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론 하워드 Ron Howard

주연
프랭크 란젤라....리처드 닉슨
Frank Langella....Richard Nixon
마이클 쉰....데이빗 프로스트
Michael Sheen....David Frost
샘 로크웰....제임스 레스턴 주니어
Sam Rockwell....James Reston, Jr.
케빈 베이컨....잭 브레넌
Kevin Bacon....Jack Brennan
매튜 맥페이든....존 버트
Matthew Macfadyen....John Birt
올리버 플랫....밥 젤닉
Oliver Platt....Bob Zelnick
레베카 홀....캐롤라인 쿠싱
Rebecca Hall....Caroline Cushing
토비 존스....스위프티 라자
Toby Jones....Swifty Lazar

프로스트와 닉슨

[프로스트 VS 닉슨]은 론 하워드보다 피터 모건의 작품입니다. 모건은 지난 몇 년 동안 텔레비전, 영화, 연극을 통해 현대사의 핵심적인 순간들을 드라마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 중 [더 퀸]은 아름다운 영화였고, 소문에 따르면 [The Deal]도 좋은 작품이라더군요. EBS에서 하는 걸 놓쳐서 얼마나 좋은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하여간 [프로스트 VS 닉슨]은 그의 동명 희곡을 각색한 작품으로, 프랭크 란젤라와 마이클 쉰 모두 오리지널 무대 공연에서 닉슨과 프로스트를 연기했습니다. 란젤라는 이 역으로 토니 상을 받았죠.

제목에도 이미 나와 있지만, [프로스트 VS 닉슨]은 1977년에 데이빗 프로스트가 리처드 닉슨을 인터뷰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프로스트는 그 뒤에도 수많은 대통령들을 인터뷰했지만 그 때가 이 사람 경력의 절정이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는 영화를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드라마이지 다큐멘터리는 아닙니다. 물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실제 인터뷰와 아주 가까울 겁니다. 그것까지 바꾼다면 규칙 위반이지요. 하지만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한 프로스트의 노력이나 닉슨의 계획, 그와 관련된 드라마는 어느 정도 상상의 산물이겠죠.

영화는 어느 정도 스포츠물처럼 보입니다. 그 중 권투영화요. 이 영화의 플롯은 권투영화에 그대로 대입해도 먹힙니다. 전성기를 조금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실력이 만만치 않은 챔피언과 패기가 넘치지만 생각도 경험도 부족한 도전자의 대결이랄까요. 실제로 권투 비유가 영화 대사 군데군데에 섞여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모두 경기 규칙에 따라 싸우는 스포츠맨들입니다.

이런 설정 때문에 일종의 중립성이 생겨납니다. 물론 영화는 닉슨의 업적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닉슨은 '악'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제대로 먹히려면 그 상대는 대단한 인물일수록 좋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닉슨을 치명적인 결점 때문에 몰락한 고전적 영웅처럼 그립니다. 그런 면에서 올리버 스톤의 [닉슨]과 여러모로 겹치는 점이 있어요. 그는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며 실제로도 많은 것을 이룩해낸 사람입니다. 그에 비하면 그와 대결하는 프로스트의 패거리들은 은근히 상처입은 맹수에게 달려드는 들개들처럼 보이죠.

영화를 보면서 전 프로스트의 캐릭터가 너무 가벼운 것이 걸렸습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가벼운 사람이 닉슨과 대결해서 승리했던 것도 맞습니다. 그가 그런 승리를 끌어내기 위해 일생의 도박을 했던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그는 닉슨의 적수가 되는 인물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자신의 대결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터뷰가 새로운 사실을 폭로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렇다면 영화의 중심에 닉슨을 놓고 프로스트는 일종의 촉매로 놓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아마, 원작이 된 연극은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장 거슬렸던 건 영화가 택한 '통풍'의 도구들이었으니까요. 특히 올리버 플랫이나 샘 로크웰과 같은 배우들이 실존인물 역할을 하면서 인터뷰를 하는 설정은 심하게 거슬렸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위장할 필요는 없었을 거예요. 프로스트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잔가지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영화가 산만해지기도 했고요. 이 영화에서 진짜로 중요한 건 닉슨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는 것이지, 프로스트가 이 인터뷰를 통해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거두고 거금을 챙겼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모든 단점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커버하는 것은 배우들의 존재감입니다. 특히 프랭크 란젤라의 닉슨은 걸작이에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프로스트 VS 닉슨]은 그의 최대걸작으로 남을 겁니다. 캐릭터에 대해 불평하긴 했지만 마이클 쉰의 연기도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캐스트를 갖고 있다면 조금 연극적이 되더라도 [다우트]처럼 연극의 뿌리에 충실해도 되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09/03/05)

DJUNA

기타등등

프로스트의 닉슨 인터뷰는 DVD로도 나와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영화는 여러가지 부록과 함께 봐야 하는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