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산책하는 사람들

2021.03.14 22:50

Sonny 조회 수:706

나무 위로 눈길이 가는 계절이 왔습니다. 밤공기는 아직 차지만 사람들이 걸친 겉옷은 더이상 빵빵하진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손에는 줄이 길게 늘어져있고 그 끝에는 작은 친구들이 보입니다. 눈은 동그랗고 입은 웃고만 있는 이들에게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족보행을 하는 이 길다란 친구들은 왜 이렇게 걷는 데에 게으른지 늘 궁금해하겠죠. 제가 이들의 언어를 알았다면 작은 비밀을 누설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을 때만 다리를 사용해서 몸을 움직이지 사실은 늘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동물이란다... 이들은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나랑 같이 사는 얘가 사실은 고양이라고?


자신의 키보다 아주 작은 친구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얼떨결에 거인이 되버린 입장에서 다른 무관심한 거인들 사이를 친구가 안전하게 헤쳐나가게 지켜주는 별도의 책임감이 있는 것일까요. 그렇게 산책을 성공했을 때 느끼는 안전함과 평화로움은 같은 무자비한 인간 거인과 산책했을 때와는 또 다를 것 같습니다. 단지 내려다보기보다 무릎을 숙이고 몸을 쪼그려서 눈을 맞대야 하는 그 번거로운 다정함이 매일 반복되는 관계도 상상해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눈짓과 목소리 톤으로 의미는 전달될 거라 믿는, 이심전심의 기적을 매번 실천해야하는 고충도 있겠지요. 물론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인 저에게는 스쳐지나가는 풍경이기에 이렇게 혼자 흐뭇해합니다. 친구지만 별 수 없이 "주인"으로서, 우정을 위해 육아를 해야하는 그 피로를 더 토로하고 싶을지도요.


존재들이 함께 있을 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나랑 비슷하다, 나랑 닮았다며 동질감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저는 요새들어 다름을 더 많이 생각하고, 좁힐 수 없는 거리를 생각합니다. 고독한 순간들이 연속되어 이루어진 우리가 평행선을 그리기만 하다가도 좁혀지고 교차하는 게 더 신기한 일이죠. 그래서 개와 인간의 우정을 상상하게 됩니다. 말도 안통하고 시야도 다르고 맡는 냄새도 다른 그 종의 차이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별다른 장애물이 되지 않게 됩니다. 그 신비를 체험하기에는 저는 저 혼자의 몸도 건사하기 어려워서 한없이 미루고 있지만, 그래서 더 응원이라도 하고 싶은 거죠. 인간뿐이지 않은 세계를 친구들과 함께 채워가는 분들 때문에 잠깐이지만 괜히 훈훈해지고 그렇습니다. 봄이 봄인 이유는 꼭 기온이 올라가서 그런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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