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9 12:00
금요일 밤에 노예 12년을 봤습니다.
잘 만들었고, 좋았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보는 내내 지금 제 직장이랄까 생활, 그리고 제 위-아래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우리가 그냥 피해가는 일상의 작은 부조리들.. 영화 속의 노섭이 못본 듯 지나치는 그런 것들, 우리 집의 입주 아주머니 등.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못본 척 지나가는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좀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좋은 영화이지만 제 best 중 하나는 아닌 듯.
저는 모호함의 여지가 많이 남기는, 그래서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시네마천국, 흐르는 강물처럼, 와호장룡, 조디악, 엑소시스트 등등-을 떠올리면 또 꼭 그렇지는 않네요 ^^:;)
극 중의 주요한 대결 구도랄까라고 할 수 있는 노섭과 그 악당 주인의 관계는 옳고 그름이 명확하달까요 (최소한 그 주인이 나쁜 사람인 것만은..) 그런 것들이, 할리우드 식인 것이 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그런데 보다가 궁금한 것들.
1. 노섭이 목 매단 상태로 한참 있을 때 왜 주변 사람들 (노예들, 그리고 그 주인의 부인)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꼭 도와주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을 듯 보였는데요..
2. 그리고 아무리 당시 북부가 흑-백의 차별이 덜했다지만, 그리고 노섭이 상류층 사람이었지만 현재와 비해 차이가 없을 그 정도로 평등한 대접을 (최소한 보이기에는) 받았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지 않네요..
3. 그 포드라는 사람이 선, 악으로 판단하기에 부적절한 것은 맞다고 생각되지만 듀나님의 리뷰를 읽다보니 그 (내 눈에는 명백한 악당으로 보이는) 주인에 대한 판단 역시 그런 것은 선뜻 동의가지 않네요..
4.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서양이라서 그런지, 노예라는 사람들이 주인에게 비교적 (얘기를 할 때는) 당당하게 하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쭈뼜쭈뼛해야 맞을 것 같고, 그러지 않았다가는
"이 자식 이거 태도가 이게 뭐야"하면서 더 모진 핍박을 받았을 텐데요.. ^^;;
2014.03.09 12:18
2014.03.09 12:36
1. 그런데, 노섭은 주인에게는 "돈"이기 때문에 죽으면 안 되지 않나요? 제가 보기에는 (힘든 것을 넘어서) 충분히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그 부인은 당연하고, 나머지 노예들도 죽지는 않게 해야
나중에 덜 혼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드네요.
2. 글쎄요.. 물론 "악당"이라는 것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시대나 장소를 넘어서 "악당"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대단히 자의적이겠으나, 수동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context를 뛰어넘어서 "악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예를 들어, 수십 명을 연쇄 살인한 사람들 모두 그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context, 환경을 고려한다면 꼭 "악한"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저는 그런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
2014.03.09 12:50
1.물론 노섭은 당시 주인에게 '소유물'이었습니다. 그 상황 또한 충분히 '손해'를 볼 수 있을 상황이었고요. 근데 그 상황은 노섭이 주인이 아닌 다른 지배계급 구성원에게 반항하다, 그 형벌로써 일어난 상황이었죠. 그 상황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소유주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상황이었고요. 그러므로 그 상황을 단순히 주인이 소유물의 '망실'을 의도한 상황으로 읽을 순 없지요. 또한 나머지 노예들이 도와주지 않는 건, 첫 덧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당시 상황 자체가 노예에게 어떤 주체적인 의지도 행동화 할 수 없게 길들여진 상황이었으므로 어느정도 (잔인하지만)이해가 되는 상황이고요.
2. 먼저 '악'이란 개념 자체가 순전히 인간적인 정의와 기준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해야겠죠. 그리고 영화 속에서 노예들이 당하는 폭력들은 (놀랍고 어이없지만) 당시 별로 악으로 정의되지 않는 시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수십명을 살해하는 행동은 어느 시대건 보편적인 악에 해당했을 겁니다. (전쟁 같은 상황을 제외하고요) 나머지는 위의 덧글에서 말한 배경들이 포함되겠고요.
1. 노섭의 그 상황에서 카메라는 아주 냉정하고 침착하며, 사운드는 지극히 일상적이죠. 이건 다시 말해 그 당시 그런 상황이 아주 익숙하고 평범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거라 생각해요. 그 부인은 왜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그 부인 또한 정확히 노예를 사물로 대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고, 노예들 또한 노예로써 사는 것에 길들여진 상황이었으니까요.
3.저도 듀나님의 리뷰를 방금 읽었는데요. 사실 세상에 명백한, 주체적이고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 그런 악당이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영화 속 마이클 파스밴더가 연기한 '악당' 또한 당시의 경제적/문화적 배경,그리고 그의 부인과 세상이 강요하는 이른바 '남성성'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죠. 그 속에서 그의 행동은 단지 현상일 뿐이고, 그 모습 자체는 완벽한 악당으로 보이지만, 현상 이전의 구조와 원인엔 그를 단순히 '악당'으로만 결론내릴 수 없는 여러 요소가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