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바다

2010.12.22 22:37

난데없이낙타를 조회 수:1815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 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부픈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이성복, 바다

 

 

 

 

 

 

사소한 일에도 울음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버리던 감수성 예민하던 스무살 시절에, 시는 무엇보다 큰 고통이였고 괴로움이였습니다. 일주일에 4번이나 시수업을 들으면서도, 내 다시는 시 수업을 수강하지도 시집을 사기는 커녕, 시를 읽지도 않겠다고 다짐하곤 하였죠.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시를 철저히 잊고 살았습니다. 이성복 시인 시의 한구절처럼 '내 괴로움에는 상처가 없' 다는 것처럼, 내 인생에도 상처가 없으므로 상처없는 가벼운 괴로움으로 살고저, 괴로움으로 무장된 시에서 벗어나 가볍게 살고 싶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질거라고, 책장 안쪽 구석에 쌓아두고 외면하고 살았는데도, 정처없이 서러운 날이면 밤을 지새우며 서럽게 읽었던 시들이 어지럽게 떠다니곤 합니다. 서럽게, 서러움이 달려오고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시는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상처없는 가벼운 괴로움에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60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848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8725
126638 고질라 마이너스 원 (2023) new catgotmy 2024.07.06 36
126637 독일 ㅡ 스페인 연장전 돌입 [16] new daviddain 2024.07.06 74
126636 [왓챠바낭] 막장 SNS 풍자극, '구독좋아요알림설정' 잡담입니다 [4] update 로이배티 2024.07.06 99
126635 [KBS1 독립영화관] 함진아비, 정동, 유아용 욕조 [1] underground 2024.07.05 299
126634 [디플] 미국식 주말극 ‘디스 이즈 어스’ [1] 쏘맥 2024.07.05 118
126633 관람예절인가 시체관람인가(예술영화관객의 딜레마) [1] 상수 2024.07.05 172
126632 프레임드 #847 [2] Lunagazer 2024.07.05 34
126631 잘생긴 외국인 야구 선수 daviddain 2024.07.05 80
126630 [일상뻘짓]트러플 넌 나의 옥수수감자를 망쳤다 [12] 쏘맥 2024.07.05 147
126629 존 오브 인터레스트 감상시에는 팝콘을 먹어선 안돼! 논란 [2] ND 2024.07.05 295
126628 "손웅정, 아동학대 혐의 명확해 기소 불가피…합의 여부 관건" [디케의 눈물 255]/손아카데미 경기영상 보니 욕설·고성…"답답해 거친 표현" 해명 [3] daviddain 2024.07.05 139
126627 앤디 머레이 은퇴/오늘 저녁 스포츠 경기/아르헨티나 코파 4강 진출 [7] update daviddain 2024.07.05 60
126626 [왓챠바낭] 이상일 감독의 '분노' 잡담 글... 수정 시도입니다. ㅋㅋ [4] 로이배티 2024.07.05 187
126625 [왓챠바낭] 이상일 감독의 호화 캐스팅 화제작(?)이었던 '분노'를 봤습니다 [6] 로이배티 2024.07.04 322
126624 프레임드 #846 [4] Lunagazer 2024.07.04 47
126623 전완근 키우기 catgotmy 2024.07.04 106
126622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2023) [2] catgotmy 2024.07.04 188
126621 이번 시즌 kbo 시네마는 롯데가 담당 daviddain 2024.07.04 116
126620 바이든 대선출마 어떻게 될는지.. [5] theforce 2024.07.04 449
126619 [핵바낭] 그냥 일상 잡담입니다 [12] 로이배티 2024.07.04 39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