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퀸 The Queen (2006) * * * 1/2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Stephen Frears

주연
헬렌 미렌....엘리자베스 2세
Helen Mirren....HM Queen Elizabeth II
마이클 쉰....토니 블레어
Michael Sheen....Tony Blair
제임스 크롬웰....필립 공
James Cromwell....Prince Philip
실비아 심스....왕모
Sylvia Syms....HM The Queen Mother
알렉스 제닝스....찰스 왕세자
Alex Jennings....Prince Charles
헬렌 맥크로이....셰리 블레어
Helen McCrory....Cherie Blair
로저 앨럼....로빈 잔브린
Roger Allam....Robin Janvrin
팀 맥멀랜....스티븐 램포트
Tim McMullan....Stephen Lamport



엘리자베스 2세
[더 퀸]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일주일 동안 엘리자베스 2세가 무엇을 했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거의 집단 히스테리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이 버킹엄 궁 주변을 꽃다발로 덮고, 막 총리가 된 토니 블레어가 유명한 'People's Princess' 연설로 대중의 호감을 사는 동안, 여왕을 포함한 윈저가 사람들은 스코틀랜드의 별장인 발모랄 성에서 침묵하고 있었죠. 사람들은 분노했고 결국 여왕은 일주일 뒤에 버킹엄 궁으로 돌아와 추모사를 발표했습니다.

타블로이드식으로 풀었다면, [더 퀸]은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매서운 경쟁상대로 남아있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결코 며느리를 좋아한 적이 없었던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역시 흥미로운 영화가 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이 영화의 각본을 쓴 피터 모건은 여기서 보다 깊은 주제를 파냅니다.

모건에 따르면 [더 퀸]은 두 세계관의 충돌에 대한 영화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이애나에 대한 엘리자베스 2세의 감정이 아닙니다. 물론 둘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좋지 않았고 영화 속의 여왕도 그걸 밝히고 있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사태에 대처하는 정치적인 해결책입니다.

문제는 얼핏 보면 자잘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버킹엄 궁에 조기를 걸고 여왕이 텔레비전에 나와 공식 연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여왕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우선 전통에 따르면 버킹엄 궁의 왕실 깃발은 왕실 가족이 궁 안에 있을 때만 올라갑니다. 지금 다들 발모랄 궁에 있는 한 조기는 커녕 그냥 깃발도 걸어서는 안 되는 거죠. 여왕이 공식 연설을 하거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식을 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혼 이후 다이애나는 왕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런 행동 때문에 군주제에 대한 반감이 폭발하는 동안에도, 왜 여왕은 이 사사로운 문제에 매달렸던 걸까요? 모건에 따르면 그건 군주제의 존재 이유와도 관계 있습니다. 여왕은 한 나라의 수장이지만, 정치적 권한은 없습니다. 심지어 투표도 할 수 없지요. 입헌 군주제에서 군주의 존재 이유는 국가의 정체성과 전통의 보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묵묵하게 기존의 전통과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죠. 찰스 왕세자처럼 적당히 대중과 타협하며 왕실을 '현대화'시켜서는 안 되는 겁니다.

[더 퀸]의 드라마는 세계관의 대립입니다.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이고 원칙주의자인 엘리자베스 2세와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파퓰리스트의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진보적인 정치가 토니 블레어의 대립이지요. 코앞에 닥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전통을 깨도 된다고 생각하는 블레어는 끈질기게 여왕을 설득하고, 결국 여왕은 타협안을 받아들입니다. 그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당연한 영화의 결말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는 블레어가 옳았다고 선언하지는 않아요. 두 사람의 대립은 한쪽이 옳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게 아닙니다. 그 대립을 통해 두 세계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당연히 영화는 여왕과 블레어 모두를 존중합니다. 존중하지 않는 건 찰스 왕세자와 같은 겁쟁이 기회주의자들이죠.

[조선왕조 5백년]의 한 에피소드로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소재와 주제지만, [더 퀸]은 이런 종류의 '궁중 사극들'이 그러는 것처럼 시각적 장려함으로 관객들을 압도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영화는 소박한 홈드라마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블레어 부부가 사는 다우닝가 10번지는 전형적인 영국 중산층 맞벌이 부부의 집이고, 윈저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발모랄 궁도 크고 고용인들이 좀 많을 뿐, 그냥 보통 사람들의 집입니다. 거실이나 침실에 있는 쬐끄만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사태 파악하는 건 다른 사람들과 똑같죠.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뒤집어 쓰고 몇 십 년 묵은 낡아빠진 랜드로버를 몰고 다니는 여왕의 모습은 은근히 윈저가 홍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조작된 건 아니죠.

짧고 간소하고 할 말만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더 퀸]은 은근히 고전적인 비극의 향취를 풍깁니다. 이 영화의 엘리자베스 2세는 전통적인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 고결한 영웅이지요. 다행히도 전통적인 고전비극 주인공들과는 달리, 여왕은 고집부리며 한 방향으로만 달리다 파국으로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만큼이나 여왕과 블레어의 소통도 중요한 드라마의 일부지요. 서로에게 막연한 야유와 무관심의 대상에 불과했던 두 사람이 파국을 극복해가는 동안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 영화의 드라마는 그냥 보기가 좋더군요.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헬렌 미렌의 연기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도 그렇지만, 미렌도 과장이나 무리를 하지 않아요. 여왕의 성대모사에 집착하지도 않고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힘을 주지도 않습니다. 미렌의 연기는 차분하고 정적이고 일상적이에요. 하지만 힘의 분배가 굉장히 잘 되어 있습니다. 어느 때엔 전쟁세대인 꼬장한 동네 할머니처럼 굴다가 필요할 때면 아주 자연스럽게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관객들을 사로잡는 거죠. 미렌만큼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블레어를 연기한 마이클 쉰도 좋은 맞수입니다. 실존 모델과 굉장히 닮기도 했고요. (07/02/02)

DJUNA


기타등등

그런데 모건의 버전은 얼마나 사실과 가까울까요? 저도 모르죠. 아마 여왕과 블레어만이 알겠죠. 아니, 이들도 모를지 몰라요.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기억이란 왜곡되기 쉬운 것이니까요. 이 영화 자체도 그 왜곡의 발단이 될 수도 있겠죠. 그들이 영화를 봤다면 말이지만.