷플릭스는 정말 그저그런 것들 우르르 내놓다가 양념으로 하나 씩 좋은 거 내놓는 거 같아요.
2024.07.29 07:35
저는 항상 자신이 좋아할 수 있고 또 좋은 인상을 받는 작품은 결국 인연이 되어야 만날 수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어떤 장르에 천착하는 것도 결국 한두편의 그런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thoma님에게도 그런 인연이 다가왔으면 좋겠네요.
2024.07.29 11:35
네, 좋아하는 작품도 그렇고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만난다는 건 큰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사 그렇지만 그런 운은 거저 오지 않고 이것저것 접하고 시도하는 노력이 있어야 오고 말이죠. 과거에 편식한 것 같아서 아쉬워요. 두루 시도해 볼 걸 생각이 들어서요. 그랬으면 좋아하는 것의 목록들이 더 풍요로왔지 않을까 해서요. 뭐 지금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닫지 않으면! ㅎ감사합니다.
그렇죠. 세상엔 겪어보지 않은 재미나고 감동적인 게 너무 많고 인생은 짧아요. 젊어서 맨날 듣던 얘기지만 늙어서 직접 피부로 느끼는 건 전혀 다르네요... ㅠㅜ
제이크 질렌할이 OTT에 은근 자주 보이는데 타율이 그리 좋진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넷플릭스는 또 알찬 아이템을 들여 놓았군요. 이래서 맨날 볼 거 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끊지를 못하는... ㅋㅋ thoma님도 주말 건강히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