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톰 칼린 Tom Kalin

주연
줄리안 무어....바바라 베이클랜드
Julianne Moore....Barbara Baekeland
에디 레드메인....안토니 베이클랜드
Eddie Redmayne....Antony Baekeland
스티븐 딜레인....브룩스 베이클랜드
Stephen Dillane....Brooks Baekeland
우낙스 우갈데....블랙 잭 마르티네스
Unax Ugalde....Black Jake Martínez
휴 댄시....샘
Hugh Dancy....Sam
엘레나 아나야....블랑카
Elena Anaya....Blanca

바바라와 토니

베이클랜드라는 이름이 낯익다면 여러분은 과학기술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거나 범죄사건에 대한 취미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전자라면 여러분이 기억하는 사람은 최초의 플라스틱으로 알려진 베이클라이트를 발명한 리오 베이클랜드입니다. 후자라면 1972년에 벌어진 센세이셔널한 범죄 사건의 주인공들을 기억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 사건의 두 주인공들 중 한 명인 안토니 베이클랜드는 리오 베이클랜드의 증손자입니다.

베이클랜드 가문의 이야기는 서글픈 타락의 역사입니다. 리오 베이클랜드는 자수성가한 인물이었습니다. 훌륭한 과학자였고 사업가였으며 순전히 자신의 힘과 재능으로 엄청난 부를 쌓아올렸죠. 하지만 그 이후 베이클랜드 가문은 천천히 타락해갔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후손들에겐 돈과 시간은 엄청나게 많았고 할 일은 없었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그게 가장 큰 문제점이에요.

리오의 손자 브룩스 베이클랜드가 배우 지망생이었던 모델 바바라 데일리와 결혼해 안토니라는 아들을 낳으면서 그 비극은 보다 드라마틱해집니다. 영화에 따르면 브룩스는 그럭저럭 자기 앞가림을 하는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를 통해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길 갈망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으며 심각한 성격 문제가 있었던 바바라와 역시 그만큼이나 정신적 문제가 심각했던 아들 안토니는 사정이 달랐죠.

이들의 이야기는 호사스럽고 우울합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상류사회'의 멤버처럼 행세하는 것은 취향에 맞는 사람들에겐 재미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브레이크와 안전장치 역할을 할 현실 감각이 없다면 일은 커지죠. 그리고 바바라와 안토니는 최악의 짝입니다. 바바라는 폭압적이고 불안하며 독단적인 인물입니다. 안토니는 반대로 정서불안에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동성애자죠. 이들에 진력이 난 브룩스가 가족을 떠난 뒤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고 결국 서로에 자신을 감금하게 됩니다. 참으로 우울한 구경거리인 것입니다. 그 결과 폭발하듯 발생한 범죄 사건은 분명 [졸도]의 감독 톰 칼린이 군침 흘리며 노리다가 영화화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린 톰 칼린의 영화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 걸까요? 그걸 전 모르겠단 말입니다. 이 영화에는 줄리안 무어의 훌륭한 연기가 있습니다. 무어의 카리스마에 밀리긴 하지만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요. 이 콩가루 집안 멤버들의 이야기를 서서히 펼쳐가는 톰 칼린의 스토리 텔링도 괜찮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면 그냥 허합니다. 베이클랜드 가문의 사람들은 이 모든 호사스러움과 센세이셔널리즘에도 불구하고 그냥 공허합니다. 이 영화의 미스터리와 로맨스 밑에는 아무런 실체가 없어요. 이들의 행동은 종종 이해하기 어렵고 사회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는 건 오로지 표면뿐이에요.

이 얄팍함을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훌륭한 영화들이 얄팍하지요. [시민 케인]이 우리에게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걸작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세비지 그레이스]엔 우리를 만족시켜줄 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부지런한 관객들은 영화 속에 흩어져 있는 여러 단서들을 통해 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 시도하겠지만 그들도 대부분은 실패할 겁니다. 특히 범죄가 폭발하는 마지막 장면은요. 그 장면에서 범행 동기를 분석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냥 그런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09/06/24)

DJUNA

기타등등

안토니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은 제가 본 영화들에 꽤 많이 출연한 모양인데 왜 전 얼굴을 기억할 수 없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