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루이스 길버트 Lewis Gilbert

주연
에이던 퀸....데이빗 애쉬
Aidan Quinn....David Ash
케이트 베킨세일....크리스티나 매리얼
Kate Beckinsale....Christina Mariell
안소니 앤드루즈....로버트 매리얼
Anthony Andrews....Robert Mariell
존 길거드....도일 박사
John Gielgud....Doctor Doyle
안나 메이시....테스 웹 유모
Anna Massey....Nanny Tess Webb
알렉스 로....사이먼 매리얼
Alex Lowe....Simon Mariell

1.

원제가 [Haunted]이지만, 이 제목만으로 뭔가 와닿는 분들은 안 계실 듯 하군요. 코폴라네 회사에서 제작 또는 배급한 영화인데 미국에서 극장 개봉이 과연 되긴 했는지부터가 의심스러워요.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감독(루이스 길버트)이 꽤 괜찮은 배우들 (존 길거드, 에이던 퀸, 케이트 베킨세일, 안소니 앤드루즈)을 데리고 상당히 알려진 작가(제임스 허버트)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치고는 너무 조용하게 묻혀버린 것 같습니다.

2.

1920년대의 영국. 초자연현상에 회의적인 데이빗 애쉬 교수 (에이던 퀸)는 에드브룩이라는 저택으로부터 악령에 들린 한 늙은 유모의 편지를 받습니다. 애쉬 교수는 그 곳에서 은둔적인 생활을 하는 매리얼 남매를 만나게 되고 막내인 크리스티나(케이트 베킨세일)와 사랑에 빠져요. 그러나 어렸을 때 사고로 죽은 동생이 애쉬의 눈 앞에 나타나는 등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나 그의 회의론을 흔들기 시작하고 어쩌고 저쩌고...

3.

이 시대의 관객들에게 [Haunted]는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고딕물의 장르가 꼭 감상자들에게 공포를 안겨야 한다는 법은 없죠. 적어도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유니버설 영화나 발 루튼 영화, 해머 영화, 마리오 바바 영화의 팬들이 즐기는 것은 공포라기보다는 그 장르의 영화들이 주는 어떤 분위기입니다.

길버트는 이 복고적인 느낌을 한껏 즐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앞에서 든 예에서 이 영화의 선례를 찾기는 힘들 것 같군요. 해머적인 분위기가 아주 살짝 풍기기는 하지만 영화는 공포나 흥분을 주는 데에는 무관심합니다. 아주 담담하고 깔끔해서 제임스 아이보리 풍의 고전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해요.

4.

사실 이 영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기본으로 깐 추리물입니다. 탐정이 있고, 뜻밖의 진상이 있으며, 살해당하는 증인, 꽤 성실하게 깔려진 복선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결말을 위해 좀 안이하게 설정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여자에게 정신이 나갔다고 하더라도 일단 의뢰를 받았으면 연애에 정신을 파는 대신 기초적인 조사라도 해야 하는 게 탐정의 의무가 아닌가요? 의뢰 당사자인 내니 테스야 겁이 잔뜩 났을테니 이해할 수 있지만, 애쉬는 너무 방만해서 정이 떨어질 정도입니다.

구성상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도일 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논리상 하자는 없지만 그 사람의 등장은 지나치게 잘 봐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일단 그 사람이 패거리에 끼어들어야 할 이유가 없단 말입니다.

5.

스토리를 극단적으로 간추려보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너무나도 익숙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듣고 자랐던 유령 이야기들 중에도 이런 내용이 꽤 많지 않았나요? [전설의 고향] 테이프를 뒤져 보아도 비슷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뭐, 옛날 이야기라고 해서 써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죠. 하지만 이 이야기가 과연 장편 영화를 버틸 만큼 '큰' 이야기일까요? [트왈라이트 존] 정도의 길이가 이 내용에 적당한 거 같아요.

6.

케이트 베킨세일 팬에게는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영화는 [헛소동] 정도나 소개되어 있을 뿐이니 이 나라에 베킨세일의 팬이 있을 리가 없겠지요. 참, 이 영화엔 크리스티나의 누드가 참으로 참으로 많이 나오는데, 그게 다 대역입니다. 사실 왜 그런 걸 넣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깔끔하고 고전적인 분위기에 영 맞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유령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특수 효과들도 불만이 많습니다. 효과 자체도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데다가 과연 그런 걸 써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그럴싸하게 끌어간 분위기를 망치기만 했지요.

7.

그래도 의대생 실습 비디오 테이프 같은 요새 호러 영화들을 보다가 이런 복고풍 영화를 접하니까 기분이 새롭군요. 잘나가는 20년대 영국 상류층의 묘사가 관객들의 속물적인 기분을 기분좋게 부추겨 주기도 하고요. 안이한 기분으로 참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97/07/08)

DJUNA

기타등등

1. 이 영화의 원작인 제임스 허버트의 소설은 한뜻에서 [흉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어보았는데, 영화 쪽이 더 깔끔하고 나은 것 같더군요.

2. 캐치원에서는 [헌티드]를 제목으로 쓰고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