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Hannibal (2001) * * 1/2

감독
리들리 스코트 Ridley Scott

주연
안소니 홉킨즈....한니발 렉터 박사
Anthony Hopkins....Dr. Hannibal Lecter
줄리안 무어....클라리스 스탈링
Julianne Moore....Clarice Starling
게리 올드먼....메이슨 버거
Gary Oldman....Mason Verger
레이 리오타....폴 크렌들러
Ray Liotta....Paul Krendler
프랭키 페이슨....바니
Frankie Faison....Barney
지안카를로 지아니니....리날도 파찌 경위
Giancarlo Giannini....Inspector Rinaldo Pazzi
프란체스카 네리....알레그라 파찌
Francesca Neri....Allegra Pazzi
젤리코 이바넥....코델 돔링 박사
Zeljko Ivanek....Dr. Cordell Doemling

렉터와 클라리스
[한니발]은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 렉터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데는 역시 조나단 드미가 감독한 영화 [양들의 침묵]의 성공이 한 몫을 했지요. 해리스가 영화사로부터 속편 의뢰를 받고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인터넷으로 확인하면 나올 겁니다.

[한니발]은 전편인 [레드 드래건]이나 [양들의 침묵]과는 달리 조연격이었던 한니발 렉터를 전면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척 하지만, 사실 내용은 대충 둘로 나뉘어져 있다고 할 수 있죠. 1부에서는 피렌체의 형사인 리날도 파찌가 카포니 도서관의 관장으로 있는 한니발 렉터를 알아보고 현상금을 타내기 위해 그를 추적합니다. 2부에서는 클라리스 스탈링이 렉터의 희생자였던 백만장자 메이슨 버거의 요청을 받아 렉터를 추적하고요.

[한니발]은 베스트셀러였고 영화도 흥행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영화사가 들인 돈값은 한 셈이지요. 하지만 둘 다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한니발]은 결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레드 드래건]과 [양들의 침묵]에는 강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미쳐 날뛰는 연쇄 살인마가 다음 희생자를 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뛰지 않으면 또 하나의 생명이 사라질 판이지요. 하지만 [한니발]에는 그런 압축된 동기도 없고 드라마도 없습니다. 관객들은 렉터가 누굴 죽이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미 남모르게 그의 살인을 용인하고 있거든요. 당연히 서스펜스도 떨어집니다. 그러자니 그의 체포 작전도 뜬구름처럼 액션이 흐릿합니다. 이야기가 둘로 툭 쪼개진 것도 그 때문이지요. 하나의 이야기로 작품을 끌어갈만큼 큰 드라마가 형성되지 않는 겁니다.

독립적인 작품인 [레드 드래건(또는 영화 버전 [맨헌터])이나 [양들의 침묵]과는 달리 자체적인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전편에서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 자체는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지만, 이미 [양들의 침묵]에서 완결된 스토리와 설정을 다음 소설에서 질질 끌고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거든요. 심지어 이 작품의 주인공들도 앞 작품을 체험한 사람보다는 영화를 본 관객들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한니발]이 인기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관객들이나 독자들이 품고 있던 한니발 렉터나 클라리스 스탈링의 이미지를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명민한 이상주의자 연수생이 지쳐빠진 FBI 요원으로 변하는 것이야 실망스러운 게 당연하지만, 한니발 렉터에 대해서는 왜들 그렇게 실망했을까요? 렉터는 그의 명성 그대로 온갖 짓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또 그 신체의 일부를 먹기도 하죠. 여전히 그의 우아한 취향을 살인/식인 취미와 결합시키면서요.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 그의 이미지에 매료되어 왔던 이유는 그가 꼭 살인자여서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적인 식인살인마라는 것도 그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가 살인하는 장면에서는 생각만큼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렉터가 지금까지 우리를 매료시켰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설명되지 않는 빈 부분이었습니다. 그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부분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지요. 우리가 그를 그렇게 거대한 인물로 보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양들의 침묵]의 렉터를 사려깊고 친절한 연인으로 보기도 했어요(안소니 홉킨즈에게 어떤 여성팬이 '우리 남편도 렉터같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한탄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죠.) 하지만 [한니발]은 그 모든 상상의 여지를 지워버립니다. 결국 렉터는 작아지고 관객들도 맥이 빠지는 거죠.

스토리는 그렇다고 치고, 영화는 어떨까요? 리들리 스코트의 연출은 조나단 드미의 것보다 못할까요? 배우들은 어떨까요?

우선 스코트의 연출이 드미의 연출보다 못하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드미는 분명 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예술적으로 성공작이 아닐 게 분명한 작품을 거절했으니까요. 하지만 드미가 이 영화를 맡았다고 해도 특별히 나아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못해졌을 가능성도 높아요. 스코트는 자기 역할을 했습니다. 아마 그가 최선의 감독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는 스토리 자체에는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니 남은 부분에 최선을 다할 수도 있었겠죠.

홉킨즈는 여전히 그만의 카리스마를 발산하지만 이 영화의 렉터는 이전의 매력이 떨어집니다. 줄리안 무어는 좋은 배우지만 이 영화의 클라리스는 제대로 연기하기엔 너무 경직되어 있어요. 차라리 가장 맘에 들었던 배우는 파찌 역의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였습니다.

[한니발]은 '나쁜' 영화는 아닙니다. 좀 산만하기는 해도 '지루한' 영화까지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앞에 나온 두 작품들의 질을 생각해보면 안 나오는 게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영화사에서 내민 그 두툼한 돈 다발을 보고도 거절할 사람은 많지 않았겠지만요. (01/05/18)

DJUNA


기타등등

영화에 나오는 패트릭 캐시디의 가짜 오페라는 단테의 [La Vita Nuova]에서 가사를 빌려왔답니다. 그렇다면 이 오페라의 내용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