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리처드 블랙번 Richard Blackburn

주연
셰릴 스미스....라일라 리
Cheryl Smith....Lila Lee
레슬리 길브....르모라
Lesley Gilb....Lemora
윌리엄 위튼....앨빈 리
William Whitton....Alvin Lee
스티브 존슨.....매표원
Steve Johnson....The Ticket Seller
하이 파이크....버스 운전사
Hy Pyke....The Bus Driver
맥신 밸런타인....노파
Maxine Ballantyne....The Old Woman
파커 웨스트....젊은 남자
Parker West....The Young Man
리처드 블랙번....목사
Richard Blackburn....The Reverend

라일라

[르모라]의 주인공 라일라 리는 악명높은 갱인 앨빈 리의 딸입니다.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쏴죽이고 잠적한 아버지 대신 엄격한 목사의 보호 밑에서 성가대의 가수로 자라고 있지요. 어느 날 이 13살짜리 소녀에게 죽어가는 아버지를 찾아오라는 편지가 날아오자, 라일라는 목사 몰래 가출해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은 르모라라는 수수께끼의 여인이 지배하고 있는 이상한 마을이었지요.

[르모라]는 70년대에 만들어진 가장 불운한 컬트 클래식 중 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UCLA를 막 졸업한 풋내기 감독 리처드 블랙번이 푼돈을 모아 만든 이 극저예산 호러 영화는 그 모호하고 나른한 내용 때문에 당시 배급업자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감독을 파산 직전으로 몰아가다 결국 그의 손을 떠나 심야 텔레비전 시간대를 떠돌던 영화는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호러 장르 팬들의 지지를 얻어갔고 결국 사라진 줄 알았던 네거티브가 재발견되어 얼마 전에 DVD가 나왔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때 잊혀졌던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어요. 컬트 팬들 사이에서 [르모라]가 이처럼 인기있을 수 있었던 건 이 영화가 그동안 구하기 어려운 작품이어서이기도 했으니까요.

[르모라]는 기본적으로 음탕한 영화입니다. 잠옷차림의 예쁜 13살 소녀를 뱀파이어들이 우글거리는 숲 속에 던져놓고 '사춘기의 성적 각성'에 대한 에로틱한 우화를 쓰고 있으니 당연히 감독의 의도를 의심할만 하죠. 감독이나 관객들이 라일라 리의 모험담을 따라가며 그 이야기에 동화되었거나 동화될 가능성도 크지는 않고요. 라일라 리가 겪는 통과제의는 자기 투영의 대상이 아니라 관능적인 감상의 대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간파하기 쉬운 블랙번의 속내만으로 이 영화를 평가하는 것도 게으른 일입니다. 예절 바르게 에드거 앨런 포우와 H.P. 러브크래프트의 고딕 전통과 발 루튼이나 칼 드라이어와 같은 호러 거장들의 발자국을 따르는 이 뱀파이어 영화가 특별히 독창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둠과 빛, 선과 악, 기독교와 이교의 경계선 사이에서 위태롭게 성장해가는 사춘기 소녀가 겪는 통과제의의 이야기에서 음탕한 관음증만 읽어내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잖아요. 그 주제가 아무리 장르내에서 교과서적이라고 해도요.

물론 [르모라]라는 영화를 특징짓는 건 주제가 아니라 그 고유의 꿈결과도 같은 분위기입니다. 영화는 기술적으로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에요. 사운드는 맥빠지고 조연 배우들은 서툴고 분장은 조잡하며 촬영도 그렇게까지 창의적은 아니지요. 그래도 영화는 운좋게도 그 서툰 시도 속에서 무언가를 잡아내고 있습니다. 트랜슬바니아에서 몽유병에 걸려 길을 잃은 앨리스가 꾸었을 법한 악몽과도 같은 분위기 말이죠. 그 분위기가 엄청나게 무섭거나 에로틱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은근히 뒷맛은 강하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라일라 리를 연기한 셰릴 스미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화를 찍을 당시 이 배우는 18살이었지만 13살짜리라고 마구 우기면 통할 정도로 어려보입니다. 그리고 참 예뻐요. 그것도 먼지 하나 안 묻은 것 같은 천사같은 외모여서 '주변 사람들의 욕망을 마구 자극하는 순진무구한 어린 소녀(아, 뻔뻔스러워라!)'라는 캐릭터의 설정과 딱 맞아 떨어지지요. 영화가 품고 있는 시적 느낌의 상당 부분은 셰릴 스미스의 쉽게 속을 읽을 수 없는 예쁜 얼굴이 풍기는 일차원적인 매력인지도 모르겠군요. (04/10/15)

DJUNA

기타등등

1. 감독 리처드 블랙번은 목사로도 출연합니다. 멀끔한 외모이긴 한데 결코 좋은 배우라고는 못하겠군요.

2. 미국에서 이 영화의 등급은 PG입니다. 대단히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내용을 고려해보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죠. 미국 가톨릭 영화 위원회에서 21년 동안이나 금지된 영화이기도 한데 말이죠.

3. 셰릴 스미스는 이 영화 이후 상당히 인기있는 B급 영화 배우가 되었는데, 나중에 마약 중독에 빠져 노숙자로 전락했다가 얼마 전에 간염으로 죽었답니다. 할리우드는 정말 무서운 곳이에요. 해리 놀즈가 셰릴 스미스를 애도하는 글을 쓴 적 있습니다. 한 번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