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주연
아이보 노벨로....조나단 드루 (하숙인)
Ivor Novello....Jonathan Drew (The Lodger)
준....데이지 번팅 (패션 모델)
June....Daisy Bunting (The Mannequin)
말콤 킨....조 챈들러 (형사)
Malcolm Keen....Joe Chandler (The Detective)
마리 올트....번팅 부인 (하숙집 주인)
Marie Ault....Mrs. Bunting (The Landlady)
아서 체스니....번팅 씨 (남편)
Arthur Chesney....Mr. Bunting (Her Husband)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숙인

[하숙인]은 첫번째 히치콕 영화입니다. 히치콕이 처음으로 감독한 영화는 아니지만 (세번째 작품입니다) 우리가 '히치콕 영화'라고 생각하는 스타일과 스토리가 처음으로 결합된 작품이죠. '히치콕 영화'는 더 이상 히치콕이라는 이름의 예술가의 작품들만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니 이 영화는 장르의 시조이기도 한 셈입니다.

[하숙인]은 '잭 더 리퍼' 영화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잭 더 리퍼를 다룬 건 아니지만 이 영화 속의 연쇄 살인마 '복수자'는 잭 더 리퍼를 모델로 하고 있죠.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을 쓴 마리 벨록 론디스는 만찬 때 어떤 손님이 그의 어머니네 집사와 요리사의 하숙집에 잭 더 리퍼가 머문 적 있었다고 말하는 걸 듣고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영화는 금발의 젊은 여자들만 죽이는 '복수자'라는 살인마가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면서 시작합니다. '복수자' 때문에 런던이 공포에 잔뜩 질려 있는 동안 번팅 부인의 하숙집에 정체불명의 남자가 들어오죠. 다들 그 수상쩍은 남자가 혹시 '복수자'가 아닐까 의심하는 동안 그 남자는 번팅 부인의 딸 데이지와 사랑에 빠집니다. 질투심에 빠진 데이지의 남자 친구 조 챈들러 형사는 그 하숙인을 '복수자'라고 단정하고 체포하려 하고요.

[하숙인]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복수자'라는 살인자가 불러일으키는 집단 공포증입니다. 영화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이 살인자가 런던 시민들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설명하죠. 이렇게 쌓아놓은 설정들은 후반부에 묘사된 무시무시한 린치 장면에 연료를 제공해줍니다. 얼굴없는 집단과 오인받은 무고한 희생자의 대립은 이후 [나는 고백한다]와 같은 히치콕의 후기 영화에도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네, 이 영화엔 우리가 히치콕 영화의 요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거의 모두 들어 있습니다. 오인받고 쫓기는 남자, 믿을 수 없는 경찰, 금발 미녀, 엿보기, 히치콕 카메오... 정말로 히치콕은 자기 영화를 발명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비틀린 카메라 앵글이나 안개 속에 묻힌 런던의 컴컴한 분위기와 같은 것들엔 당시 유행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의 영향이 드러납니다. 히치콕은 실제로 경력 초기에 독일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니 영향은 당연할 수도 있겠죠. 물론 그의 취향과 맞아서일 수도 있고요. 한동안 이런 분위기는 그의 초기 영화들의 성격을 세워주기도 했어요.

[하숙인]은 아직 완성된 히치콕 영화는 아닙니다. 아직 그는 자신의 테크닉과 스타일을 개발 중이었어요. 우선 전체적으로 영화는 느린 편입니다. 적어도 의심이 형성되는 과정을 다룬 전반부는 느려요. 일단 하숙인에게 혐의가 돌아가면 자기 속도를 찾지만요. [하숙인]은 효율적인 무성 영화지만 무성 영화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을 택한 장면들도 많습니다. 무성 영화 시대의 과장된 연기 테크닉을 고려한다고 해도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이런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하숙인]은 흥미진진한 영화입니다. 낡디 낡은 필름을 통해서도 아이디어가 철철 넘쳐나는 27살 젊은 감독의 혈기가 느껴져요. 정말 평생에 한 번밖에 나올 수 없는 영화입니다. 아니, 영화라는 젊은 장르의 역사를 고려해보면 특정 시대밖에 나올 수 없는 영화일 수도 있겠죠. (02/03/28)

DJUNA

기타등등

히치콕은 영화의 결말을 조금 애매하게 처리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영화사측에서는 그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아쉬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하숙인이 히치콕이 생각했던 것처럼 모호한 인물이었다면 영화의 린치 장면은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