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앤드류 플레밍 Andrew Fleming

주연
로빈 튜니....사라 베일리
Robin Tunney....Sarah Bailey
페어루자 보크....낸시 다운즈
Fairuza Balk....Nancy Downs
네브 캠벨....보니
Neve Campbell....Bonnie
레이첼 트루....로셸
Rachel True....Rochelle
스킷 울리치....크리스
Skeet Ulrich....Chris
크리스틴 테일러....로라 리지
Christine Taylor....Laura Lizzie
클리프 드 영....베일리 씨
Cliff De Young....Mr. Bailey

1.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사온 사라는 '이스트윅의 마녀들(적당히 얌전하게 번역한다면요 ^^;)'로 알려진 삼인방 보니, 로셸, 낸시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진짜 마녀들로, 4명의 짝을 채워줄 네 번째 마녀를 찾고 있던 중이었어요. 사라의 가입으로 힘을 얻게 된 우리의 틴에이저 마녀들은 마법으로 골치거리들을 해치우고 신이 나지만 절도를 벗어난 그들의 마법은 살인으로 이어지고 사라는 이 모든 일들을 막기 위해 낸시와 싸우게 됩니다...

2.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빈정거린 적 있어요. 데이빗 커퍼필드를 엿먹일 능력이 있으면서도 마법으로 겨우 그따위 일이나 하고 있으니 상상력이 한참 부족한 애들이라고요.

하지만 이버트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기억력이 약해진 것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안젤라 체이스가 언젠가 말했지만 '학교는 마음의 전쟁터입니다.' 어른들에게 하찮게 보이는 작은 알력들도 정작 많은 아이들에게는 총탄과도 같은 것들이지요. 그 포화 속에서 버티고 살아나가야 하는 애들에게 "데이빗 커퍼필드를 엿먹이고 베가스에서 떼돈을 벌자!" 따위의 생각이 들어 오기나 하겠어요? 저희라도 낸시 일당처럼 할 겁니다.

3.

네 여주인공들은 모두 전쟁터의 승자들은 아닙니다. 사라는 그 고약한 나이를 뚫고 오면서 자살 시도까지 한 경험이 있고 보니는 등의 흉터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 있으며 로셸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인 백인 소녀에게 놀림을 당합니다. 그리고 백인 쓰레기의 꼼짝없는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 살고 있는 낸시의 상황은 참으로 가관이고요(그런데도 꽤 돈이 나갈 것 같은 카톨릭 학교에 꾸준히 다니고 있으니 보기보다는 공부를 잘하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그들은 마법을 통해 그들의 소망을 성취합니다. 보니는 등의 상처를 없애고 로셸은 놀려대던 아이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꺾어 버리고 사라는 자기를 놀림감으로 삼았던 남학생을 사랑의 포로로 만듭니다. 그리고 낸시가 자신의 몸 속에 '마논'을 받아들이면서 이들의 상승은 절정에 달합니다. 사실 관객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이런 장면들입니다.

4.

그러나 그들이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힘을 무제한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고 또 장르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에 빠진 각본 때문에 이야기는 틀어져 버립니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주인공인 네 명의 캐릭터들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공동 각본가이고 원안을 쓴 피터 필라디는 전에도 초자연적인 상황에 말려든 집단을 다룬 영화 [유혹의 선]의 각본을 쓴 적이 있는 사람인데 [크래프트]에서는 아무래도 조금 나태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혹의 선]은 조금 산만해지기는 했어도 각 캐릭터들이 모두 필요한 인물들이었고 좋은 앙상블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크래프트]에서는 [유혹의 선]보다 훨씬 적은 수인 4명을 다루면서도 절반이나 되는 캐릭터들을 낭비해 버립니다.

생각해보세요. 로셸만 해도 저주 때문에 머리가 벗겨진 로라를 보고 거의 동정심을 느낄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었습니다. 마땅히 이 캐릭터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더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낸시가 길을 닦자, 로셸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낸시의 뒤를 따르지요. 여기서부터 보니와 로셸의 캐릭터는 죽어 버린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이 사태는 플레밍과 필라디의 전혀 쓸모없는 의무감 때문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법이건 과학이건) 힘은 막 써서는 안된다'는 건전한 교훈을 진부하게 설교하느라 정작 캐릭터의 발전과 행동의 당위성을 잃어버린 셈이지요.

하지만 왜 그래야 했을까요? 영화는 네 명의 소외된 소녀들이 마법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여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도입부는 뒤의 '교훈'과는 전혀 안 어울린단 말입니다.

결국 영화는 낸시와 사라의 결투로 발전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크래프트]는 MTV의 '가장 훌륭한 격투상'을 수상했습니다.) 하긴 어떻게든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야 했으니 이런 상황을 설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영화는 사라와 낸시의 결투를 꼭 선악대결처럼 보이게 묘사한답니다. 그네들 자신도 그게 선악의 대립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에요. 사라가 낸시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건 자제력이 있다는 것 뿐이쟎아요. 하지만 이런 흑백 분리로 인해 낸시는 그냥 평범한 악역이 되고 사라는 평범한 착한 주인공이 되며 보니와 로셸은 생각없는 떨거지가 됩니다. 흠, 그렇다면 관객들은 누구한테 감정 이입을 시켜야 하는 거죠? 사라? 하지만 사라는 충분히 주인공이 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영화는 앙상블 영화로 시작했으니까요.

[크래프트]의 문제점은 앙상블 영화여야 했던 영화가 선악 대결로 끝나버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건, 영화는 네 명의 캐릭터 모두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처리해야 했고 네 친구의 관계는 보다 섬세하게 묘사되어야 했으며 갈등은 단순한 대결로 해결하는 것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낸시-크리스-사라의 삼각 관계도 너무 뻔한 발상이었고요. 하지만 필라디와 플레밍은 잘 맞지도 않는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장르를 따르는 게 이렇게 위험할 때도 있는 겁니다. 자칫하면 각본가의 생각 자체를 뽑아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5.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페어루자 보크입니다. 보크 특유의 무시무시한 외모와 연기 때문에 낸시는 영화 속에서 가장 강력하고 믿음직한 캐릭터로 부상합니다. 네브 캠벨(이 아가씨는 왜 Party of Five의 멀쩡한 역을 떠나 영화판에 들어서기만 하면 맨날 오컬트나 호러만 찍는 걸까요?)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도 잘해냅니다. 몇몇 컴퓨터 그래픽이 노골적이긴 하지만 특수효과도 그럭저럭 적절한 편입니다. 초반부에 네 명의 주인공들의 관계를 묘사하는 몇몇 장면들은 좋습니다. 보다 진지한 각본이 따라주었다면 훨씬 흥미진진할 수 있는 영화였어요.

이 영화에 나오는 의식들은 대부분 진짜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그 방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뭐라고 말할 수 없군요. 참, 플레밍에 따르면 영화를 찍는 도중 몇몇 기묘한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네 주인공이 의식을 거행한 뒤에 나비 떼가 날아드는 장면이 있지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나비 를 만들어 처리하려고 그 장면을 그냥 찍고 있는데, 갑자기 수많은 나비 떼들이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어 배우들에게 날아들었다고 하더군요.

어제 텅 빈 아세아 극장에서 잽싸게 보고 온 영화입니다. 일주일만 하다가 간판내린 뒤, '아세아 극장 개봉작'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곧장 비디오로 나올 영화인 모양입니다. (97/09/10)

D&P

기타등등

클리프 드 영이나 어빙 윙클러와 같은 '청춘 스타들'이 늙어서 말썽쟁이 틴에이저의 부모나 교장 선생 역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괜히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들아, 평생 안 늙을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