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앨트먼 Robert Altman

주연
마이클 갬본....윌리엄 맥코들 경
Michael Gambon....Sir William McCordle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레이디 실비아 맥코들
Kristin Scott Thomas....Lady Sylvia McCordle
카밀라 러더포드....이자벨 맥코들
Camilla Rutherford....Isobel McCordle
매기 스미스....콘스턴스, 트렌섬 백작부인
Maggie Smith....Constance, Countess of Trentham
찰스 댄스....레이몬드, 스톡브리지 경
Charles Dance....Raymond, Lord Stockbridge
제랄딘 서머빌....루이자, 레이디 스톡브리지
Geraldine Somerville....Louisa, Lady Stockbridge
제임스 윌비....프레디 네스비트
James Wilby....The Hon. Freddie Nesbitt
클로디 블레이클리....메이블 네스비트
Claudie Blakley....Mabel Nesbitt
로렌스 폭스....루퍼트 스탠디시 경
Laurence Fox....Lord Rupert Standish
트렌트 포드....제레미 블론드
Trent Ford....Jeremy Blond
제레미 노덤....아이보 노벨로
Jeremy Northam....Ivor Novello
밥 발라반....모리스 와이스먼
Bob Balaban....Morris Weissman
앨런 베이츠....제닝즈
Alan Bates....Jennings
헬렌 미렌....제인 윌슨 부인
Helen Mirren....Mrs. Jane Wilson
아일린 앳킨스....리지 크로프트 부인
Eileen Atkins....Mrs. Lizzie Croft
데릭 제이코비....프로버트
Derek Jacobi....Probert
에밀리 왓슨....엘시
Emily Watson....Elsie
리처드 E. 그랜트....조지
Richard E. Grant....George
소피 톰슨....도로시
Sophie Thompson....Dorothy
켈리 맥도널드....메리 맥리치런
Kelly Macdonald....Mary Macreachran
클라이브 오웬....로버트 파크스
Clive Owen....Robert Parks
라이언 필리피....헨리 덴튼
Ryan Phillippe....Henry Denton
스티븐 프라이....톰슨 경위
Stephen Fry....Inspector Thompson
론 웹스터....덱스터 순경
Ron Webster....Constable Dexter

메리와 레이디 콘스턴스

11월의 시골 대저택, 사냥 파티, 살인 사건, 불륜, 애증으로 얽혀 있는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 여기까지만 들으면,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장 르느와르의 고전 [게임의 규칙]을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로버트 앨트먼의 신작 [고스포드 파크]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유사성이 너무 분명하니 표절은 당연히 아니죠. 이건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소위 '오마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고스포드 파크]에 [게임의 규칙]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또 있습니다. 70년대 영국 히트 텔레비전 시리즈인 [위층, 아래층]이죠. 주인들이 위치하는 '위층'과 하인들이 일하는 '아래층'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들 계급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은 분명 [위층, 아래층]의 영향 아래 놓여 있습니다.

벌써 모양이 대충 만들어지죠? 하인들을 거느린 수많은 상류 사회 손님들이 영국 시골 대저택인 고스포드 파크를 방문합니다. 한창 이들의 얽히고 얽힌 이야기가 위층, 아래층을 오가며 앨트먼 식으로 분주하게 얽히다가 결국 위층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죠. 30년대 영국의 대저택이 무대이니 당연히 여기서부터는 아가사 크리스티 풍의 추리물로 전환될 거고요.

[고스포드 파크]의 가장 큰 매력은 앨트먼식 거대함입니다. 앨트먼은 그의 많은 성공작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머리 아플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30년대 특정 영국 사회를 구성하는 벽돌들입니다. 벽돌이라는 비유가 먹히기엔 모두 참 분주하고 개성도 각각이지만요.

앨트먼은 종종 자기가 잘 모르는 세계에 겁없이 덤비다 헛발을 내딛기도 했지만 ([프레타 포르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가 30년대 영국 상류 사회를 직접 살았던 건 아니지만 다행히도 이 세계에 대한 정보는 교양있는 영어권 영화 예술가가 부담없이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지요. 미국인 감독이 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국 영화를 만드는 건 비교적 부담이 적은 일이었을 겁니다.

하여간 고스포드 파크는 이런 식의 접근법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무대입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쉽게 길을 잃을 정도로 길고 복잡한 복도는 소박하고 침침한 하인방과 세탁실에서부터 화려한 손님방과 연회실까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여러분은 고스포드 파크와 같은 대저택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위층과 아래층의 유기적 연관성 덕택에 비슷한 세계를 다루었던 [남아있는 나날]보다 훨씬 역동적입니다.

고스포드 파크는 이튼 플레이스 165번지처럼 안전한 조화를 이룬 곳은 아닙니다. 위층 사람들은 대부분 뻔뻔스러운 스노브들이고 아래층 사람들도 모두가 자기 위치를 충실히 지키는 건실한 하인들은 아니죠. 살인 사건은 서서히 경계선을 부수며 오가는 이들의 계급 갈등을 드러내주는 구멍 역할을 합니다.

이런 관계 묘사는 계급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에 대한 역사적 기술이기도 합니다. 30년대라면 이들의 관계가 서서히 붕괴되던 중이었습니다. 물론 계급 갈등의 측면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당시 영국 귀족 사회가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며 집주인이 죽기만을 바라던 위층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영화는 장르 관습과 사실적인 풍속 묘사를 적절하게 뒤섞으며 고스포드 파크로 대변되는 시골 계급 사회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종종 할리우드 제작자 와이스먼과 같은 이방인과 아이보 노벨로와 같은 가이드를 끼워넣어 상세한 설명의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톰슨 경위와 덱스터 순경을 통해 이들 관계의 작은 축소판을 그려내기도 하면서요.

정말 끝도 없이 등장하는 수많은 배우들과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이런 세계의 역동적 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 매기 스미스, 마이클 갬본, 에밀리 왓슨, 헬렌 미렌, 라이언 필리피, 데릭 제이코비, 제임스 윌비, 앨런 베이츠, 제레미 노덤, 스티븐 프라이, 리처드 E. 그랜트, 클라이브 오웬, 아일린 앳킨스, 소피 톰슨, 켈리 맥도널드... 이름만 열거해도 벅찰 지경인데 이들은 모두 정말 잘합니다.

가장 눈에 뜨이는 사람은 역시 허영심 가득한 백작 부인으로 나오는 매기 스미스입니다. 과묵한 가정부로 나오는 헬렌 미렌도 너무 근사하고요.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는 완벽한 얼음 여왕이고, 에밀리 왓슨의 활달한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이들을 연결해주는 켈리 맥도널드의 수줍은 연기도 은근히 훌륭하답니다 (이 사람의 스코틀랜드 악센트가 얼마나 귀엽던지...) 다들 좋지만 전체적으로 위층보다는 아래층이 강하고 남자 배우들보다는 여자 배우들이 강합니다. 스토리 상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요.

[고스포드 파크]는 참 풍성한 영화입니다. 그 때문에 종종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아마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첫번째 감상으로 모두 구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걸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죠. 영화는 위트가 넘치고 새디스틱하지만 그렇다고 깊이 있는 캐릭터들과 그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앨트먼의 수작입니다. (02/03/20)

DJUNA

기타등등

1. [위층, 아래층]의 공동 크리에이터인 아일린 앳킨스가 주방장인 크로프트 부인으로 나옵니다. 하긴 이 사람이 빠졌다면 결례였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2. 이 영화에서 아이보 노벨로가 언급하는 영화 [하숙인]은 그가 처음 출연했던 히치콕 영화가 아니라 그 뒤에 만들어진 리메이크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